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에 깃든 우리 역사 - 마지막 이야기 : 건청궁(乾淸宮)
보스톤코리아  2010-06-28, 11:11:25 
대가집 모양의 건청궁
대가집 모양의 건청궁
흥선 대원군의 주도로 경복궁 중건 사업이 끝난 이듬해인 1873년, 고종은 섭정인 대원군을 밀어내고 자신이 직접 통치하게 되자, 경복궁 북쪽 끝에 자신만의 궁궐인 건청궁을 건립하였다.
건청궁의 건축양식은 일반궁궐의 침전과는 달리 양반집 살림집을 응용하여 임금이 거처하는 사랑채(장안당), 왕비가 거처하는 안채(곤녕합), 부속건물(복수당)과 행각 등으로 구성 되었는데, 그 규모는 양반가옥 상한선인 99칸의 2.5배가 되는 250칸이 되는 건물이다.
건천궁에 딸린 고종황제의 서제 집옥제
건천궁에 딸린 고종황제의 서제 집옥제
 
사대부 양반가의 양식을 그대로 살려 단청(丹靑)을 하지 안 해서 화려한 궁궐 건물과는 달리 담백하고 깨끗한 모습의 건물이다.
창덕궁의 연경당(演慶堂)과 낙선제(樂善薺) 역시 건청궁처럼 양반집 양식으로 안채와 사랑채로 구분하여 건축된 건물이다.
건청궁이 건립된 지 3년이 지난 1876년, 경복궁에 큰불이 나자 고종은 창덕궁으로 생활 공간을 옮겼으며 10년이 지난 1885년에 다시 건청궁으로 돌아와 1896년 아관 파천 때 러시아 공관으로 피신할 때까지 10년간 줄 곧 이곳에서 지냈다.

건청궁은 조선역사에서 두 가지 사건으로 유명한 곳이다.
1887년 미국 에디슨 전기회사에서 발전기를 설치하여 우리나라 최초로 전등이 가설된 곳이고, 1895년 을미사변(乙未事變)때 명성황후가 옥호루에서 일본인 자객에게 시해 당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일제 시대에 들어와서는 경복궁의 건물들이 차례로 파괴되면서 건청궁도 1909년 철거되어 이 자리에 조선 총독부 미술관이 지어졌으며, 해방 후에는 한동안 국립 현대 미술관으로 사용되다가 1998년 철거 하였다.
건천궁에 있는 고종황제의 침소 장안당
건천궁에 있는 고종황제의 침소 장안당
 
문화재청은 건청궁을 원 모습 대로 복원하여 2007년 10월부터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다.
밖에서 보면 일반 사대부 집처럼 스스럼 없는 친근감을 주는 건물인데 마당에 들어서면 난데 없는 감나무 두 그루가 서있다. 경상도 산청군에서 기증한 고종시 감나무다.
고종황제 내외분은 평소에 경상도 산청에서 나는 곶감을 몹시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고종시(高宗枾)라는 특별한 이름까지 하사했다고 한다.

고종황제 내외분은 새로운 문물에 아주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 연유로 에디슨이 백열등을 발명한지 고작 8년 만에 동양에서는 최초로 건청궁에 전등을 설치 하였다.
당시 토마스 에디슨의 일기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동양의 신비한 왕궁에 내가 발명한 전등이 켜지다니 꿈만 같다”

형원정 연못에서 물을 얻어 석탄을 연료로 발전기를 돌렸는데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너무 커서 건청궁에서 주무시는 고종황제가 밤잠을 설치는 것이 다반사였다고 한다. 전등불에 부친 이름이 재미있다.
처음 보는 전등불이 향원지 물에서 나온다고 “물불(水火)” 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참으로 신기한 불이라고 “묘불(妙火)”로도 불렀는데 당시만 해도 발전기 성능이 시원치 못해 자주 불이 꺼진다고 해서 건달불(乾達火)이라는 수치스런 이름을 얻기도 했었다.

발전기에서 나오는 뜨거운 물 때문에 향원지의 물고기가 떼를 지어 죽은 채 물위로 떠오르자 증어망국(蒸魚亡国) 이라는 유언비어로 민심이 흉흉해지기까지 했는데 이것은 옛 문헌에 물고기가 죽어 떠오르는 것은 망국의 징조라는 기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상한 것은 경복궁뿐만 아니라 창덕궁이나 덕수궁 같은 다른 궁궐에서 전등을 설치할 때마다 불길한 사건이 생기곤 하였다는 것이다.
명성황후의 침전 곤녕합과 황후가 살해당한 옥호루
명성황후의 침전 곤녕합과 황후가 살해당한 옥호루
 
1900년에 덕수궁에서 시등(始燈) 축하파티를 할 때도 정전이 되어 파티를 망치고, 1908년 창덕궁에서 시등 하던 날도 인정전(仁政殿)의 샹들리에가 느닷없이 빙글대며 돌아가는 바람에 파티가 망쳐진 일이 있었다.
왕실과 전기는 악연의 연속이었다. 또 이런 사단이 서양문물을 거부하는 사대 보수파들에게는 개화파를 공격하는 좋은 구실이 되기도 하였다.

1900년 4月에 시등 된 민간의 전등도 거부반응이 심해서 외세를 몰고 오는 앞잡이요 가뭄을 몰아오는 원흉이라고 전주나 전선을 절단하는 저항운동을 애국 행위로 칭송하기까지 하였다.
당시에는 제사 지낼 때 옆집에서 전등을 켜면 조상의 신령이 뒤집어 돌아간다고 제사 지내는 집 주위는 소등(消燈)하는 것이 관례였다고 한다.
이처럼 건청궁은 새로운 문물을 도입하여 조선 근대화를 시작했던 곳이지만 또 그 의지가 외세에 의하여 꺾인 바로 그 장소이기도 하다.

1895년 한반도에서 독점적 지배를 시도하는 일본에 대항해서 명성황후는 러시아, 미국을 끌어들여 일제의 조선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저지하려고 하였다.
그러니 일본인들에게 명성황후는 눈에 가시와 같은 존재였다.
결국 일제는 1895년 8月 20日 새벽에 ‘미우라 고로오’ 일본 공사의 계획하에 30여명의 낭인들과 우범선(禹範善) 별기군 2대 대장이 이끄는 병력으로 건청궁에 침입하여 왕비의 침전인 곤녕합 옥호루에서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시신을 근처 녹산(鹿山)으로 옮긴 후 장작에 석유를 뿌려 태웠고 그 뼈를 연못에 버렸다고 한다.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을미사변(乙未事變)의 진상이다.
지금 그 자리에는 명성황후 순국 숭모비가 외롭게 서서 야만인들에게 무참하게 시해 당한 우리 국모의 넋을 위로 하고 있다.

이 치욕스런 사건에 가담한 몹쓸 조선인이 있다.
바로 육종학자 우장춘 박사의 아버지 우범선 이다.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오에게 포섭되어 끔찍한 일을 저지른 것이다.
우범선은 을미사변 이후 일본으로 망명하여 사카이라는 일본여자와 결혼해서 살다가 조선에서 파견한 자객 고영근(高永根)에게 히로시마 근처에서 살해 되었다. 당연한 귀결이다.
우범선의 큰 아들이 우리가 잘하는 우장춘 박사다.

한국이 해방될 때 우장춘은 일본 유수의 다카이 종묘사의 농장 장으로 있었다. 그는 안정된 직장을 사임하고 귀국하여 한국 농사 과학 연구소에서 한국 농산물의 종자 개량을 위해 그의 일생을 바치게 된다.
자신의 아버지가 저지른 죄과를 갚기 위에서 조국을 위해 봉사한 것 이라고 한다
일본 재래 배추와 양배추를 교배해서 옆으로 벌어지지 않는 한국형 배추를 개발했고,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라는 강원도 감자, 한국 토양에 맞는 볍씨를 개량하였다.
그 외에도 무, 고추, 오이, 양파, 토마토, 수박, 제주감귤 등 지금 우리가 먹는 한국 채소 작물치고 그의 손길이 닿지 않는 작물이 없을 정도다.

위장이 터져 복막염으로 죽어갈 때도 링거 병 옆에 새로 개발하는 볍씨를 걸어놓고 그 생각만 하다가 이생을 마감하였다. 그 못된 아비에게서 어떻게 이런 훌륭한 아들이 태어나는지 아연할 따름이다. 그래서 그런지 우장춘 박사의 자손들이 모두 잘되고 있다.

그의 넷째 사위 이나모리 가즈오는 교세라 세라믹 회사의 명예 회장으로 8명의 직원으로 창업해서 지금은 년 10조 엔의 매출을 올리는 세계최고의 회사로 키운 전설적인 기업인 이다.
마쓰시다 전기의 마쓰시다 고노스케, 혼다 자동차의 혼다 쇼이 치로 씨와 함께 일본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기업인이다.

현재 경영난에 빠진 일본항공(JAL)에서 이나모리 씨를 CEO로 영입하였다고 한다.
이나모리씨의 부인은 교세라 축구팀의 구단주로 홍명보, 박지성을 영입하여 당시에는 무명의 선수였던 박지성 선수를 세계적인 선수로 키워준 고마운 사람이다.

옛말에 악행을 하면 후대에 까지 벌을 받게 되고 후덕한 일을 하면 그 공덕이 후세에 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우장춘 박사가 조국에 봉사하고 속죄한 후덕이 자손들에게 까지 이어지는 것일 게다.

그 동안 애독해주신 독자들께 감사 드립니다.
난필을 교정 편집해주신 김현천 기자님, 박현아 인턴기자님께 감사하고 조언을 아끼지 않으신 박경민 선생님께 감사 드립니다.

김은한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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