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화 프로듀서가 말하는 영화 <밀정>의 숨은 이야기 |
보스톤코리아 2016-10-31, 12:33:19 |
(보스톤 = 보스톤코리아) 장명술 기자 = 한국에서 75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 <밀정>은 실화적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다. 삶은 흑과 백 이런 이분법적 사고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이 영화는 일제 강점기를 통해 보여준다. 살아가면서 현실은 의지에 반하는 선택을 강요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그 결과를 모른채 어느 한쪽을 택한다. 순간의 선택에 의해 때로는 영웅이 되고 또는 반역자가 되기도 한다. 역사는 무심하게 그 사이를 가르고 사실을 기록한다. 그런 면에서 밀정은 우리의 현실과 밀착되는 부분이 있다. 일제시대는 상당부분의 삶이 강요로 얼룩져 있음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결코 우리 자신을 그 시대의 강요된 삶에 치환해 넣지 않아도 현실에서 충분히 이를 경험한다. 의지와 현실이해 사이의 갈등. 영화 밀정은 그 갈등을 비집고 들어가 당시 인물들의 선택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미국을 방문중인 영화 <밀정>의 최정화 피디가 10월 24일 보스톤코리아 사무실을 방문해 영화에 대한 숨은 이야기를 나눴다. 밀정을 본 독자들과 보지 않은 독자들도 있다. 밀정에 대해 설명해달라. 밀정은 1920년대 일제 강점기가 배경이다. 많은 독립운동단체 중의 하나인 의열단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의열단은 무장투쟁을 선택했던 독립군으로 여러 독립운동 노선 중 강력한 힘을 보여줘야 한다는 단체였다. 단순하게 독립지사, 친일파 이분법적으로 이야기를 접근 한 것이 아니다. 황옥경부폭파사건이 모델이다. 사건의 주인공 황옥이란 인물에 대해 친일파다 독립지사다, 역사학자의 평가가 갈린다. 그 시대 삶을 살았던 사람들도 갈등이나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도 이렇게 하면 친일파 또는 저렇게 하면 독립운동이 되어버리는 일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시절을 살았던 선조의 고민과 갈등을 담았다. 오랫동안 외국 생활을 하신분들에겐 잊고 있었던 과거 독립 선열, 그분들의 희생을 기억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는 영화라 생각한다. 밀정을 보다보면 암살, 덕혜옹주 등 일제 치하의 시대물이 연상된다. 밀정은 어떻게 시작된 것인가? 최초 기획 단계 팀이 따로 있다. 황옥경부사건이 특이하다. 이 사건은 드라마틱 소재를 많이 가지고 있다. 안타깝게도 실패한 사건이다. 그래서 안타깝다. 이 드라마틱한 사건이 이야기의 단초였다. 역사 팩트만 살을 붙이는 . 영화 초반은 김상옥 열사 사건이다. 김상옥 열사 사건도 임택트가 강했던 사건이다. 김 의사 역시 의열단이었다. 그런 것들을 믹스를 하면서 영화적인 구성을 만들어 나간 것이다. 프로듀서가 보는 영화 밀정은 어떤 것인가? 그리고 프로듀서의 역할은 무엇인가? 프로듀서의 역할을 설명 드리면 많은 사람들이 혼동한다. 드라마 연출자. 영화에서 프로듀서는 제작자이다. 회사를 직접 제작하는 제작자가 있고 프리랜서로 영화 전체를 매니지 하는 프로듀서가 았다. 이 영화에서는 후자의 역할을 했다. 영화의 기획단계에 합류해서 관련된 모든 일에 대해 감독과 제작자와 함게 고민하고 결정하고 실행에 옮긴다. 쉽게 얘기 해서 캐스팅 역시도 함께 상의 하고 장소 헌팅, 로케이션 지역에 대한 섭외, 전체적인 스케줄링, 첫번째 결정을 내리는 사람, 온갖 잡일을 다하는 사람이다. 밀정의 경우 모티브가 역사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가장 아팠던 시기이다. 촬영 시작 전에 몇번이고 상해 임시정부를 갔었다. 거기에는 그분들의 노력이나 흔적이 남아 있다. 고민하고 조심해야 했던 것이 자칫 영화의 포인트 하나가 빗나가도 이분들을 욕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자칫 팩트만 가져가면 영화다운 맛이 없어진다. 이 두가지를 잘 살려야 겠다는 생각이 많았다. 저뿐만 아니라 감독, 배우들도 모두가 무거운 짐을 느꼈다. 사실 무시해도 누가 뭐라할 것은 아니었지만 그곳에 가서 보니까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부분들이 우리가 만들어 완성품을 내놓으면 관객들의 몫으로 넘어간다. 우리가 아무리 이렇게 만들었다 해도 관객들이 봐줄 때 그렇게 안봐주면 잘못 만든 것이다. 다행히 한국에서 흥행하면서 댓글들이 좋은 댓글들이 많이 올라왔다. 애써서 지키려고 했던 부분들에 대한 댓글들이 올라와서 고마웠다. 흥행 여부를 떠나서 나머지 반쪽을 채워준 것으로 본다. 촬영은 어디서 한 것인가. 밀정 촬영지 중에서 프로듀서로서 이곳은 꼭 가봐라 하고 추전할만한 여행지가 았는가. 한국에서 60% 나머지는 중국에서 40%를 찍었다. 중국의 상해에는 20년대를 재현해 놓은 세트장이 있다. 많은 중국영화도 그곳에서 찍는데 그곳 3군데 세트장에서 나눠서 40%를 촬영했다. 상해에 가면 상해 시절을 재현놓은 큰 세트장이 있다. 일반적인 관광지다. 그곳을 보면 그 시절의 상해가 이랬구나 느낄 수 있다. 나머지 두군데는 일반에게 공개가 안되는 곳이다. 이 세군데를 합쳐서 밀정투어가 생겨나기도 했다. 그러나 영화와 실제는 다르다. 영화는 세팅을 해놓고 찍는다. 영화의 그 장면을 그대로 보겠다고 하면 실망한다. 다만 그 시절이 이랬구나, 이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구나 하는 느낌으로 돌아보면 좋을 것 같다. 밀정이 1천만을 돌파했는가. 혹 그렇지 못했다면 다른 강력한 영화 때문인가? 7백 50만에서 멈췄다. 시기라는 것이 있다. 3주를 1위를 달렸었다. 뒤이어 많은 영화들이 나오면서 동력이 약간 떨어졌다. 천만을 흔하게 말씀 하시는데 대한국민 20%가 영화를 본다는 얘기다. 700만을 넘어도 엄청난 흥행을 거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부분을 꼭 주의해서 봐라’하고 권장해주실 장면이 있는가? 전체 다가 아닐까요(웃음) 아마 눈치를 채신 분들이 있을 것이다. 송강호 씨(주인공 이정출역)가 교도소에서 출소해서 담배 피고 걸어가다 수레에 실려가는 시체를 보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있다. 독립운동을 다룬 영화가 정말 많다. 송강호 씨가 연기에 대한 해석을 하면서 했던 얘기인데 그장면에서 “너무 작소”라는 대사가 너무 크게 다가온다고 말했었다. 여주인공 캐스팅 시 1순위가 키작은 여자였다. 여기에는 그 시절의 조선, 우리가 살았던 그 나라가 그만큼 힘이 없었다는 것을 상징한다. 엘리트들이 나라를 팔아먹고 했던… 그만큼 작았던 나라. 힘이 약했던 나라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연계순의 역할도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 헝가리 폭탄 기술자도 존재하는 인물. 이 사람의 시체를 봤을 때 너무나 슬프고 아픈 현실이 보인다. 작고 작은 시체를 보고 오열하는 송강호의 모습… 그 팁을 가지고 보면 한국에 말도 안되는 사건이 오버랩하면서 반성하고 느끼는 것이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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