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 260회 |
보스톤코리아 2010-08-16, 11:24:23 |
가끔 연세가 높으신 어른들을 만나면 그 노인들에게서 세월을 잊은 천진스런 어린아이의 맑고 환한 웃음을 만난다. 지난 주의 일이었다. 교회에서 주일 예배가 시작되었는데 예배가 막 시작될 시간쯤 분홍색 원피스에 하얀 파마머리를 곱게 빗어 올린 권사님이 앞자리에 앉으셨다. 여느 때는 일찍 오셔서 앞자리에 앉아계셨는데 그날은 몸이 불편하셨던 모양이다. 목사님의 설교가 한창인 때에 정갈하게 단장한 권사님의 하얀 머리가 고개를 떨어뜨리길 몇 번을 반복하는 것이었다. 곁에 앉아 예배를 보던 교인과 뒤에 앉은 교인들이 걱정이 일었었다.
예배를 마치고 본당을 나와 인사를 나누는 시간에 곁에 서 있던 교회 집사님이 권사님에게 여쭌다. "권사님, 많이 힘드셨나 봐요?" 하고 여쭈며…. "보약을 좀 드셔야 겠어요."하니 권사님이 말씀하신다. "무슨, 이 늙은이가 보약은 웬 보약?" "하나님이 부르시면 아무 때나 기다리다 환한 웃음으로 달려가야지." 하신다. 두 분 곁에서 그 대화를 지켜보던 나는 참으로 감동의 시간이었다. 저 맑고 밝은 투명한 마음은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80평생을 넘게 살아오신 신앙의 힘이고 고백이었다. 다른 곳에서보다 교회를 가면 80을 훌쩍 넘기신 어른들을 여러분 뵐 수 있다. 쇠약해진 몸을 지팡이에 의지하고 한 걸음 한 결음 옮기며 마음속의 기도와 자식을 위한 부모의 마음으로 정성을 모으고 오시는 것이리라. 자신의 의지보다는 자식을 따라 이민 길에 오르신 어른들이 더 많을 것이다. 외롭고 쓸쓸했던 타국에서의 생활이 그 어느 세대보다도 더 힘이 들었을 어른들이시다. 젊어서 이민을 온 사람은 말이라도 배우고 운전이라도 배웠을 테지만, 이 연세의 어른들은 말이나 운전도 쉬이 배우지 못하고 자식에게 의지하고 산 세월이 더 긴 것이다. 이 연세에 있는 어른들은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세월의 길이만큼 역사의 산증인들이다. 올해가 광복절(光復節) 65주년을 맞이한다.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문자로만 읽고 귀로만 들어 알고 있는 우리의 역사를 이분들은 눈으로 직접 보고 귀로 직접 듣고 몸소 겪은 일이다. 한반도가 일제의 일제 강점기(일제치하 36년)에 있을 때와 해방(1945년 8월 15일)을 맞이한 때 그리고 6.25 전쟁(1950년)을 직접 겪었던 몸과 마음에 커다란 아픔과 상처와 고통으로 보낸 어른들이시다. 참으로 모진 세월을 참아오시고 살아오신 내 부모 이전의 역사의 산 증인들이다. 36년간의 일제 치하에서 몸소 겪고 견뎌낸 세월 동안 그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의 시간이 있었으리라. 광복의 기쁨도 잠깐 전쟁의 피비린내 나는 잔인한 시간과 잘린 삼팔선을 놓고 가족과의 생이별은 죽음보다 깊은 형벌이었을 게다. 또한, 전쟁의 폐허에서 헐벗고 굶주리며 가족의 생계를 위해 죽을힘을 다해 하루를 살았을 그 시대의 어른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 온다. 그 가슴으로 산 분들이 또다시 고향을 떠나 타국에서 답답한 세월을 또 사신 것이다. 자신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간에 말도 통하지 않는 타국 땅에서 말이다. 산이 높으면 골짜기도 깊다고 하지 않던가. 길고 긴 인생 여정 동안에 수많은 일을 겪고 보냈을 이 어른들의 삶의 질곡은 그 누구보다도 깊고 어두웠으리라. 어두운 골짜기에서 만나는 빛은 더욱 환하게 느껴지고 간절했을 것임이 분명하다. 이 어른들이 어린아이처럼 환한 얼굴을 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처럼 삶의 험난한 계곡을 넘나들며 깨달은 것이 삶의 지혜인 까닭이다. 36년간의 일제 강점기에서 잃어버린 내 말과 글 그리고 내 자유가 얼마나 간절했을까. 내 조국의 자유와 해방을 염원하며 그 자유를 갈망하며 피 흘렸을 선조들의 광복(光復)이.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한인들이 모여 8.15 광복절(光復節) 기념행사가 치러진다. 이 기념행사에 참석하는 어른 중에는 연세가 80을 훌쩍 넘기신 어른들의 모습을 쉽게 뵐 수 있다. 그만큼 그 세대의 분들은 당신들이 몸소 겪은 일이기에 가슴에서 더욱 진한 감동과 감격으로 그날의 기쁨을 맞는 것이다. 어쩌면 긴 세월을 살아오신 만큼 세상에 대한 불평과 한(恨)이 더 많으실 텐데 이 어른들을 뵈면 얼굴빛이 환하다. 진정 광복(光復)의 진정한 뜻처럼 '빛을 되찾은 얼굴빛'으로 하루를 산다. 어린아이처럼 맑고 환한 눈빛으로 젊은이들을 바라보는 것이다.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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