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대법원장과 갈등
보스톤코리아  2010-03-19, 17:14:53 
존 로버츠 대법원장(사진 왼쪽)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서로를 비난하고 있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사진 왼쪽)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서로를 비난하고 있다.
( 보스톤 = 보스톤코리아 ) 정성일 기자 = 진보 성향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최근 보수적인 판결을 내리고 있는 대법원 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1월 의회에서 있었던 국정 연설에서 기업의 무제한적인 선거 광고를 허용한 대법원 판결을 공개적으로 강하게 비난했고, 이에 보수 성향의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최근 강연에서 강한 유감을 표시해 논란이 벌어졌다.

지난 주 로버츠 대법원장은 오바마 대통령이 국정연설에서 대법원 판결을 공개 비난한 데 대해 이례적으로 강한 어조로 반박했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오바마 대통령의 행동은 예의에 어긋난 것”이라고 지적하며 “대통령의 국정 연설이 정치적 선동 집회로 변질됐다”고 비난했다.

앞서 오바마 대통령은 국정 연설에서 “권력 분립을 존중하지만, 거의 100년 가까이 이어져온 법을 대법원이 뒤집은 것은 외국계 기업을 포함해 특수 이해 집단의 자금이 무제한으로 선거판에 쏟아져 들어올 수 있는 문을 열어준 것”이라고 힐난했다.

로버츠 대법원장이 반격에 나서자 백악관도 오바마 대통령을 지원 사격하고 있다. 데이빗 액설로드 백악관 선임 고문은 지난 14일 ABC방송에 출연해 “대법원이 판결한 대로라면 어떤 로비스트도 이제 아무 의원에게나 접근해 ‘이 법안에 대해 우리가 원하는 대로 투표하지 않으면 수백만 달러의 선거 자금을 당신 지역구의 경쟁자에게 주겠다’고 말할 수 있다”면서 대법원의 판결이 잘못되었음을 다시 한 번 주장했다.

로버트 깁스 백악관 대변인도 폭스 뉴스에 출연, “중요한 것은 다가올 선거에 대법원이 익명의 정치 기부가 가능하도록 했다는 것”이라면서 “이런 기부들은 특정 상하원 의원의 당락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들이 행정, 입법, 사법의 3권 분립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으며, 대법원의 판결은 비록 논란이 되더라도 존중을 받는다. 그러나 판결의 결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즉 대법관 개개인의 이념적 성향과 가치관은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들의 판결에 따라 정치,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몰고 오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은 민주당이 행정부와 입법부를 장악하고 있지만 사법부만은 예외다. 대법관 9명 가운데 존 로버츠 대법원장을 비롯한 6명이 공화당 출신 대통령에 의해 지명되었고 민주당 정권에서 임명된 사람은 오바마 대통령이 지명한 소냐 소토메이어 대법관을 포함해 3명에 불과하다.

대법관들의 이념적 성향은 보수와 진보가 4대 4, 중도 1명으로 분류되고 있으며, 최고령자이자 진보 성향 대법관들의 리더 격인 존 폴 스티븐스 대법관이 은퇴할 경우 보수적인 색채가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연방 대법관은 종신직인 반면 미국 대통령은 재임에 성공해도 최대 임기가 8년이다. 연방 대법관은 본인이 스스로 물러나거나 사망하지 않은 한 어느 누구도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없다. 실질적으로 미국을 움직이는 사람은 대통령이 아니라 연방 대법관이라는 말이 회자되기도 하는 것은 대법관의 힘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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