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 258회
보스톤코리아  2010-08-02, 11:26:13 
며칠 전 진한 감동으로 다가왔던 얘기하나가 폭염의 무더위를 식혀주었다. 남편의 비지니스 공간에 한 달에 한 번 정도 몇 권의 작은 책자가 놓인 것을 몇 번 보았다. 그냥 지나치기를 몇 번 그러다가 어느 날 무심결에 책자를 들고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몇 해 전부터 한국마켓에서도 보았던 이 책자를 특별한 다른 종교의 광고 책자인 양 터부시하고 지나쳤던 것이다. 바로 다름 아닌 월간<마음수련>의 책자였다. 생활 속에서 만나고 느낀 삶의 진솔한 얘기와 삶의 지혜를 일깨워주는 누가 읽어도 편안하고 쉬이 읽을 수 있는 좋은 책자이다.

지난주 우연하게 이 책과 만나게 되었다. 그것도 하나밖에 남지 않은 책을 만나니 어찌나 반갑던지 말이다. 사실, 구독할 의사까지는 없고 지나다 만나면 그렇게 반가운 것이 '공짜'라는 이유는 아닐까 싶어 시커먼 속이 거울 속을 들여다보는 듯 그대로 보여 민망했다. 하지만, 이 책자를 통해 여러 번 감동을 받은 얘기들이 많다. 특별히 노인 문제를 놓고 건강이라든가, 죽음의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는 글에서 큰 감명을 받았다. 우리의 곁에 늘 직면하는 문제이지만 자꾸 밀어내고 멀리하고 싶은 얘기들은 일깨워주는 의식 있는 글이었다.

이번에 만난 얘기는 '박완서 선생의 <해산 바가지>'를 문학평론가이고 영인문학관 관장인 강인숙 님의 글이었다. '바가지'에 대한 예화는 오래전부터 많이 들어왔지만, 박완서 선생의 자전적 소설인 '해산 바가지'에 대한 글을 짧게나마 만나며 우리의 삶 가운데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새삼 느끼며 감동을 했다. 한 생명이 태어나고 자라서 성장하고 늙고 병들어 죽는 생ㆍ로ㆍ병ㆍ사의 피할 수 없는 길임을 그대로 느끼게 해주는 감동적인 얘기였다. 생은 이처럼 부모의 귀한 자식이 되고 자식의 소중한 부모가 되는 일임을 깨닫는 날이었다.
"여보, 저 박 좀 봐요. 해산 바가지 했으면 좋겠네."

내가 첫애를 뱄을 때 시어머님은 해산달을 짚어보고 섣달이고나, 좋을 때다, 곧 해가 길어지면서 기저귀가 잘 마를 테니, 하시더니 그해 가을부터 일부러 사람을 시켜 시골에 가서 해산 바가지를 구해오게 했다.
"잘생기고, 여물게 굳고, 정한 데서 자란 햇바가지여야 하네. 첫 손자 첫국밥 지을 미역 빨고 씻을 소중한 바가지니까."
이러면서 후한 값까지 미리 쳐주는 것이었다.
ㅡ 박완서 님의 <해산 바가지> 中

하늘이 주신 생명에 대한 경외와 손자ㆍ손녀에 대한 사랑이 깊었던 할머니와 그리고 시어머니와 며느리에 대한 지극히 평범한 고부간의 얘기이다. 하지만, 이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일상에서의 특별함이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잠시 깊은 생각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가족 간의 믿음과 고부간의 지극한 사랑이었다. 그 사랑 속에는 서로 존중하는 마음과 신뢰와 정성이 담겨 있었다. 이런 사랑이 있었기에 삶에서 만나는 즐겁고 행복한 시간 너머의 고통과 좌절의 순간까지도 서로를 안아주고 보듬어 주는 힘이 되었던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아픔을 바라보는 가슴이야 어찌 다 말로 할 수 있을까. 그것도 남이 아닌 내 어머니가, 내 아버지가 노환으로 병석에 누워계시고 치매라도 있으시다면 자식으로서 견딜 수 없는 아픔이며 고통일 것이다. 자식의 도리를 떠나 한 생명에 대한 경외와 귀함 때문이리라. 이 글을 읽으며 문득 시어머님을 떠올렸다. 세 아이를 손 수 키워주셨던 어머니를 생각하며 부족한 나를 또 바라보게 했다. 이제 팔십을 바라보시는 시부모님과 며느리인 나 자신을 생각하며 이 글 속의 주인공이 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고 물음을 던져보는 날이었다.

"여보, 저 박 좀 봐요. 해산 바가지 했으면 좋겠네."
가만히 생각과 마주하며 내게도 저런 기억의 '해산 바가지'가 있을 텐데…. 하며 시어머님에 대한 고마운 마음과 따뜻한 사랑이 온 가슴으로 전해져 왔다. 그래, 바로 이거로구나! 내게 남은 해산 바가지는 '고마움'이라는 생각을 했다. 철없던 시절(신혼)을 거슬러 올라 보니 시어머님의 그 사랑과 정성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막내며느리의 부족함을 감싸 안아주시고 세 아이를 정성스럽게 길러주시고 키워주신 그 사랑의 고마움이 '나의 해산 바가지'임을 깨닫는다.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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