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후/기 : Mt. Monadnock
보스톤코리아  2010-07-19, 14:06:52 
날씨는 쾌청. 지난 번 방문했을 때는 정상 부근에 눈이 남아 있었고 바람은 사진기를 날려버리려고 아우성을 쳤었지만, 이번에는 날씨가 선선하고 좋았다. 참가한 54명 모두 그 어떤 부상도 없이 봄날의 Monadnock을 맘껏 즐길 수 있었다.

보스톤 산악회에서의 내 닉네임은 백토끼. 보산회는 20대부터 70대까지 대략 4세대를 아우르기 때문에 성함을 부르지 않고 친근하게 '기름챙이님, 개복치님' 등등 닉네임으로 부른다(여기서 '~님'은 필수이다). 백토끼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따온 이름으로 '인도자'이자 아주 성급한 성격을 가지고 언제나 종종 뛰어다니는 캐릭터이다. 평상시에 약간의 경쟁심과 정상에 대한 설레임에 불타며 선두조에 서서 무식한 젊음으로 정상을 성급히 밟는 나와는 은근히 어울리는 닉네임이다.

이번 산행은 회장님이 날 20대 조장으로 승급시켜 주시는 바람에, 그리고 내가 많은 친구들을 꼬셔서(!) 데려온 관계로 천천히 걸었다. 조용히, 차분히, 천천히 걸었다. 급히 올라 정상에서 졸고 있는 모습이 (마치 토끼와 거북이 우화에서처럼) 자주 목격되는 백토끼인데 이번 산행에서는 온갖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지난 산행 때 보지 못한 것들이 하나하나 보이고 느껴졌다. 느리게 여유를 즐기며 걷는 것도 정말 좋았다. 올라가며 그리고 내려오며, 전엔 그저 살짝 고개만 숙여 인사하고 지나갔던 산우들과도 이런저런 얘길 나눌 수 있어 좋았다.

Monadnock은 산 이름이자 영단어이기도 하다. 평원에 홀로 서 있는 언덕을 monadnock이라고 부른다. 이 이유를 정상에서 느낄 수 있었다. 주변엔 아무런 다른 봉우리가 없는 평평하기 그지없는 평지. 곳곳에 올망졸망 모여있는 호수들과 셀 수 없이 많은 청록의 나무들이 모두 보이는 시야를 느낄 수 있었다. Monadnock이 일본의 후지산 다음으로 등산객이 많은 이유가 바로 이것이리라 생각했다. 저번엔 그렇게 모질게 바람으로 맞아주었던 Monadnock, 이번엔 정말 반갑게 맞아주었다. 탁 트인 푸른 하늘에 유쾌하게 유유히 비행하던 매 두 마리도 반갑게 맞아주었다.

산들, 아니 자연은 정말 경이롭다. 사계절 다른 모습을 가지며, 나날이 다른 기분을 보여준다. 정상에 서면 언제나, 처음엔 '나는 대단하다'고 느낀다. 그 리고 그 환희가 가라앉을 때쯤 주변을 둘러보면 '나는 극히 미미한 존재일 뿐이다'라고 느낀다. 자신에 대한 성취감과 자연에 대한 경외심, 나는 이것을 느끼기 위해 산행을 한다.
보스톤에 온지 어언 2년 남짓, 보산회와 만나게 된 것을 커다란 행운이자 은총이라 생각한다.

보스톤 산악회원 김태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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