우리가 생각하는 대한민국이 아니다 |
보스톤코리아 2012-06-24, 22:32:22 |
편/집/국/에/서
다른 나라가 아니다. 바로 대한민국에서 조성구 씨의 삶은 처절했다. 잘 나가던 IT기업 사장이 월셋방을 전전하게 됐다. 부인은 지난해 5월 가정을 떠났다. 아들, 딸 남매와 함께 중국산 쌀로 겨우 끼니를 때웠다. 가지런했던 그의 치열이 뒤틀리고 앞니가 빠져 나갔다. 마음 고생이 극에 달해 비틀어진 결과다. 그에게 잘못이 있다면 삼성 SDS를 사기혐의로 고발한 것. 그가 창립한 벤처 기업 얼라이언스 시스템은 2003년 우리은행의 사무자동화 입찰에 삼성 SDS와 손잡고 참여했다. 그러나 삼성은 그의 회사를 속였다. 삼성은 ‘300명 사용자 제한’ 조건으로 우리은행과 계약을 했다고 밝혔지만 실제 우리은행에는 ‘무제한 사용자 접속’으로 기술을 팔았다. 두 조건의 가격차는 무려 5배. 5분의 1밖에 안되는 약 28억원이 얼라이언스의 대가였다. 그나마도 후려쳤다. 다른 삼성 계열사에게 제품을 단독 사용케 해주겠다는 명목으로 11억 5천으로 줄였다. 삼성과의 미래를 보고 울며 겨자 먹기로 계약서를 작성했지만 이마저도 지켜지지 않았다. 사건 전모를 눈치챈 2004년 그는 법정 공방을 시작했다.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하고 있었지만 검찰은 기소조차 하지 않았다. 당시 이 사건을 맡았던 서울중앙지검장은 이종백 전 검사. 김용철 변호사가 폭로한 소위 ‘떡값 검사’ 중 한 사람이었다. 조성구 씨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삼성 SDS를 재 고소했지만 수사에 열성을 보이던 수사관이 교체되는 등 항고심에서도 그는 패소했다. 한 때 조성구 씨 인생은 탄탄대로였다. 지방대를 졸업하고 단 10만원을 들고 서울로 상경한 그는 한국컴퓨터에서 6년간 근무했다. 근무 경험을 토대로 1년 동안 사업계획서를 꾸렸고 은행에서 3억원을 대출받아 1997년 회사를 창업했다. 영어 한마디 못했지만 미국으로 와 인도의 명문대학 출신 IT 개발자들은 물론 한국인 엔지니어까지 스카우트 했다. 개발에 주력한 결과 이미지 처리 사무자동화 솔루션인 ‘엑스톰’을 탄생시켰다. 엑스톰은 대성공이었다. 경쟁사인 미국 소재 경쟁사 파일넷 제품보다 처리속도가 무려 2.5배나 빨랐다. 국내 점유율 90%였고, 일본 은행 7곳과도 계약을 따냈다. 호사다마, 그의 대박 행진에 날개를 달아줄 것으로 알았던 삼성 SDS과의 만남은 구렁텅이였다. 형사소송에서 모두 패했고, 삼성 협력업체의 기업사냥으로 45억원의 빚만 남긴 채 회사까지 빼앗겼다. 회사 동료들의 배신도 양념으로 곁들여졌다. 감시와 생명의 위협까지 느낀 그는 서울을 떠나야 했다. 지금까지는 한 불운한 사업가의 이야기였다면 이제 한국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자. 이번 조성구 씨 사건을 보도한 언론은 소수다. KBS, SBS, MBC 등이 보도했고 시사인, 한겨레, 프레시안, 국민, 서울, 내일 신문, 아이뉴스 등이다. 취재해 간 언론사는 많지만 보도되지 않았다. 조선은 단편적으로 보도했고 물론 중앙, 동아는 그의 이야기에 아예 관심이 없다. KBS 등을 제외하고는 연속 보도도 없었다. 신문광고 돈줄을 쥐고 있는 삼성의 위력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모험을 하지 않는 게 분명하다. 검찰과 법원은 오히려 삼성 편이었다. 삼성이 평상시 열심히 법조계를 ‘관리’해온 결과다. 조성구 씨 수사 당시 한 검찰은 “당신 미쳤어, 삼성은 검사 10명이 달라붙어도 기소 못해”라고 말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법원은 삼성 측과 은행직원의 진술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삼성의 손을 들어주었다. 조성구 씨가 만난 정치인만도 150여명이 넘는다. 국회의장, 여야를 막론하고 당대표, 원내대표, 최고의원 등을 만났다. 돌아온 답은 ‘삼성의 벽은 너무 높다’였다. 심지어 한 장관은 ‘이 나라엔 희망이 없다’며 이민을 권유했다. 한 국회의원 보좌관이 “왜 조성구 씨는 우리 의원실에는 오지 않느냐 한 번 들르면 (삼성이) 관리를 철저하게 한다는데”라고 말하는 것도 들었다. 결과적으로 17, 18대 국회에선 단 한번의 입법 시도도 이뤄지지 않았다. 노무현, 이명박 정부에 걸쳐 청와대에 호소도 했다. 청와대 앞의 1인 시위는 물론 편지도 썼다. 2010년 KBS의<중소기업의 눈물>에서 조성구 씨를 집중 조명하자. 이명박 정부 중소기업팀이 조성구 씨를 불렀다. 김종운 행정관은 “두 번이나 패소해 힘들겠지만 해당 비서관들과 논의해 무조건 해결책을 찾아내겠다. 청와대에서 하는 일은 오래 걸리지 않는다”라고 말했지만 소식이 없었다. 추후 청와대에서 특급우편이 왔다. 거기에는 5만원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없던 일로 하겠다는 답변을 들었다. 한 5선 국회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삼성 등 대기업이 중소기업 등치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들을 어쩔 수 없습니다. 그들이 이 나라의 기득권층이자 곧 주인입니다.” 더 이상 기댈 곳이 없어진 10년의 싸움은 그를 막다른 구석으로 몰아 넣었다. 하지만 정말 죽으란 법은 없었다. 쌀이 떨어져 아이들 밥만 남겨두고 굶고 있을 때 전화가 걸려왔다. 50만원 입금했다는 후원자들의 전화였다. 지난 4월 말 <조성구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결성되면서 끼니 때우기 걱정은 덜었다. 광주의 한 시민모임은 십시일반으로 아파트를 임대해 그에게 제공했다. 국민이 주인이 아니라는 정치인을 둔 나라, 앞이 캄캄하다. 삼성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정치인을 보고 절망감을 느끼지만 남의 아픔을 결코 저버리지 않는 시민들의 모임에서 그나마 희망을 본다. [email protected]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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