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다시 읽는 미국사 : 19세기를 알아야 미국 영토가 보인다 (3) |
보스톤코리아 2010-11-08, 15:49:36 |
눈물의 길과 원주민 강제이주법
아메리칸 인디언들이 겪었던 비극적 역사의 한 상징이 된 눈물의 길 (Trails of Tears)은 앤드류 잭슨 대통령이 주도한 원주민 강제이주법 (Indian removal act of 1830)의 산물이었다. 혹자는 이 이주 정책에 대해 피정복자를 (죽이는 대신) 안전한 정착촌으로 이주시킨 인도적인 처사라 평가하기도 한다. 그런데, 과거 민병대 시절 잭슨 대통령은, 이미 1812년 크리족과의 전쟁당시부터 인디언들 사이에서는 무자비한 인디언 토벌꾼이자 살육자로 꽤 유명해, “예리한 칼”이라는 별명으로 회자되기도 했던 인물이다. 1819년 스페인을 압박해 얻어낸 플로리다의 주지사시절, 인디언을 몰아낸 땅에서 땅투기에 올인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참정권을 일반인들에게 확대시킴으로써 “잭슨 민주주의”로 기억되는 잭슨이지만, 그의 민주주의는 백인 남성의 가치였다. 그나마 완화된 의미에서 “제거” (removal) 계획으로 표현되곤 했던 원주민 이주 정책이 실제로 예리한 칼의 살육과는 차원이 다른 인도주의적 성격을 띄고 있었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무엇보다도 많은 원주민 부족들은 조상 대대로 살아왔던 터전을 “어머니”와 동일하게 취급했기에, 그들의 땅은 애착의 대상이지 거래나 타협의 대상일 수 없었다. 그런만큼 강제 이주 조약에 서명하라는 “백인 정부”의 요구는 대다수 인디언들에게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였다. 그러나 강제 이주법령의 시행은 이미 군사 작전이었다. 가령 이주를 거부했던 크리크족은 미국 정부와 전쟁으로 맞섰지만, 전쟁 과정에서 죽거나 포로가 되어 쇠사슬에 결박된 채로, 또 총칼의 위협을 받으며 중부의 황량한 정착촌으로 이송“당했다.” 기독교까지 포함한 유럽문명을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고유 문자 세쿼야를 가지고 있던 “개화된 부족” 체로키 족은 법적으로 저항을 했고 대법원장 마샬로부터 체로키 부동산 몰수법이 위헌이라는 판결을 얻어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군사력에 밀려 조지아에서 테네시, 켄터키 지역을 거쳐 오클라호마까지 쫓겨간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Amazing Grace가 실은 백인들과의 전쟁에서 전사한 동료들, 그리고 이주 과정에서 죽어간 이들의 장례를 채 치르지 못한채 쫓겨가야 했던 체로키족이 죽은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며 불렀던 피맺힌 절규의 노래였다고 한다. (이후 중부로 이주해간 체로키족은 대의제에 바탕한 독립국가 체로키국을 건설했으며, 체로키국의 역사는 오클라호마 “주”의 역사보다 앞선다. 현재 이곳의 주민들은 미 연방 정부와 체로키국에 동시에 시민권을 가진 일종의 “이중국적자”로 살고 있다.) 그것은, 명백한 운명 (Manifest Destiny)이었을까? 1845년, 텍사스가 미 연방에 합병되면서 영토 확장론이 거센 바람을 탔다. 특히 기자였던 오 설리반이 “해마다 증가하는 수백만 미국인들이 자유롭게 뻗어나갈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할당해주신 대륙을 온통 뒤덮기 위한 명백한 운명을 이행하자”는 글을 한 잡지에 게재했다. 이후 미 대륙 내에서의 영토확장은 일종의 대의라는 정서가 급속히 퍼져나간다. 특히, 남북전쟁 (1861~1865) 시기부터 정부는 홈스테드법(Homestead Act of 1862) 을 제정하는 등 서부 개척을 더욱 장려(함으로써 미국 영토를 공고히)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홈스테드법은 서부의 “문명화 되지 않은 지역”으로 이주하여 농경지를 개간하고 일정기간 거주하는 미국민들에게 가구당 160에이커의 농지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을 골자로 했다. 한편, 영토 팽창에 따라 운송망 확장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국가적 차원에서 철도 건설을 장려했다. 철도는 남북 전쟁 이후 서부 개척의 물적토대가 되었다. 이런 정책들은 신대륙으로 이주하여 식민 지배자를 독립혁명을 통해 물러가게 하고, 새로운 땅을 삶의 터전으로 일구는 미국식 프론티어 정신을 반영하는 듯한 정책이다. 그러나 “문명화되지 않은 지역”은 인디언들이 거주해왔거나, 이주해온 지역일수도 있다. 백인들의 서부 개척에 “방해”가 되는 인디언 부족들은 번번히 삶의 터전을 옮길 것을 요구받았다. 1860년대부터 만들어진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금이 발견되거나 철도가 지나가야 하는 등의 “경제적 가치”가 발견되는 순간, 미국정부와 인디언 부족들이 맺었던 조약들은 계속해서 휴지조각이 되었다. 아리조나, 유타, 그리고 서부 미네소타에서 몬타나, 다코다등 대 평원 지대에서의 인디언들은 “보호구역”으로 격리 (혹은 감금!)되거나 청소되었다. * 1830년대 눈물의 길을 지켜봤던 프랑스의 학자 토크빌은 “돈에 대한 숭배가 인간에 대한 애정을 압도하는 나라를 나는 미국 이외의 어느 곳에서도 본 적이 없다”고 썼다고 한다. 2010년 미국 정부가 과거사에 대해 인디언 부족들에게 정식으로 사과한 마당에 (그렇다고 토지를 반환한것은 아니다) 과거 자신들에게 호의를 베풀었던 원주민들을 제거하면서 확장했던 영토가 정말 신이 미국에 부여한 명백한 운명이었다는 망언을 하는 사람은 없을 게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의 세계화는 인간에 대한 애정을 넘어서는 돈에 대한 숭배를 오늘날 더욱 폭력적이고 전지구적인 방식으로 재현하고 있지는 않을까, 경계해 볼 일이다.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소피아 [email protected]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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