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 308회
보스톤코리아  2011-08-01, 13:44:05 
아흔이 넘은 홀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미국에서의 효부가 있다.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그녀의 시아버님은 남편이 초등학교 때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 아들이 만 50이 넘었으니 어머니는 구십을 훌쩍 넘기신 백발의 할머니가 되었다. 그 어려운 시절 남편을 잃고 시어머님은 홀로 긴 세월을 열 남매(딸 일곱에 아들 셋)를 키우며 내 고향 땅도 아닌 타향땅(미국)에서 반평생을 사신 것이다. 백발 노모의 자식을 향한 사랑과 헌신 그리고 노모를 향한 자식들의 간절한 마음이 있다. 20여 년이 넘도록 우리 부부와 형제처럼 가까이 지내는 동네 친구(언니) 부부의 가족 얘기다.

여자들의 수다는 재미있다가도 때로는 눈물을 찔끔 흘리게 하는 가슴 아픈 얘기도 많다. 그 많은 속 얘기를 가끔은 거르기도 하고 때로는 툭툭 털어놓기도 하면서 서로 삶의 노래를 부른다. 오래된 친구이니만큼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속마음을 꿰뚫어보는 일이야 어제오늘의 얘기는 아닐 게다. 그 집의 가족 수를 세다 보면 첫째 시누이, 둘째 시누이 그리고 셋째, 넷째…. 마저 세기도 전에 누가 누구인지 이내 잊어버린다. 특별히 시누이 시집살이가 아니더라도 일곱 시누이와 구십을 훌쩍 넘긴 치매의 홀시어니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속이 답답해져 온다.

무남독녀로 자란 며느리(올케)와 일곱 시누이가 있는 미국에서의 대가족을 생각해 보면 상상만으로도 느낌이 온다. 특별히 시집 가족들에 대해 말하지 않아도 곁에서 가깝게 지내는 친구들은 그녀에게 묻지 않는다. 이미 다 아는 사실을 굳이 꺼내어 그녀의 답답한 속을 휘저을 일이 뭐 있을까. 몇 년 전에는 이혼 후 혼자 지내던 그녀의 시 아주버님이 간암으로 치료를 받으며 돌아가시기 전까지 제수씨의 수발을 받다가 돌아가셨다. 또한, 삼 사 년 전에는 막내둥이 시동생이 병으로 고생하다 형수의 수발을 받으며 구십이 넘은 백발의 어머니와 가족의 곁을 떠나고 말았다.

그 가족의 숫자만큼이나 모이면 형제와 자매 그리고 사촌들의 수는 대가족의 위력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 집의 일곱 시누이의 순서를 외는 데 몇 년이 걸렸다. 모임이 있을 때마다 매번 만나도 일곱 시누이의 거의 비슷한 모습의 얼굴과 체형은 누가 누군지 알아보기 어려운 일이다. 어쩌다 차례를 알고 인사를 하면 어찌나 좋아하시던지 말이다. 하지만 이 일곱 시누이에게는 조심스러운 마음이 든다. 그 이유는 내게도 시댁 가족들이 주변에 많이 살고 있는 까닭이다. 어쩌다 그 가족의 모임이 있어 만나게 되면 일곱 시누이에게 눈인사만 살짝 건네고 만다.

한 이태 전부터 구십이 넘은 백발의 시어머님께서 가끔 치매 증상을 보이시더니 요즘은 그 증상이 더욱 심해지셨다. 시어머님의 치매 증상으로 시누이들이 노모를 가끔 모셔가서 서로에게 쉼을 주기도 한다. 그녀는 시어머니 말고도 함께 사는 딸 내외의 세 살 배기 외손자를 돌봐주고 있고 일주일에 며칠은 남편의 비지니스 일도 도와주고 있기에 여간 바쁘지 않다. 몸은 바쁘고 마음은 조급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에서 시어머님의 치매 증상이 심해지시니 더욱 안절부절이다. 30년이 다 되도록 함께 모시고 살았던 시어머님의 모습이 그저 안쓰러운 것이다.

시어른을 모시고 산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알 일이다. 남들은 특별한 일처럼 느껴지는 일이 일상이 되어버린 일에 가끔은 심신이 지쳐버리는 것이다. 어쩌다 한 번씩 찾아오는 가족들을 대할 때면 고마운 마음과 함께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물론, 어느 가정이나 시누이는 또 시누이지 않겠는가. 가끔 친정에 찾아와 백발 노모의 아픈 것을 보면 마음도 아프고 가슴도 아리고 말할 수 없는 서글픔에 모두가 섭섭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친정어머니 모시고 사는 올케가 고맙기도 하다가 섭섭한 마음도 들기에 시누이들과 올케 사이에 잠깐의 신경전이 오가기도 한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라는 옛 속담이 있지 않던가. 이런 상황에 이르게 되면 일곱 누나와 아내 사이에서 눈치를 살펴야 하는 사람은 하나밖에 없는 기죽은 '남동생'과 '남편'만이 남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 아들은 백발의 노인이 된 어머니도 서글픈데 생각의 끈을 놓으시고 엉뚱한 말씀만 내놓으시는 노모를 보면 가슴이 아프고 아린 것이다. 30여 년을 홀시어머니를 모시고 산 아내에게 고맙고 미안하고 일곱 누나에게도 떳떳하지 못한 듯 마음은 무겁게만 느껴지는 것이다. 그 30여 년의 세월에 서로에게 물든 알록달록 얼룩무늬만큼이나 진한 가족애가 스며 있다.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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