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義) |
보스톤코리아 2010-06-21, 12:11:37 |
천안함 문제의 의•불의(義•不義)를 따지는 유엔(UN)에서 신성호 북한 유엔주재대사 말. “안보리 결의안이나 안보리 의장 성명이 (북한을 제재한다면) 우리 군(軍)에 의한 후속 조치가 뒤따를 것.” – 6월 16일 기자회견에서.
“이는 죄(罪)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義)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 로마서 5:21 천안함 침몰로 아들, 고(故) 민평기 상사를 잃은 어머니 윤청자(67세)씨가 6월 17일 참여연대를 방문했다. 이태호 협동사무처장 앞에서 무릎을 꿇고 “죄 많은 어미 한 좀 풀리게, 생각해서 행동해 달라. 근거 없는 의혹 제기를 중단해 달라”며 호소했다. 충남 부여에서 농사짓는 윤 어머니는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를 예고 없이 들이닥쳤다. “이북에서 안 죽였다고 하는데 그럼 누가 죽였는지 말 좀 해보소. 모르면 말을 말아야지 뭣 때문에 합동조사단 발표가 근거 없다고 말하나? 이북 사람들이 잘못했다 해도 한(恨)이 풀릴지 모르겠는데 왜 이북 편을 드나” 이태호 협동사무처장 “---”. 윤청자씨 “모르면 모르는데로 넘어가야지 왜 외국에 서신을 보냈나? 우리나라가 해결할 일을 왜 외국까지 알려?” 이태호 처장 “---“. 윤청자씨 “가슴이 터져서 시골서 올라왔다. 어미 심정을 알아야지. 한(恨)이 쌓인다. 심장이 뒤틀어지고 썩어 간다. 하루 사는 게 지옥인데 내 가슴에 못 좀 박지마라”며 울먹이고 가슴을 쳤다. 이태호 처장 “사건이 났을 때 (나도) 백이면 백, 북한이 한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정부가 하는 짓을 보면 모르겠다. 이북 편을 들려는 게 아니다. 정부가 감추는 게 많아서 그렇다.” 윤청자씨 “그런데 왜 여기서 훼방을 놓고 방해하느냐. 국회와 감사원에 가서 따져야지, 왜 외국까지 가나? 안 되면 그냥 있어야지.” 이태호 처장 “---”. 윤청자씨 “내 한(恨) 좀 풀어달라”며 자식뻘인 이처장 앞에 무릎을 꿇고 이처장 손을 잡았다. “죄 많은 어미 한 좀 풀리게 깊이 생각해서 행동해줘. 제발 좀 그만해. 부탁한다”했다. 어머니와 함께 참여연대를 방문한 고인(故人)의 형 민광기씨는 “어머니의 한 말씀으로 ‘참여연대’나 정부 조사 결과를 못 믿겠다는 사람들이 바뀐다면 백 마디, 천 마디를 못 하겠나. 하지만 바뀌지 않는다. 우리 입만 아프지.” 민씨는 또 지난 천안함 46용사 영결식에서 윤청자씨가 강기갑 의원에게 “북에 퍼주지 말라”고 호소했었지만 “정치인들이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면서 “나는 전 정부의 햇볕 정책이나 6.15 선언을 북한이 역이용했다는 것을 정치인들이 명확히 알아야 한다”했다. 윤청자씨는 지난 6월 14일 청와대 초청 오찬에서 “국방부에서 조그마한 무기 만드는 일에라도 써 달라”며 방위성금 1억원을 편지와 함께 전달했었단다. 아들의 목숨도 바치고 국방 성금도 1억씩 성큼 내놓은 어머니가 있는데 민주당은 윤청자 어머니의 가슴에 더 불지른다. 참여연대는 유엔 안보리 이사국들에게 천안함 합동조사 결과에 “많은 의혹”이 있다며 E-mail(이메일)을 보내 여론의 비판을 받는데 민주당은 “방패 역할”을 넘어 “잘했다”는 격려를 말해준다. 국회 대정부질의(6월 17일)에서 서갑원 의원(민주당)은 “시민 단체(참여연대를 암시)가 (유엔에) 항의 서한을 못 보낸다는 규정이라도 있느냐?”는 질문에 정운찬 총리 답변, “국제 사회의 단호한 의지를 북한에 전달해 재발 방지를 막으려고 정부가 노력 중인데 근거 없는 의혹을 메일로 보낸 것은 명백히 국익에 반(反)하는 일”이라 반박했다. 민주당의 한 고위 당국자는 “참여연대는 야권의 최대 우군(友軍)인데 도와야 하지 않겠냐”고. 한국이 천안함 침몰사건으로 유엔에서 義, 不義를 씨름하는데 미국의 백악관은 오는 8월 4일로 90세가 되는 백악관 출입기자실 여자보스 헬렌토마스(Helen Thomas 89세)의 구설(口說)로 반(反)유대주의(anti-Semitism)가 고개를 쳐든다. 50년 동안 백악관기자실 맨 앞자리를 지키며 대통령 회견 때마다 첫 질문과 마지막 마무리를 해온 토마스기자가 딱 한마디, “유대인은 팔레스타인에서 즉시 철수하라”는 논평 한마디로 57년간의 언론인 생활을 마감하고 50여 년간 백악관 출입기자를 청산했는데.— 토마스기자의 논평을 뽑아낸 유대인 라바이(Rabbi David Nesenoff)는 “온갖 협박편지, 심지어 온 가족을 몰살시켜 버린다”는 협박메일로 곤욕을 치르며 토마스기자에게도 협박성, 악성메일로 괴롭힌단다. 이 사건으로 분명한 것은 미국에 반(反)유대주의자들이 물결치고 있으며 토마스기자의 반 유대인 논평은 “반 유대인, 유대인 증오의 크고 큰 물결 위에 뜬 체리(Cherry)에 불과 했단다. 불의(不義)와 정의(正義) 그 정체를 살핀다면.— 義: 事物ㅣ旨사물신지 = 뜻의. 통속적으로 “옳다”는 것은 義롭다 한다. 하여 일반적으로 “옳을 의”라 부른다. 헌데 그 본래의 뜻 “뜻의”는 그 정체가 깊고 오묘하다. 무엇이 옳은가?에서 출발하기 때문. 사물신지(事物ㅣ旨)의 뜻 그대로 “모든 일(事)과 모든 물(物)건에는 창조주의 뜻(旨)이 담겨 있다”는 뜻. 까닭에 글자의 윗부분은 창조주를 대표하여 양(羊)이, 아랫부분은 모든 피조물을 대표하여 아(我), 곧 “나(ㅣ, we)의 이 세상 존재(存在) 자체”가 창조주의 뜻에서 시작된다. 義란. 먼저 羊이 왜 하나님을 대표하나?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罪)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羊)’이로다: John(the Baptist) saw Jesus coming toward him and said ‘Look the Lamb of God, who takes away the sin of the world!’ – 요한복음 1:29, 35.” 이 요한이 말하기를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하나님을 말함)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내가 보고(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 위에 머물렀던 것을)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노라: Then John gave this testimony: I saw the Spirit come down from heaven as a dove and remain on him. (세례 요한이 물로 예수님께 세례를 줄 때) I would not have known him except that the one(God) sent me to baptize with told me, ‘the man on whom you see the Spirit come and remain is he who will baptize with the Holy Spirit.’ I have seen and I testify that this is the Son of God. – 요한복음 1:33, 34.” 세례 요한(John the Baptist)은 예수님을 몰랐었다. 알게 해 주신 분들이 하나님과 성령님이셨다. 하여 요한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삼위의 일체 중 한 분이 예수님인 것을, 그 분이 “세상 죄를 지워버리기 위한 어린 양(羊)의 제물(祭物)”로 오신 것을 증거한다. 하면 “나(我)는 누구기에?”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가 사람(남자와 여자)을 만들고: God said Let us make man(male and female) in our image, in our likeness – 창세기 1:26.” 하나님은 혼자가 아니었다. 태초부터 아버지 하나님(God the Father), 아들 하나님(God the Son or Son of man) 그리고 성령 하나님(God the Holy Spirit)이 나(我)를 창조하실 때 바로 이 세분 하나님(The Trinity: 삼위일체)의 “형상(Image) 모양(Likeness)” 대로 만든 다음, 하나님의 사람(남자와 여자)에게 “복을 주시며: God blessed them.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창세기 1:28.” 하나님의 “형상(Image)과 모양(Likeness)” 관리는 단체적이나 국가적이 아니고 개인적, 곧 我(나)를 중심으로 집행된다. 창조된 我가 독립하지 못하고 하나님 삼위의 대표인 예수님(= 하나님의 어린 羊)과 합쳐 “義라는 뜻으로 합성돼 있다.” 羊이 예수님으로 대표된 까닭은? 세분 하나님 중 아버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은 안 보인다(the Invisible). 예수님만 마리아(Mary)의 몸을 통해 성육화(Incarnated) 되셨으므로 “육적(Carnal)인 나(我)”와 합해졌다. 義의 형상이 羊은 위를 향하고 我는 땅에 깔려 있는 형상이다. 我: 戈(戰爭전쟁 – 창과/전쟁과) + 手(=扌: 손수). 풀어보면 “싸우듯(戈)이 꽉 잡고 있는 손(手)”이 곧 나(我). 義는 내 손이 하나님의 어린 羊, 예수님을 잡고 놓치지 않는 것. 말을 바꾸면 “我가 예수(羊)님 안에,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심”이 義를 상징한다. 더 쉽게 말하면 羊(예수님)을 떠나서 我는 義를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가 웃긴다는 뜻. 성경의 유명한 시인 다윗(David)은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義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 He restored my soul. He guided me in paths of righteousness for his name’s sake – 시편 23:3.” 여기에서 義가 하나님의 이름(형상: Image)과 직결된 것을 말한다. (이 때는 아직 예수님이 성육화(Incarnated) 되시기 전이니까) 하나님, 예수, 그리고 성령을 떠나서는 義를 말할 수도, 말할 자격도 없다는 말이다. 까닭에 義에 접근하는 첫발은 나(我)를 창조하신 하나님 “이름”을 알아야 한다. 아담과 하와(Adam and Eve)가 죄(罪)를 짓기 전엔 하나님의 이름을 대표하는 義의 사람들이 였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은 후에는 義에의 접근이 불가능해졌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義로부터 단절된 것. 하여 義 곧 하나님의 형상에 접근하는 첫발은 내(我)가 죄인 것을 깨달아야 한다. 바로 이 죄(罪)를 해결하는 열쇠가 예수 그리스도, 그래서 하나님이면서 사람으로 성육(成肉: Incarnated)화 되신 것. 이 분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羊”이라 부르고 이 羊의 이름으로 내(我)가 義의 사람으로 되돌아 갈 수 있다는 것. 해서 예수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義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오 죄(罪)인을 부르러 왔노라: For I have not come to call the righteous, but sinners – 마태복음 9:13.” 만약 사람들이 죄를 짓지 않았었다면 예수님은 성육화 하시지 않았었다. 더욱 강조하신다. 義의 원천인 하나님께 접근하는 길은 예수님 밖에 없다고.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라갈 자가 없느니라: I am the way and the truth and the life. No one comes to the Father (the source of righteousness) except through me. – 요한복음 14:6.” 바로 이 결정적인 예수님의 선언(宣言)에서 기독교 교리가 뿌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만이(Solus Christus: Jesus Christ alone) 죄인을 義인화(Justified)”할 수 있고 이 그리스도에의 접근은 “오직 믿음: Sola Fide” 교리가 자리한다. 다윗왕의 말처럼 하나님 이름 때문에 “의(義 의 길(the Paths of righteousness)” 로 인도했다면 이 길에 접근하는 원동력 역시 예수님의 이름이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Whatever ask in my name, I will do it, that the Father may be glorified in the Son: 요한복음 14: 13.” 하여 義의 길로 들어서는 첫발걸음은 “예수이름”이 절대적 도구이다. 크리스찬인 헬렌 토마스 기자가 유대인을 질책하는 것도 예수이름을 안 믿는 유대인이어서다. 모세( Moses)의 율법은 믿으면서도. 예수님과 하나님 이름을 알지 못하는 북한의 거짓을 義로 바꾸는 길은? 21세기 질문일 뿐이다. 누가 뭐래도. 신영각(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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