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여행 기행문 6 |
보스톤코리아 2010-09-06, 13:59:37 |
원래 스케줄에 없었던 앙카라 관광이었으나 6.25 한국 동란시 15,000 명이 넘는 병력으로 참전 3,000 여 명이 넘는 사상자를 낸 그 공로를 기리기 위해 우리는 아침 일찍 한국 공원 을 방문한다. (1,005 희생 용사의 무덤이 부산 유엔군 묘지에 안치되어 있음-김성찬 해군 참모 차장) 아담하고 깨끗하게 가꾸어진 공원에는 희생을 당한 군사들의 기념비에 그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이른 아침에도 불구하고 공원을 열어준 관리인에게 감사하며 일행은 이번 여행의 휘날레인 이스탄불로 향한다. 짧은 여정은 가장 관광지가 많은 이스탄불을 남겨 두고 있다. 휴식의 기회도 없이 우리는 계속 달린다. 화장실 가는것도 통제, 서둘러야 했다. 이들의 화장실은 호텔이나 공중 변소나 가는 곳마다 그 시설이 다르다. 여기 보이는 화장실은 앙카라에 가까운 곳인데 변기가 우리 수의대가 잠시 편입 되었던 (수원)농대 기숙사인 상록사와 비슷하다. 다만 다른것은 변기 옆에 손을 놓을 수 있는 수도 꼭지가 달려있다. 옛날에는 용무를 본 후에 손으로 닦았다는 안내원의 설명을 들으니 그 수도 꼭지의 의미를 알 듯하였다. 앙카라에서 이스탄불로 가는 길은 높고 낮은 산맥 사이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비옥한 평야였다. 6 시간을 달린 후 우리는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보스포러스 해협을 건너고 있었다. 불르 모스크: 불르 모스크는 설탄 아메드 1 세에 의하여 시작되었는데 당시 오스트리아 합스 부르그 왕국과의 13 년 동안의 전쟁에서 치욕적인 협상을 맺고 전쟁을 끝낸 것을 만회하기 위해서 1609 년 8 월에 시작, 그가 죽기 6 개월 전인 1617 년 5 월에 끝났으며 부대 시설까지 완전히 끝낸 것은 1619 년이다. (유재원의 터키, 1 만년 시간 여행에서) 내부를 완성하기 위해서 푸른 타일 21,043 를 사용, 건물 안에 들어서면 푸른 느낌이 들고, 260 개의 아름다운 스테인 그래스(stain glass) 아치형 유리창은 조명, 온도를 잘 조정하여 준다. 43 미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돔(dome) 식의 천정은 4 개의 육중한 대리석 기둥에 의하여 유지되며 내부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미후라브는 마호멧이 태어난 사우디 아라비아의 메카를 향하고 있다. 불르 모스크는 이곳 사람들이 와서 기도를 하는 곳으로 들어갈 때 신발은 벗어서 신주머니(플라스틱 백) 에 넣으며 여자는 머리에 스카프를 해야 한다. 스카프가 없는 사람은 입구 앞에서 빌려 준다. 다리나 가슴 등이 노출 되어 있으면 가리게 되어 있다. 밖으로 나오면 6 개의 높은 미나렛드를 보게 되는데 이는 신전의 상징으로 옛날에는 이맘(이스람 목사)들이 꼭대기에 올라가서 커다란 목청으로 기도를 외쳤다고 한다. 데오도시우스 오벨리스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세 마리의 구리로 만든 청동 뱀이 서로 꼬이면서 올라가는 것이 있는데 이는 기원전 479 년 그리스가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이기고 페르시아군의 방패를 빼앗아다가 만들어서 델포이의 아폴로 신전에 세웠는데 로마의 콘스탄티노스 황제가 서기 330 년에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뱀의 머리 부분은 없어지고 몸뚱이만 남아 있는데 1847년에 우연히 윗턱 하나가 발견 되어서 이스탄불의 한 박물관에 보관 되어 있다.(유재원 의 ‘터키, 일 만년의 시간 여행’ 에서) 청동뱀에서 좀 떨어진 곳에 또 하나의 오벨리스크가 있다. 이는 콘스탄티노스 7 세 포르피로 예네토스 오벨리스크 로 알려진 34 미터의 탑이다. 말 경기 수레가 도는 곳을 표시 하였던 것이라 한다. 아름다운 성 소피아 사원: 지금의 성 소피아 사원은 유스티 니아노스 황제가 석조로 다시 지은 것으로, 형(돔)의 하늘과 네모나 있다고 믿었던 땅(지구)을 상징 하도록 지어 졌으며 서기 532년 2월 23일부터 시작해서 5 년 10 개월 4 일이 지난 서기 537년12월 6일에 완공이 되었다. 천정은 56 미터 높은 둥그런 돔(dome) 으로 구성되어 있고 109개의 원주 기둥과 91 개의 창이 있다.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황제가 처음으로 발을 들여 놓으면서, “솔로몬이여, 내가 그대를 이겼도다!” 라고 외쳤다고 전해진다. 현재의 사원은 서기 996 년에 개축 되었으나 서기 1453년 5월 3일 마흐메드 2세에게 비잔틴 왕국이 멸망하여 모스크로 변하는 바람에 961 년동안 동방 정교회의 총 대주교청 대 성당으로서의 막을 내리게 되었다. (유재원의 ‘터키, 1 만 년의 시간여행’ 에서)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윤상래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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