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겨났던 하버드에서 다시 의대 교수가 된 박 교수의 비결
성공적으로 운영하던 신경외과 병원 접고 제 3세계로 의료봉사
의료기술 전수보다 의료체계를 바꿔 더 많은 이에 혜택 주려 노력
25차례나 북한 방문, 의료기술 전수 및 의료용품 지원 이끌어
??????  2024-12-19, 16:52:09 
박기범 하버드 의대 교수가 11월 20일 브루클라인에 위치한 자택에서 보스톤코리아와 인터뷰를 가졌다. 세계의 빈곤국들을 돌아다니며 의료기술을 전하고 의료체계의 변화를 꾀하는 박교수의 삶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박기범 하버드 의대 교수가 11월 20일 브루클라인에 위치한 자택에서 보스톤코리아와 인터뷰를 가졌다. 세계의 빈곤국들을 돌아다니며 의료기술을 전하고 의료체계의 변화를 꾀하는 박교수의 삶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보스톤 = 보스톤코리아) 장명술 기자 =  박기범(미국명 Kee Park) 하버드 의대 교수는 신경외과 전문의지만 의대에서 가르치는 과목은 글로벌 헬스다. 대부분의 한인이라면 북한을 한번도 가보지 못했겠지만 그는 25차례나 북한을 방문했다. 더구나 그는 하버드 의대 교수이지만 과거 하버드에서 퇴학을 당했었다. 

지난 11월 20일 브루클라인 자택에서 만난 박 교수에게서는 남다른 여유가 느껴졌다. 특유의 여유와 이채로운 이력은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특별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야기를 나누면서 깨달을 수 있었다. 박교수는 사람들이 자신을 다르게 볼 수 있는 눈은 축복이라고 표현했다. 그런데 그에게는 그게 있었다. 

미국이란 경쟁사회에서는 늘 자신보다는 남과 비교하면서 살게 된다. 이 같은 생활의 챗바퀴에서는 늘 더 많이 추구하게 되는데, 박교수는 이미 충분하게 많이 가졌다고 생각한다. 결국은 이 시선의 차이가 그의 모든 것을 갈랐다. 

박 교수의 출발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대전에서 태어난 그는 군의관이던 아버지를 따라 강원도 군부대에서 자랐으며 서울로 이사해 초등학교를 다녔다. 의사부족에 시달렸던 미국은 한국을 비롯한 외국인 의사들에게 관대한 이민정책을 펼쳤고, 아버지는 미국행으로 새로운 기회에 도전했다.  그의 나이 10살이었다. 놀림을 당하는 미국생활에 적응키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그는 한국어 등 한국적인 것을 상실하는 과정을 겪었다. 

장남이었던 그는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워싱턴 DC에 위치한 하워드대 6년제 의대에 입학해 의학도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아버지에 대한 반항이었을까? 그는 갑자기 방향을 선회해 하버드 박사과정에 입학하게 된다. 많은 한국학생들과 어울리게 되면서 학업을 소홀히 했던 그는 결국 하버드대에 퇴학을 당하게 됐다. 하워드에서의 크레딧을 바탕으로 그는 다시 의대로 돌아갔고, 뉴욕의 럿거스 대학에서 의사 학위를 받았다. 많은 학위가 있지만 학사학위가 없는 이유다. 

그는 신경외과 전문의를 택했다. 일단 보수가 좋고 의사들도 신경외과를 존중하며, 사회적 신분도 보장되기 때문이었다. 필라델피아에서 레지던트를 마치고 미조리주에서 신경외과를 개업했다. 레지던트 과정에서 지금의 아내 수잔 박씨와 만나 가정을 꾸렸다. 8년동안 미조리의 개인 병원을 운영하며 그는 사회적으로 안정된 지위와 경제적인 풍요를 누렸다. 그가 의사로서 원했던 것을 거의 모두 가졌지만 여전히 무언가 허전함을 느꼈다. 

당시 그는 크리스찬이 됐으며 성경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될 것이다”라는 누가복음의 구절이었다. 그때부터 그는 아내 수잔에게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곳에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을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한국계미국인위원회(CKA) 보스톤지부의 대표이기도 한 수잔 박은 남편의 제안을 받고 같이 고민하는 한편 봉사활동을 지원하고 격려했다. 

박기범 교수와 수잔박 CKA 보스톤지부 대표 부부

해외의료 봉사의 시작 
무언가에 관심을 갖고 추구하면 길은 열리게 마련이다. 박 교수는 에티오피아, 네팔, 북한과 같은 개발도상국에서 의료 봉사 인원을 파견하는 한 단체를 발견하게 됐다. 이를 위해 그는 운영하던 병원을 그만 두는 결정을 내렸다. 의사가 병원을 접는 일은 엄청난 변화였지만 더 중요한 것을 발견한 그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5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에디오피아에서 의료인력을 양성하는 의료봉사를 시작했다. 이후 에디오피아를 왔다갔다하며 다른 국가에서도 봉사를 했다. 2013년에는 아내와 3명의 딸을 모두 데리고 캄보디아로 떠났다. 

그는 또 한번의 삶의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8년여간의 해외봉사를 거듭한 끝에 세계에는 간단한 신경외과 수술조차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에 인력 양성보다 더 중요한 변화, 즉 의료체계의 변화를 이끌어야 된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여기에는 폴 파머 하버드 글로벌 헬스 전 학장의 자서전이 큰 역할을 하게 됐다. 

그는 하버드 공중보건대학원에서 의료체계를 공부하기 위해2016년 다시 보스톤으로 돌아왔다. 그가 학위를 받고 글로벌 헬스에서 펠로우십을 하고 있을 때 하버드 의대는 그에게 교수직을 제안했다. 그는 자신이 과거 대학에서 퇴출됐던 이야기를 알렸지만 대학은 개의치 않았다. 

그가 부와 명예를 추구했을 때 하버드와 그와는 계속 멀어졌다.  8년간 해외에서 의료봉사를 하고 의료체계 변화를 위해 다시 학위에 전념했을 때, 하버드 대학은 진정한 스승으로서 자격 있는 사람으로 여겼던 것이다. 결코 대학 교수직을 추구한 것은 아니었지만 필요한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봉사하는 그에게 자연스레 문이 열린 것이다. 박교수는 여기서 얻은 가장 큰 교훈은 "다른 사람에게 봉사할 때 길이 열린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만을 위한 삶은 문을 닫게 하고, 더 큰 어려움을 초래한다. 그러나 타인에게 헌신하려는 마음을 가질 때 예상치 못했던 기회와 가능성이 열린다는 것이다. 
 
북한에서의 활동
박교수는 그 누구보다 북한을 더 많이 방문한 사람일 것이다. 25년 동안 25차례 방문할 수 있었던 것은 북한 주민들의 열악한 의료 상황에 그의 의료기술과 경험을 전달하려는 의도를 북한이 알았기 때문이다. 2007년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하여 평양 의과대학의 신경외과 의사들과 함께 일했다. 북한의 의료진은 열악한 조건에서도 뛰어난 수술 실력을 가지고 있었고, 함께 일하며 신뢰를 쌓았다. 

하지만 북핵 문제로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가 강화되면서 북한 주민들에게 제공되는 의료 지원도 제한됐다. 박교수는 유엔의 자료를 바탕으로 제재가 북한 주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 대북제재가 4천여명 이상의 여성과 어린이들을 사망케 만들고 있다는 연구보고서를 발표했다. 월스트리트 저널, 유에스에이투데이 등이 이를 대서특필해 인도적 의료지원의 명맥이 이어지도록 했다. 

팬데믹 이후 아무도 북한 방문 못해
북한의 우크라이나전 참전은 그동안 북한에 우호적이었던 의료지원단체들의 입장을 바꾸도록 만들었다. 박 교수는 “문이 완전히 닫힌 것은 아니지만 열린 것도 아니다”라고 현재 상태를 표현했다. 그에 따르면 유니세프 등 국제 NGO등은 북한에 의료지원 및 인도적 지원의 문제의 실마리를 풀지 못하고 있다. 팬데믹 이후 아무도 북한의 초청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게 현 상황이다. 박 교수는 트럼프의 당선이 교착상태에 빠진 대북 의료지원, 인도적 지원에 실마리 역할을 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에 사는 것은 특권 
미국인들은 언제나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기 때문에 마치 거품 위에 사는 것과 유사하다고 표현했다. 차, 집, 자녀 교육 등 지속적으로 무엇인가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삶을 살게 되며 결코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박 교수는 미국 밖으로 시선을 돌려볼 것을 제안했다. 다른 나라를 고려했을 때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미국에서 산다는 것은 행운이고 하나의 특권이다. 우리는 여전히 대부분의 시간을 우리만을 생각하기에 늘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늘 욕구를 충족시키려 하기 보다 이미 충분히 많이 가졌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하나의 선물” 이라는 것이 박교수의 말이다. 

인생의 책 
트레이스 키더의 산넘어 산(Moutines Beyond Mountines). 이 책은 폴 파머의 자서전이다. 2년 전 작고한 그는 박교수가 재직하고 있는 글로벌 헬스의 학장이었다. 폴은 비록 자신이 의사였지만 자신을 단지 의술을 전하는 사람으로만 생각하지 않았다.  의사를 의술보다 더 큰 문제 즉, 가난한 사람을 위한 변호사이자 애드버킷, 사회 변화의 선도자로 보았다. 문득 ‘특별하다고 믿으면 특별하게 된다’는 말이 떠오른다. 이 책을 읽고 박교수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공중보건 분야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박교수는 “단지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사람에서 의료 체계 전반을 바꾸려는 사람으로 내 커리어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고 회상했다. 

인생에서 되돌리고 싶은 것 한가지 
박 교수에게 인생에서 한가지 바꾸고 싶은 것이 있냐고 물었을 때 그는 멈칫했다. 바로 대답하지 않고 인터뷰가 끝날 때까지 고민한 후 그는 답했다. 그는 “만약 인생에서 한 가지를 바꿀 수 있다면, 저는 더 나은 아들이 되고 싶다. 어린 시절 부모님께 많은 걱정을 끼쳤던 점을 후회한다.”고 털어놨다. 평생 헌신을 위해 살아왔던 그의 개인적인 고백은 다른 무게로 가슴에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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