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다시 읽는 미국사 : 남북전쟁후 “재건시대”가 미완성으로 끝난 이유?
보스톤코리아  2011-02-21, 14:21:02 
그랜트의 측근들에게도 물어보라
남북 전쟁 (Civil War)이 종결된 1865년 무렵부터, 남부에 재건의 임무를 띠고 파견되었던 연방군대가 갑작스레 철수하게 되면서 전후 재건 계획이 급히 마무리되는 1877년까지를 미국사에서는 재건시대 (The Reconstruction Era) 라고 부른다. 어쨌거나 이 시기는 전쟁으로 초토화된 남부를 어떻게 “재건”할 것인가의 문제, 또한 해방된 과거 노예들의 자립과 공민권과 관련한 문제와 더불어 연방으로부터 탈퇴했던 남부연합 각 주들을 어떤 방식으로 다시 연방에 재가입 시킬 것인가의 문제 등을 둘러싼 논쟁과 각종 실험이 이루어진 시기이다.

교과서에 따라 링컨 대통령이 총 유권자의 10%가 헌법과 연방에 대한 충성을 서약하면 대통령의 사면권을 적용, 남부연합에 가입했던 주라고 할지라도 연방전부에 재 편입될 수 있게 하자는 “사면 및 연방 재편입에 관한 포고령(Proclamation of Amnesty and Reconstruction)”을 발표한 1863년을 재건시대의 시작으로 잡기도 한다. 대통령 안이 남부 인사들에게 너무 관대한데다가 연방 재가입 여부는 대통령이 아니라 의회의 동의가 필요한 사안이라는 점, 그리고 대통령의 재건 계획에 사회적 경제적 재건 조항이 빠져있다는 점에서 당시 의회의 공화당 급진파는 반발을 했다. 1864년, 의회는 좀더 강화된 재건 계획인 웨이드-데이비스 법안을 통과시키는데, 링컨은 이를 처리하지 않는 방식으로 거부권을 행사한다. 이듬해 링컨이 암살된 뒤 링컨 대통령의 뒤를 이은 앤드류 존슨 대통령은 남부연합에 대해 링컨보다도 더 온건한, 일명 남부 회복 (restoration) 정책을 취하면서 의회와 대립했다. 이후 의회와 대통령간의 몇 가지 정치적 대립의 결과 존슨 대통령이 탄핵의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1865년에서 1866년 사이, 남부의 각 주에서는 일명 흑인 단속법이 시행되었고, 이에 반발한 북부 덕에 1866년, 의회 선거는 공화당 급진파의 압승으로 귀결되었다. 남부의 주정부들은 연방에 재가입하기 위해 과거 노예의 시민권을 법적으로 규정한 수정 헌법 14조를 각 주의 헌법으로 받아들여야만 했다. 이 때문에 신생 주 정부는 일반적으로 공화당 성향을 지니게 되었다.
사실 재건시대의 성격이나 성과, 그리고 한계에 대해서는 미국 역사학계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데, 당시 발생했던 일련의 역사적 사실 외에도 누구의 입장에서 혹은 어떤 이해관계에서 그 시대를 바라볼 것인가 하는 문제와도 관련이 있겠다.

가령 종전 기득권세력이었던 남부의 보수적 백인의 시선에서 보자면, 남부로 이주한 북부인들은 카펫배거 (Carpetbagger, 투기꾼)이었으며 이들 이주자들이나 혹은 흑인들에게 동조한 남부인들은 스캘러왜그 (Scalawag, 정치깡패)였다. 노예 상태에서 해방된 흑인들의 자립기반을 만들고 교육시키기 위하여 의회가 만든 해방노예국(Freedmen's Bureau)의 활동 역시 이들에게는 재정을 탕진하는 사업으로 비쳐질 뿐이었다. 해방 노예국이나 급진적 공화파세력, 노예 상태에서 해방된 흑인들에 대한 극도의 적개심에 바탕한 테러집단KKK (Ku Klux Klan)도 당시의 산물이다.

하지만 자유민이 된 흑인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능동적으로 자신들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수 있던 시기가 바로 재건시기였으며, 북부의 급진적 공화당의 입장에서 보자면 짧은 기간 내에 전쟁으로 완전히 초토화 된 남부지역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획득했던 시기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1877년, 워싱턴에서의 정치적 야합의 결과 연방군이 일시에 철수하게 되었고, 남부의 각 주는 다시 (과거 남부 연합을 구성한 기득권 세력이었던) 보수파들이 장악한 주정부가 새로 구성되면서 재건시대는 갑작스레 막을 내리게 된다. 여기서 정치적 야합이란 인기가 시들해진 결과 선거인단 투표에서 (집권정당임에도 불구하고) 1표 차이로 대권을 잡게 된 공화당의 헤이예즈가 대권을 위해 이 남부에서의 연방군을 철수시키는 조건을 민주당에 내건 물밑 협상을 일컫는다.

1866년 의회를 완전히 장악할 수 있었던 공화당이 불과 10여 년 만에 세력이 약화된 여러가지 요인 중에는 그랜트 정부의 부패를 빼놓을 수는 없다. 50달러 지폐의 주인공인 율리시스 그랜트는 남북전쟁 당시 북부의 전쟁영웅이자 앤드류 존슨 이후 압도적인 대중적 인기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되고 재선까지되었던 인물이다. 그러나 전쟁당시 위도한 지도자였던 그랜트가 사람 보는 안목은 영 바닥이었던지, 그랜트 행정부가 집권한 후 측근들은 유니언 퍼시픽으로부터 터무니없는 공사대금을 수령한 유령 건설회사 크레딧 모빌리에 주식의 부당 수령 사건, 양조업자들의 세금포탈을 도운 위스키 링 사건 등 크고 작은 뇌물과 비리 사건 등에 줄줄이 연루되었던 것. “그랜티즘”은 부패와 탐욕의 다른 이름이 되었다.

집권 4년차에 접어든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에서도 그간 청와대 홍보수석 비서관 추부길, 대통령의 처형의 뇌물수수사건에 대통령의 대학동창인 천실인씨가 연루된 사건 등 이러 저런 비리 사건이 있었는데, 최근 함바집 비리에 연루되어 조사를 받고 있는 장수만 방위산업청장도 이대통령의 경제공약을 설계했던 인물이라고 한다. 재건계획에 찬물을 끼얹은 그랜티즘을 떠올리라. 공정사회를 구현하겠다는 야심이 있다면, 측근 비리부터 잡아야 할 일이다.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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