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국미사 발언 파장, 공안정국 조성 우려
보스톤코리아  2013-12-02, 11:05:17 
시국미사에서 연평도 포격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해 논란의 중심에 선 박창신 전주교구 원로신부
시국미사에서 연평도 포격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해 논란의 중심에 선 박창신 전주교구 원로신부
(보스톤 = 보스톤 코리아) 오현숙 기자 = 국정원의 대선개입 문제를 지적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박창신(72) 원로신부의 시국미사 발언이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국정원 트윗 추가 발견으로 수세에 몰린 여권은 이를 국면전환의 계기로 삼아 안보문제를 전면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특히 청와대가 재야에서 확산되고 있는 대선 불복성 사퇴 요구 뒤에 체제를 흔들려는 세력이 개입돼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만큼 공안정국이 조성될 가능성도 있어 파장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박 신부에 검찰 조사 착수
 정의구현사제단 박창신 신부는 북한의 연평도 포격도발 3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22일 전주교구 시국미사에서 북한의 연평도 포격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에 이어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주장해 검찰 수사를 받게 됐다. 

박 신부는 이날 시국미사 강론에서 “북방한계선(NLL)은 군사분계선이 아니다”며 국가정체성 논란을 일으켰다. 그는 “서해 북방한계선에서 한•미군사운동을 계속하면 북한에서 어떻게 해야 하겠어요? 북한에서 쏴야죠. 그것이 연평도 포격이에요”라고 말했다.

박 신부는 시국미사 이후에도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앞으로도 박 대통령 퇴진 운동을 계속하겠다. (검찰에서) 잡아가면 잡혀가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25일 시민단체 활빈단 홍정식 대표가 박 신부가 국가보안법 등을 위반했다며 고발장을 제출했고 같은 날 자유청년연합 등 서울지역 보수단체도 박 신부를 대검찰청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보수단체 자유민주국민운동(운영위원장 최인식)도 26일 박 신부를 서울지방경찰청에 고발했다.

검찰은 26일 박 신부에 대해 수사에 착수했다.
전주지검 군산지청 관계자는 “고발장이 접수된 만큼 사건을 공안전담검사에게 배당했다” 면서 “다만, 다른 보수단체들도 대검찰청에 여러 건의 고발장을 접수해 대검 등과 수사 주체를 놓고 협의 중이다”라고 말했다.

당•정•청 강경대응 천명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ㆍ여당은 25일 천주교 시국미사에서 나온 발언에 대해 강경 대응을 천명하고 나섰다. 대통령과 총리의 경고성 발언에 이어, 새누리당은 정의구현 사제단을 '종북'으로 규정짓고, 민주당에까지 공세의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사실상 박 신부의 발언을 겨냥해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고 정홍원 총리는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북한을 옹호하고 찬양하는 듯한, 참으로 경악스러운 일"이라고 비난했다. 황우여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종교인에게는 엄연히 조국이 있다"면서 '북한의 지령' 가능성까지 거론했고, 최경환 원내대표는 "그분들이 진정 해야 할 일은 종북이 아니라 북한에 선교하고 정의를 구현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새누리당의 실세로 평가받는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는 정의구현사제단을 '북한 세습정권',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혁명조직이라고 검찰에 기소된) 'RO'와 동일선상에 놓았다. 윤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들은 똑같은 주장을, 똑같은 목표를 갖고, 똑같은 행동을 한다"고 했다.

수세몰린 여권 정국전환 의도
하지만 사제복을 입은 한 자연인의 발언을 두고 당정청이 일제히 강경대응에 나선 것에 대해서는 다분히 상황 돌파용 의도가 깔려 있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 국정감사를 통해 국정원의 불법대선개입 의혹은 군까지 포함한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의혹으로 확대된 상황이다. 여기에 더해 지난 21일 국정원의 트윗글 121만개가 검찰의 수사로 추가 발견됐다. 검찰은 이들이 모두 공직선거법과 국정원법 등 현행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야권과 시민사회는 특별검사제 도입을 주장하며 전방위적으로 공세를 폈다.

종교계에서도 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미사 이전에 기독교계와 불교계에서도 시국선언을 준비했다. 정권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확대되는 시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박 신부의 발언은 결국 대통령 사퇴 요구 뒤에 북한 동조 세력이 있다는 청와대 인식을 굳혀 '안보 카드'를 꺼내게 한 셈이 됐다. 이는 대통령 사퇴 요구를 사전에 차단하면서 민주당이나 무소속 안철수 의원에 대한 압박 효과도 동시에 겨냥하는 측면도 있다. 박 신부가 소속된 정의구현사제단은 민주당과 무소속 안철수 의원 등이 함께 결성한 '국정원의 대선개입 규명 등을 위한 범야권연석회의'에 포함돼 있다.

지난 7월부터 시작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촛불시위에 무대응하던 당정청이 갑작스레 태도를 바꾼 것을 두고 전문가들은 정국전환 의도가 적지 않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노무현ㆍ이명박정부 때도 대통령 퇴진을 요구한 사제단이 박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한 것은 국가기관 대선 개입 사건의 엄중함을 환기시키려는 것 아니겠느냐"면서 "일부 문제 발언에 색깔을 입혀 이것만 과도하게 부각시키는 건 본질을 호도하는 꼼수로 비판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본질 흐리는 종북몰이 비판
정부와 여당이 25일 박 신부의 발언에 집중포화를 쏟아 부은 것을 두고 "본질을 흐리기 위한 과도한 종북몰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시국미사 강론의 요지였던 국가기관의 불법적인 대선 개입에는 함구한 채 곁가지로 언급된 천안함ㆍ연평도ㆍNLL 관련 발언만을 지나치게 부각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야당은 일부 박신부의 발언이 도를 지나쳤다는 입장으로 일정하게 선을 그었지만 여권의 '종북•공안몰이'에 맞서서는 한목소리로 반격을 펼쳤다.

김 대표는 "종북몰이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라 국가기관 대선개입의 상처를 덧나게 한다"면서 "건강한 대한민국을 위해 종북몰이를 즉각 중단하고,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특검과 특위를 즉각 수용하라"고 촉구했다.

전병헌 원내대표는 '종북(從北)'보다 '종박(從朴•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맹목적 추종)'이 문제라고 거듭 주장했다.

전 원내대표는 "지금 당•정•청이 하나가 돼 대통령을 여왕 모시듯 하며 반대의견 묵살과 매도에 급급하다"면서 "틈만 나면 악의적 종북몰이로 갈등과 증오를 부추기면서 종북을 전가의 보도로 휘두르고 있다"고 비난했다.

통합진보당 홍성규 대변인도 구두논평에서 "(박 신부를 고발한) 보수단체들을 무고죄로 수사해야 한다"며 "검찰이 수사가치 여부를 판단해보지 않고 수사를 하겠다는 것은 박 대통령의 '용납하지 않겠다'는 발언에 따른 조치"라고 비판했다.

정의당 이정미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대선개입 수사에 지지부진하던 검찰이 원로신부의 발언에는 신속하게 수사 착수해 정치검찰의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면서 "공포와 위협의 정치는 제발 그만두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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