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 271회 |
보스톤코리아 2010-11-01, 12:31:32 |
사람은 때로 자신이 꿈꾸었던 일에 대한 자부심 내지는 그 꿈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에 산다. 물론 세상을 살아온 연륜이 어느 정도 쌓일 때쯤일 게다. 우리 동네의 이민역사는 여느 동네보다 좁고 깊다. 보스턴은 많은 숫자의 한인들이 모여 사는 뉴욕이나 LA와는 판이하게 다른 곳이다. 보스턴은 오래 산 '이민 토박이'들이 많고 그의 일가 친척들이 주변에 여럿 사는 곳이다. 보스턴에서 남의 흉보려면 가족들 눈치 보면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다른 타 주에서 한국 사람이 이사를 오게 되면 눈에 띄게 되고 그가 눈군지 또는 누구의 친척인지 금방 알아차리게 된다.
보스턴의 '이민 토박이'들의 이민 역사는 둘로 나눌 수 있다. 1970년대에 유학을 목적으로 왔다가 직장을 잡고 아예 미국땅에서 살게 된 이민자들이 있다. 그리고 내 조국 내 땅의 슬픔이었던 1950년의 전쟁과 함께 남은 아픔과 고통의 시간이 지워지지 않는 우리의 역사. 그 전쟁 속에서 자식을 잃고 부모를 잃고 팔다리가 잘려나간 슬픔과 긴 고통의 시간. 또한, 하늘 아래에 있는 모든 것들이 부서지고 무너진 폐허에서 허덕이는 가난과 흩어진 가족 그리고 고아들이 그 시간의 흉터 자국으로 남았다. 그 슬픔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타국 멀리 남의 나라 땅에까지 뿌리를 내리게 된 '산증인'들이 되었다. 그 '산증인'들이 자신을 희생하고 언어도 문화도 얼굴 모양과 색깔도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해 미국에 정착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그들이 심어놓은 나무의 뿌리가 자라 가지를 만들고 싹을 내고 잎을 키우고 꽃을 피우다가 열매 맺으며 그렇게 또 다른 이민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1970년대 뉴-잉글랜드 지방의 한인 이민자들의 숫자는 아주 적었단다. 80년대에 들어서며 보스턴을 중심으로 유학생들의 숫자가 많아지면서 한인 이민자들이 많이 늘었다는 것이다. 그 긴 역사 속에 그네들과 나도 낯선 타국 땅에서 자식들을 키우며 '코리안-아메리칸'의 꿈을 키우며 이민자로 살아가고 있다. 결혼 전 '아트쟁이의 꿈'을 가지고 뉴욕에서 2년을 보냈다. 그리고 남편과 만나 연애를 하다 결국 나의 꿈을 접고 결혼을 선택했다. 그렇게 보스턴에서 제2의 인생이 시작되었다. 친정 가족이 없던 내게는 모두가 낯선 곳, 낯선 사람들뿐이었다. 보스턴 가까운 동네에 여기저기 사는 시집 가족들의 수를 합하면 사돈에 팔촌까지의 숫자는 거의 80여 명이 다 되었다. 그때에는 오로지 남편만이 내가 믿고 의지해야 할 단 한 사람이었다. 어느 곳에서든 어느 사람과 만나든 모두가 시댁 어른과 연결되지 않은 관계가 없었다. 나이 어린 새댁이 감당하기에는 참으로 자유롭지 못한 버거운 생활이었다. 이렇게 20여 년을 보내니 이제는 시댁 가족들과 상관없이 주변의 많은 사람이 자유로워지고 편안해졌다. 그만큼 남을 의식하지 않고 누구보다도 나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증거일 게다. 주변의 좋은 분들을 만남의 기회가 적어 깊은 관계를 만들지 못했다. 그분들 역시도 누구 집 며느리로 있기에 선뜻 다가서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요즘은 연배가 더 높은 분들과 만나 속 깊은 삶의 얘기를 나누니 인생의 깊이를 배울 수 있어 고마운 마음이다. 골프를 시작하니 남.여.노.소 없이 자유로이 만날 수 있어 좋고 대화의 폭도 넓어져 좋다. 여느 수다와는 달리 삶의 깊은 얘기를 나눌 수 있어 좋다. 한 5년 전 처음 골프를 시작할 무렵 골프 레슨을 해주신 분(사부님)이 오래도록 태권도 관장님으로 계시며 몇 년 전부터 골프 레슨도 하시는 '김 관장'님이시다. 이 보스턴 지역에서 40여 년이 다 되도록 사시며 한인사회에서도 많은 활동을 하시는 분이다. 요즘은 사부님이신 관장님과 언니(사모)와 함께 골프를 가끔 나가고 있다. '한 번 사부는 영원한 사부'라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필드에 나가면 부족한 제자의 모습에 급하지 않은 어조로 말씀해주시고 제자를 위해 몸소 코치를 해주신다. 그뿐일까, 곁에서 언니도 인생 선배로서 그리고 골프 선배로서 삶의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김 관장님은 나와 같은 '띠동갑'이시다. 가끔 말씀 중에 생각하는 이상이나 삶의 방식이 비슷할 때가 있다. 창작에 대한 열정이 높으신 편이기에 당신이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열정을 가끔 말씀해 주신다. 그래서일까, 사부님의 가르침이 남다르게 다가온다. 무엇이든 열심히 듣고 배우려는 편이라 사부님도 제자를 아껴주신다. 요즘은 사부님이 한 분 더 늘었다. 바로 관장님의 옆지기인 언니가 나의 사부님이 되었다. 한 제자에게 사부님이 둘이 계시니 이제는 '사부님'과 '싸부님'의 이름으로 불러 드려야겠다는 생각이다. 골프를 좋아하는 남편도 이 두 분을 좋아하고 따르니 더욱 고마운 일이다.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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