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 263회
보스톤코리아  2010-09-06, 13:40:48 
언제 만나도 환한 웃음의 얼굴로 달려오는 그녀는 참으로 사랑스럽다. 그녀의 맑고 밝음 속에는 알 수 없는 슬픈 빛이 서려 있다. 그녀를 만나면 왠지 모를 슬픔이 내 가슴으로 스며든다. 너무 밝아서 너무 맑아서 너무도 투명해서 더욱 잘 보이는 그녀의 모습이 때로는 깨어질까 다칠까 염려스럽고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이 험한 세상 잘 이겨나갔으면 하고 마음으로 기도할 뿐 특별히 그녀에게 해줄 것이 없다. 가끔 만나면 그녀가 쉽지 않게 꺼내는 자신의 가정 얘기를 곁에서 들어줄 뿐이다. 이렇다저렇다 답을 줄 수 없는 가정 얘기이기에 더욱이.
여기에도 저기에도 완전히 스며들지 못하는 자신의 색깔이 가끔은 속이 상해 울고 싶은 것이다. 때로는 자신을 자책하기도 하고 곁의 가족들에게 탓을 돌리기도 하다 이내 미안한 마음이 드는 여린 아내이고 엄마이다.

그녀의 남편은 미국인(백인)이다. 든든한 남편의 직장으로 가정의 안정과 세 아이의 엄마로서 사랑받는 그녀이다. 하지만, 자라온 환경과 문화와 언어 그리고 미국인과 한국인이라는 인종적인 차이를 뛰어넘기에는 그녀가 감당해야 할 몫이 너무도 무겁고 버거운 것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가듯 그녀는 낯설기만 한 것이다.
마주 보는 사람이 같은 얼굴 색깔을 하고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언어를 쓰며 살아도 때로는 외로울 때가 있지 않은가. 하물며 서로 다른 얼굴 모양과 색깔 그리고 음식과 언어에서 오는 장벽이 어찌 없을까. 언어를 구사한다고 한들 한계가 있지 않은가. 또한, 자식이 커가면 커가는 대로 아이들에게서 동양엄마로서 알게 모르게 부딪히는 현실적인 문제와 고민이 있다. 아이들이 사춘기를 들어서며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에 있을 때 또 한 번 겪어야 하는 아픔이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겠지만 많은 이들이 겪는 일이다.

가끔 그녀와 만나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 아린 가슴이 스쳐 지난다. 밖으로 보이는 그녀의 모습은 활달하지만, 정작 수줍음이 많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남편이 미국 사람이니 당연히 시집 가족들도 미국인이고 주변의 사회활동도 미국인들과의 교제가 많은 것이다. 하지만, 그들과 함께 있어도 자신은 언제나 한국 여자이기에 겪어야 하는 외로움과 소외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차라리 어려서부터 미국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국제결혼이 별 불편함이 없지만, 살면 살수록 더욱 깊어지는 자신에 대한 공허에 우울한 것이다.
사람은 늘 자신이 가지지 않은 것에 대한 동경이 있다. 가끔 한국인 부부들을 만나 한국 음식을 먹고 같은 언어를 쓰며 함께 지내는 그 시간이 그녀에게는 삶에서 느끼지 못했던 또 하나의 커다란 행복이 되었다. 하지만, 한국인 부부들에 대한 그리운 마음이 자신을 더욱 작아지게 만드는 것이다. 미국인 부부들 속에서 느꼈던 소외감을 한국인 부부들 사이에서도 떨쳐버릴 수 없는 일이다. 그녀가 미국 남편을 둔 한국 여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때로는 그들과 어울리는데 보이지 않는 장벽이 되기도 한다. 그것이 그녀를 더욱 우울하게 하는 이유이다.

그녀의 상냥하고 친절한 성격이 다른 이들에게는 불편함을 전달했는지도 모른다. 그저 한국 사람의 정이 그리워 가까이하고 싶은 마음이지만, 그 마음을 이해하기보다는 부담스럽게 여기는 것이다. 그녀의 마음은 이렇게 여기저기에서 부딪히며 상처가 더욱 깊어져 우울해지고 자신감을 잃어가는 것이다. 그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하는 자신을 스스로 자책하고 속앓이를 하며 사는 그녀. 그녀에게 툭툭 털어버리라고 말을 해주지만 그 말이 얼마나 위로가 될까. 또한, 나 역시도 한국 남편을 둔 아내로서 그녀를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얼마나 될까.

미국의 넓은 땅에서 좁은 이민자들의 삶의 모습은 그 색깔과 모양과 소리가 참으로 다양하다. 타국에서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꾸려야 하는 이민자들의 생활은 그리 생각처럼 녹록치 않다. 그래서 그 삶의 모양과 색깔과 소리는 더욱 울퉁불퉁하고 올록볼록하고 울긋불긋한 이유일 게다. 어쩌면 그 이유로 서로 주고받는 얘기나 상처가 더 깊이 박히고 새겨져 오래도록 지울 수 없는 상흔으로 남는 것이다. 이런저런 일들로 마음이 여린 그녀도 가슴에 깊은 멍하나 들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 멍 자국의 그늘이 그녀의 우울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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