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희 선생' 문학관에 다녀와서...
신영의 세상 스케치 669회
보스톤코리아  2018-11-05, 10:36:26 
여행이란 어떤 목적지를 정해둔 출발보다 목적지 없이 훌쩍 떠나는데 더욱 가슴 설레고 떨리는 마음에 흥미롭다는 생각을 한다. 사실 이번 한국 방문은 친정 조카 결혼식이 있어 일정을 정해 떠나온 여행이었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처럼 목적이 아닌 훌쩍 홀로 떠나는 여행에 시간을 하례한다. 그렇다, 정해진 목적의 날은 어차피 정해진 날이니 내게 맞는 옷을 차려입고 그 장소에 가서 친지들을 만나고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그 외의 정해진 여행의 시간을 어떻게 얼마만큼 만나고 느끼고 누릴 수 있는가가 나의 여행의 진정한 목적일 게다.

그렇게 마음을 정하니 이제부터는 정해진 여행 시간 동안 시간관리를 철저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여행은 한국에 계신 친지들이나 친구 그리고 지인들을 찾아뵙는 여행이 아닌 오롯이 홀로 돌며 생각하는 그런 여행으로 생각을 굳혔다. 하루 24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 내게 참으로 소중한 시간이다. 내가 한국에 산다면 아무 때나 찾으면 될 곳도 정해진 여행 시간이니 아쉬움이 남지 않을만큼 몇 찾을 곳을 우선순위로 정해 놓았다. 그렇게 정해 놓은 곳이 지난번 찾았던 인천의 '소래습지공원'과 '소래포구' 그리고 전주의 '한옥마을'과 '최명희 문학관'이었다. 나는 무작정 전주의 그곳을 찾았다.

그리고 전주 한옥 마을을 들어서며 전동 성당을 둘러본 후 우선 경기전(조선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를 모신 곳)을 둘러보았다. 태종은 1410년 전주•경주•평양에 태조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를 모시고 어용전이라 하였다. 그 후 태종 12년(1412)에 태조 진전이라 부르다가 세종 24년(1442)에 와서 전주는 경기전, 경주는 집경전, 평양은 영흥전으로 달리 이름을 지었다. 경기전은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광해군 6년(1614)에 다시 고쳐 지었다. 이렇게 경기전을 들러본 후 부채문화관을 들러 관람하고 전주 고장이 낳은 『혼불』의 작가 '최명희 문학관'에 들러 긴 시간을 둘러보게 되었다.

어느 분의 표현처럼『혼불』은 책의 제목인 동시에 한 예술가의 목숨의 불, 그렇다! 일제 강점기, 종부(宗婦) 3대의 이야기를 주축으로 다양한 사랑과 욕망의 드라마를 담고 있는 최명희의 장편소설 『혼불』은 정말 우리가 살았고 살아가는 20세기와 21세기의 불확실한 시대에 불씨로 꺼질 수 없는 혼불로 남은 것이다.
"그믐은 지하에 뜬 만월(滿月) 어둠은 결코 빛보다 어둡지 않다."
"내가 정말 쓰고 싶었던 것을 딱 한 가지만 말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어둠은 결코 빛보다 어둡지 않다는 것입니다." -<1997년, 11회 단재상 수상소감 중에서>

"언어는 정신의 지문(指紋) 나의 넋이 찍히는 그 무늬를 어찌 함부로 할 수 있겠는가."
"말에는 정령이 붙어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말이 씨가 된다고도 하지요. 생각해보면 저는 소설이라는 이야기 속에서 말의 씨를 뿌리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씨를 뿌려야 할까. 그것은 항상 매혹과 고통으로 저를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언어는 정신의 지문이고 모국어는 모국의 혼이기 때문에 저는 제가 오랜 세월 써오고 있는 소설『혼불』에다가 시대의 물살에 떠내려가는 쭉정이가 아니라 진정한 불빛 같은 알맹이를 담고 있는 말의 씨를 삼고 싶었습니다." -<1998년, 8회 호암상 수상소감 중에서>

최명희 선생의 문학관 안에는 선생이 한평생을 혼신을 다해 밤낮으로 흘렸을 피땀 서린 흔적들이 빼꼭히 사방 벽면과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그 고혹한 전율이 내 깊은 가슴에 와 닿으니 온몸에 소름이 돋고 말았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선생의 혼불이 내 가슴에 불을 지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켭켭이 쌓인 원고지와 깨알처럼 빼곡히 적힌 선생의 글들이 감동보다는 가슴 답답하리만큼 저린 고통으로 내게 다가왔다. 아, 나 여기 있음이 그렇게 감사한 날인 것을 처음 느껴보는 순간이었다. 그 찰나 안에 선생과 한몸이 된 그 느낌을 무어라 표현할 수 있을까. 감동보다 깊은 슬픔과 고통인 것을.

선생이 그토록 말하고 싶어했던 것은 바로 다름 아닌 '어둠은 결코 빛보다 어둡지 않다.'라는 것이다. 굴곡진 역사의 흐름과 시대의 아픔을 밀어내지 않고 고스란히 가슴에 끓어 안고 삭이며 홀로 글쓰기에 일평생을 바친 것이다. 그렇게 아픔과 시련과 고통의 긴 고행의 시간을 지나 해산의 고통을 이겨낸 후에야『혼불』이 태어난 것이다. 그랬으리라, 선생이 그토록 말하고 싶었던 그 『혼불』은 바로 우리 모두의 아픔이고 시련이고 고통이었다. 그것은 지난 우리의 과거와 앞으로 올 미래 사이에서 견뎌내야 하는 우리 모두의 과제이고 몫인 지금이다. 선생이 그토록 하고 싶었던 말처럼 어둠은 결코 빛보다 어둡지 않다.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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