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 322회 |
보스톤코리아 2011-11-07, 13:00:22 |
첫눈이 내리던 밤의 설렘도 잠깐 그 이튿날 저녁 눈이 다시 내리기 시작한다. 예년보다 조금 이른 눈에 삶을 다퉈 살아야 하는 현실 앞에 즐거움보다는 걱정이 앞서는 이가 많다. 시월의 눈은 그리 달가운 것만은 아니었다. 눈이 온다고 철없이 좋아하는 아내인 나 같은 이 이외에는 현실에 충실한 내 남편 같은 이들 앞에서는 그저 잠시 멈춰서 그의 말과 행동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괜스레 생각 없이 툭 내던진 말 한마디에 어떤 불똥이 튀어 내게 날아올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부부간에도 즐거움이나 행복을 때로는 혼자 누려야 할 때가 가끔 있음을 이제는 알기에 서두르지 않는다.
여기저기 미디어의 텔레비젼 뉴스 채널과 레디오 채널에서는 연속 동북부의 눈과 그에 따른 피해예상을 일찍이 예보하고 있었다. 첫눈 온 날 밤에도 잠시 전기가 깜박거리다 30여 분 불이 나간 적이 있었다. 토요일 오후부터 시작한 눈은 늦은 밤 시간까지 단풍잎을 채 떨어뜨리지 못한 가을 나뭇가지에 소북이 쌓여 앉았다. 나뭇잎에 쌓인 눈이 여기저기의 전기선과 연결되어 더욱 상태를 악화했던 것이다. 바람은 불고 눈보라가 치기 시작하더니 뚝뚝 꺾이고 잘리는 소리가 저기서 여기서 멀리 혹은 가깝게 들린다. 얼마 후 늦은 자정이 다되어갈 시간 깜박거리던 전깃불이 사라졌다. 현대문명의 이기, 우리가 지금 누리는 현대문명의 혜택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속도로 달려가고 있다. 최첨단 과학기술과 의학 생명공학 그 외의 것들도 상상할 수 없는 정도에까지 이르렀다. 하룻밤 사이 잠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것들이 세계 시장에 선보이고 있다. 도저히 따라갈래야 따라갈 수 없는 눈 깜박거리는 사이 이미 저만치 달려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뒷짐 짓고 제자리걸음으로 있기도 참으로 억울하고 답답한 심정이니 아이들이 가지고 끼적이는 것을 힐큼힐끔 쳐다보곤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핸드폰이니 컴퓨터니 그 외의 것들에 관심을 가지려 애쓰고 있는 것이다. 갑자기 들이닥친 한파와 눈보라에 전기는 끊기고 추운 집안에서 덜덜 떨며 하루를 지냈다. 한 이틀을 전기가 나가니 집에서 그 무엇하나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그렇게 허탈하고 막막할 수가 없었다. 늘 들고 다니던 휴대전화도 안 되고 컴퓨터도 안 되고 부엌의 스토브도 안 되고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일상생활에서 손쉽게 하던 것을 할 수 없으니 불안감이 밀려오고 답답함에 견디기 어려운 시간이었다. 차가운 느낌의 불안함에 있었던 그 시간은 내가 누리려는 시간이 아닌 그 무엇인가에 중독된 시간, 종속된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듯 현대문명의 이기가 만들어낸 바로 우리의 지금의 모습이며 우리 인간의 자화상이다. 삶에서 알게 모르게 편리함에 이끌려 가까워진 기계에 종속해 있는 인간의 모습 말이다. 위대한 인간이 만들어낸 세상의 모든 기계의 버튼을 인간이 누르고 있다고 믿었는데 전기가 끊기고 천재지변으로 모두가 멈춘 시간에는 그 무엇도 인간의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고백이 절로 나오는 것이다. 끝이 없는 큰 우주 만물 속에서 너무도 작은 인간을 보듯이 인간의 위대한 힘이 만들어 낸 그 많은 현대문명의 물질들 속에서 너무도 나약한 인간의 모습 앞에 깊은 생각과 마주한 시간이었다. 어른도 어른이거니와 지금 자라는 아이들의 세대에는 더욱이 현대문명의 첨단과학과기술과 생명공학 그 외의 상상 밖의 많은 것들과 함께 커가는 것이다. 문득 무서움증이 머리를 스쳐 지난다. 이 아이들의 가슴에 무엇이 남을 것인가. 사람과 사람이 얼굴을 마주하지 않아도 가슴과 가슴이 통하지 않아도 기계만 있으면 혼자서 즐거움을 만끽하며 사는 이 아이들의 세대에 어른들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순간 머릿속이 텅 비어 앞이 캄캄하게 보인다.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망울의 시선을 바라보면 더욱 가슴이 시려온다. 손에 쥔 기계 앞에서 책상에 놓인 기계 앞에서 있는 눈망울에. 내가 나로 살 수 있어야 하는데 나로 제대로 살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운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무엇인가(현대문명의 기기들)에 푹 빠져 중독되어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을 눈으로 보면서도 빼낼 수 없음이 안타깝고 속이 답답해지는 것이다. 그것이 자식이 되었든 남편이 되었든 아내가 되었든 간에 현대문명의 이기에 속해 시간의 속도에 반항하지 못하고 질질 끌려다니는 것이다. 그래서 여유라는 것을 찾기 어렵고 자기 자신의 삶을 충분히 누릴 시간이 없다. 늘 바쁜 시간과 기계에 속한 자신으로 살다가 그것들로부터 놓여진 여유로운 시간에는 불안감에 그만 몸과 마음이 마비되고 마는 것이다.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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