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에 깃든 우리 역사 13 : 향원지(香遠池)
보스톤코리아  2010-06-14, 12:26:40 
향원정
향원정
향원지(香遠池)라는 연못이 있다.
연못 가운데에 동그란 모양의 섬이 있고 그곳에 2층으로 된 6각형의 정자가 아담스레 서 있다.
이 정자가 사진을 통해 우리 눈에 익은 향원정이다
향기는 멀수록 그윽하다는 향원익청(香遠益淸)에서 따온 이름이 향원정이다.
아래층은 온돌이고 위층은 누각이다.
호수가 네모나고 섬이 동그란 것은 한국 궁궐에서 흔히 보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즉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의 원리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다.

경회루가 웅장하고 남성적인 모습이라면 향원정은 아름답고 고즈넉한 모습이 꽤나 여성적인 감을 풍긴다.
이곳에 향원정을 세운 이유는 주위에 수많은 궁궐 사이 사이로 드리우는 아름다운 경치를 향원정에서 관람하기 위해서 세운 것이지 향원정 자체를 감상하기 위해서 세운 것이 아니라고 한다. 당시 향원정 주위는 왕실 가족들과 궁녀, 내시 들의 생활공간으로 수십 채의 행각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일본사람들이 그 많은 건물들을 허물어 버려서 이제는 향원정 하나만 달랑 남아 있게 되었다. 일본 사람들이 하는 짓을 하나에서 열까지 헤아려 보면 나쁜 짓만 골라서 하고 있었다.
그 선조에 그 후손들 이라고 지금도 별로 변함없이 대한민국의 심사를 건드리고 있다.
당장 한반도를 반짝 들어서 일본에서 먼 곳으로 이사를 해버리든지 일본열도를 태평양 가운데로 내차 버리면 얼마나 좋겠는가마는 그럴 수가 없으니 답답하다.
창덕궁 비원의 부용정
창덕궁 비원의 부용정
 
향원정을 보노라면 그 아름다움에 쌍벽을 이루는 또 다른 정자가 있다.
창덕궁 비원(秘苑)에 있는 부용정(芙蓉亭)이다.
역시 네모난 모양의 부용지(芙蓉池) 연못가에 평면 구성이 열 십자(+)모양으로 세워진 정자인데, 연못 중앙의 동그란 섬에는 정자 대신에 소나무가 휘어져 있다.
늘어진 소나무 사이로 맞은쪽 언덕 위에는 예전에 규장각이 있었던 주합루(宙合樓)가 보이고 동쪽 편에는 역대 왕들이 연회를 했던 영화당이 어우러져 말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그래서 그런지 창덕궁의 부용정과 경복궁의 향원정은 항상 젊은 남녀들이 짝을 지어 찾아 들고 사진작가들이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
향원정이 있던 자리에는 원래 세조 때 세운 취로정이라는 정자가 있었는데 고종황제 때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그 자리에 향원정을 세운 것이다.
우정총국 앞에 있는 우체통
우정총국 앞에 있는 우체통
 
경회루가 사신접대 등 국가의 공식 연회를 베푸는 장소로 사용되었는데 향원정은 거의 전적으로 임금과 왕비의 휴식공간이었다.
고종황제 내외분이 많이 사용하였는데 고종황제가 건청궁에 기거할 때는 건청궁 쪽에서 남쪽에 있는 향원정까지 다리가 연결되어 있었다.
한국 동란 때 폭격으로 다리가 불타고 지금은 향원정에서 남쪽으로 취향교(醉香橋)라는 다리를 만들었다.
그런데 향원정 주위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물이 흐르는 개울이 보이지 않는데 향원지의 물은 어디서 흘러 들고 있는가?

향원정 북쪽에 돌로 뚜껑을 덮은 열상진원(列上眞源)이라는 우물이 있다. 열상진원이란 말은 차고 맑은 물의 근원이라는 뜻이다.
북악산에서 흘러 내린 물이 고여 있는 우물이다.
물이 워낙 깨끗해서 고종황제 때는 이 우물 물을 건청궁의 식수로 사용 했다고 한다.
바로 이 우물이 향원지의 수원이다.
향원지를 거쳐 경회루 연못을 지나 금천으로 흘러 들어간 다음에 청계천으로 내려가게 되어 있다.
바로 이 향원지에서 고종황제 년간에 피겨 스케이팅 쇼가 벌어 졌다면 믿을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고종황제 내외분이 서양식 문물 문화에 관심이 많으셨다.

하루는 주한 미국 공사 알렌부부와 직원들이 향원지에서 속칭 발재간굿(피겨 스케이팅 쇼)을 고종황제 내외분에게 선을 보였는데, 명성황후는 대놓고 구경할 수 없어서 향원정 누각에서 발을 치고 아이스 쇼를 구경했다고 한다.
황후의 관람 소감은 몹시 불쾌한 것으로 되어있다.
“일국의 품격 높은 사신(공사)들이 놀이패처럼 발장난을 하고 사당패나 색주가들처럼 손을 잡았다 놓았다 하는 것이 상스럽다.”는 것이었다.
이 사실이 궁 밖으로 새어나가자 “여염의 아낙도 거지가 켜는 양궁소리마저 피해가는데 어찌 국모께서 양 오랑캐들의 발재간 굿을 구경하시다니”라고 사림(士林)의 상소가 줄을 이었다고 한다.
김연아 선수가 그때 태어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다.

미국 공사 알렌은 의사와 선교사로 안연(安然)이라는 조선 이름까지 가지고 있었을 만큼 조선에 대한 애정이 깊었던 사람이었다.
1884년 우정총국 개막식 날 김옥균, 홍영식을 필두로 한 개화파가 개혁의 걸림돌이 되는 수구파를 공격한 사건이 있었다.
바로 실패로 끝난 갑신정변이다.
갑신정변의 진원지 우정총국. 조계사 옆에 있다. 박경민 선생님과 함께 가다
갑신정변의 진원지 우정총국. 조계사 옆에 있다. 박경민 선생님과 함께 가다
 
이때 자상을 입은 명성황후의 조카 민영익의 목숨을 구해준 사람이 미국인 알렌이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그는 고종황제 내외분의 신임을 받게 되었다.
고종황제는 재동에 있는 갑신정변의 주모자 홍영식의 집을 알렌에게 주어 제중원 이란 조선 최초의 근대식 병원을 개원하게 하였다.
귀천을 가리지 않고 환자치료에 전념하는 것을 보고 천대 받던 사람들이 제중원에 들어와 양의사가 되려고 줄을 이었다고 한다.

고종황제가 왜 구태여 미국사람 알렌으로 하여금 병원을 세우게 하였는가?
고종황제는 임오군란, 갑신정변을 겪으면서 청나라와 일본을 매우 경계하게 되었다.
다른 서양 나라들도 신뢰하지 못했다.
오직 조선에 대해 영토적 야심이 없는 미국과는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미국인 알렌이 선택된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제중원에서 물리와 화학을 가르치던 언더우드에게 연희 전문학교 설립을 허가했고 정동(새문안 교회)교회 설립도 허용하였다.

배재학당을 세운 아펜젤러에게는 배영 양재하라는 의미로 “배재학당”의 이름까지 하사 하였다. 모두 미국인들에게만 허용한 것이다.
1904년 노일 전쟁을 계기로 조선이 일본의 속국이 될 것이 확실해지자 고종황제는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5번에 걸쳐 특사를 보냈지만 너무 때가 늦었다.

마지막 5번째의 특사가 알렌이었다. 고종은 알렌에게 미화 1만불 상당의 금을 주면서 조선의 독립을 위해 일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그 역시 방법을 찾지 못하고 금을 반송하고 말았다.
1925년 11월 17일 결국은 일본군의 협박 속에 을사보호조약을 맺게 되어 조선의 외교권을 일본에게 강탈 당하게 된다.

온 조선 천지가 허망하고 쓸쓸한 분위기로 가득 차게 된 것은 불문가지다.
그날 이후로 어둡고 쓸쓸한 날을 맞으면 마치 그 분위기가 을사년과 같다고 해서 “을사년 스럽다”라는 말을 쓰게 되었다.
지금은 “을씨년 스럽다”로 변해 버렸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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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목록    [의견수 : 1]
홍하상
2011.03.06, 10:57:47
배계(拜啓)하옵고,

김은한 박사님,박사님의 글에서 무한한 감동을 받습니다.
고국의 문화,역사,전통에 대한 열정적인 탐구심은 이국땅에서 뿌리를 모르고 자라는 2세들에 대한 배려이시겠지요.저 역시 호주의 브리스밴에 살다왔기때문에 그러한 마음을 읽을 수있었습니다.
지난번 교토에서 뵜을 때 참 놀라웠습니다.
미국에 사시는 의사 선생님이 배낭 하나 메고 단기로 일본 고대사를 탐구하시다니!!!
더구나
새벽 5시 교토의 숙소에서 취재를 나가시는 뒷모습은 감동적이었습니다.
9월에 뵙기로 했지만 일단 일단 박사님의 글을 읽으면서 격려의 말씀을 올립니다.
대단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참고로
현재 종로구 재동의 헌법 재판소 자리가 바로 갑신정변을 일으킨 홍영식의 집으로 알려져있고
바로 그 뒷집은 평안감사 박규수(연암 박지원의 손자)의 집으로 팻말이 붙어있죠.
그러나 거기는 홍영식의 집이 아니라 그의 아버지인 홍순목 대감의 집이고,
홍영식의 집은 중구 명동 현재 외환은행 본점 자리에 있었습니다.(이건 역사의 고증 잘못입니다)

알렌의 일기를 보면 갑신정변 당일,서울에는 눈이 왔고,그의 부인이 미국에서 북경을 거쳐 서울에 당도해서 함께 종로 육의전 거리를 산책하고있었다고 나와있습니다.
그러다가 우정국 쪽에서 불길이 솟는 것을 보고 뭔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집으로 바로 귀가했죠.
당시 알렌의 숙소는 종로2가 삼양라면전시관(한성예식장 길)의 뒷집뒷집입니다.
그가 집에 있는데 미국 해군 소위(중위였던가?)가 급히 달려와서 조선의 VIP가 자상을 크게 입었으니
빨리가자고 재촉합니다.그는 급히 왕진가방을 들고 사건현장으로 달려가서 바로 그 VIP인 민영익의 목숨을 구했죠.
알렌이 우정국과 가까운 곳에 있어 빨리 갈수있었던 겁니다.

그저 참고사항으로 말씀드렸습니다.
이미 쓰신 내용만 가지고도 아주 훌륭하십니다.
9월에 뵙기를 기대하면서 박사님의 열정적인 건필을 고대하면서 대단히 훌륭하시다는 말씀을
거듭 올립니다.
내내 건강하시고 댁내 두루 평안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홍하상(논픽션 작가)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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