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 285회
보스톤코리아  2011-02-14, 13:54:56 
올겨울은 여느 겨울보다 보스톤 지역에 눈이 많이 내렸다. 정말 '폭설'이란 단어가 잘 어울렸다. 겨울에 태어난 탓일까 겨울을 좋아하고 눈을 유난히 좋아하는 내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세 아이가 집에 와 있던 방학 동안에도 몇 날 며칠을 눈을 치우느라 고생을 했다. 아이들이 모두 학교로 돌아가고 나니 이제는 눈치우는 일이 걱정되었다. 마침 막내 녀석의 어릴 적 친구 아빠가 눈을 치운다기에 전화번호를 받아 부탁해놓아서 다행이었다. 며칠째 하늘이 잿빛으로 가득하더니 오늘 아침에는 창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햇살이 곱다. 봄이 오려는가 싶어 가슴이 설렌다.

그 누구보다도 뉴잉글랜드 지방에 사시는 노인들의 겨울이 참으로 힘겹고 길었을 것이다. 자식들이 찾아와야 함께 동행할 수 있는 노인들의 생활이 올겨울의 혹한과 폭설로 발이 묶이고 말았을 일이기 때문이다. 올겨울이 유난히 춥고 긴 탓도 있을 테지만 밖에 나와 산책도 즐기고 햇볕을 가끔 쬐며 몸과 마음의 건강을 챙겨야 할 노인들에게 더욱 뉴잉글랜드의 겨울이 길게 느껴진다. 이렇듯 긴 겨울을 보내며 봄이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으로 있다. 또한 경제적인 이유도 배제할 수 없는 일이다. 이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가정마다 연료비도 만만치 않은 이유이다.

어디 노인들뿐일까. 우울해지기 쉽고 삶에 의욕을 잃기 쉬운 갱년기와 폐경기를 겪는 오십 대 주부들이나 가정을 꾸려가는 가장들에게도 올겨울은 길고도 긴 계절이다. 우리의 몸은 마음보다 먼저 환경적 요인에 빠른 반응을 일으킨다. 다만, 우리가 그 몸의 반응을 빨리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외부적인 환경으로 감기몸살이 올 것 같으면 벌써 몸이 알려주지 않던가. 우리의 몸은 이처럼 온 우주 만물과 함께 교감하고 있는 이유일 게다. 계절적인 환경 요인으로 우울해지기 쉬운 요즘 가정에서부터 자신의 건강과 가족의 건강을 챙길 수 있으면 좋겠다.

이렇듯 긴 올겨울을 견디던 노인들에게 환한 웃음과 행복을 나눌 수 있었던 일이 있었다. 지난 토요일(02/05/2011) '충청향우회 설날 경로 떡국 잔치'가 있었던 것이다. 그날 참석은 못했지만, 다녀온 동네 동생으로부터 얘기를 들으며 어찌나 마음이 훈훈해 오던지 감사한 날이었다. 떡국 잔치에 모인 분들이 모두 60여 명이 넘었으며 맛있는 떡국과 설명절의 따뜻한 얘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이 귀한 자리를 마련해 준 충청향우회 회원들과 상록회(노인사역 담당) 봉사자들 그리고 한국식당(이가그릴)에 감사한 마음이다. 날씨는 춥지만, 마음이 따뜻해지는 얘기다.

이처럼 행복은 마음에서부터 차오르고 몸소 실천으로 옮길 때 더욱 큰 기쁨을 맛보고 누리는 것이리라. 삶에서 나를 위해서 쓴 시간보다 남을 위해서 쓴 시간이 진정한 행복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누군가를 위해 '봉사'라는 말을 쓰지 않더라도 내게는 부모가 있고 자식이 있지 않은가. 부모가 곁에 함께 있지 않다고 할지라도 내 부모가 있는 곳에서 그 누군가가 내 부모를 위해 사랑과 정성을 쏟아주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저절로 감사가 차오르는 것이다. 이렇듯 이민자의 생활이 여유롭지 않지만, 바쁜 시간을 쪼개어 누군가에게 사랑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봄은 이렇게 오는가 싶다. 뉴잉글랜드의 올겨울이 폭설로 말미암아 유난히 춥고 길었지만, 이 긴 겨울의 혹한을 견디고 겨울나무와 자연들은 잎을 내고 꽃을 피우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은 언제나 정직하다. 우주의 법칙에 순응하며 순리를 어기지 않고 받아들이고 기다린다. 사계절이 뚜렷한 뉴잉글랜드 지방에 산다는 것이 참으로 감사하다. 계절과 계절의 샛길에서 가끔 자연을 만나며 그 속에서 나를 바라본다. 자연은 저렇듯 보채지도 안달하지도 않고 순리를 기다리는데 사람만이 환경을 탓하고 사람을 탓하며 불안에 살고 자신을 들볶으며 사는가 싶다.

세상의 세월로 나이 들어 작아지고 계절 날씨로 움츠러든 노인들의 몸 그래도 마음만은 넉넉해서 훈훈하고 따뜻한 이월이면 좋겠다. 바쁘고 고된 이민생활에 쫓겨 찾아오지 못하는 자식에게 서운함보다는 안쓰러운 마음이 먼저 자리하면 좋겠다. 홀로 계신 노모나 노부를 찾아뵙지 못해 죄인인 마음보다는 따뜻한 목소리라도 마음으로 전해 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혹독한 추위를 견디며 봄을 준비하는 겨울이듯 마주 보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는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이 있지 않던가. 이렇듯 춥지만 따뜻한 정과 사랑으로 봄은 이미 오고 있는 것이다.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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