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톤 떠나는 한비야 씨 인터뷰
보스톤코리아  2010-05-24, 15:18:46 
전 월드비전 구호팀장 한비야 씨
전 월드비전 구호팀장 한비야 씨
( 보스톤 = 보스톤코리아 ) 김현천 기자 = 세계 난민들을 효율적으로 도울 수 있는 방법을 공부하기 위해 지난 1년 간 보스톤에 머물렀던 전 월드비전 구호팀장 한비야 씨는 “정말 뜨겁게 살았다”며 자신의 보스톤 시절을 되돌아 봤다. 오는 23일 텁스대 ‘인도적 지원’ 과정 졸업을 앞두고 있는 한비야 씨와 지난 보스톤 생활과 앞으로의 계획 등에 관한 인터뷰를 나눴다.

공부를 마친 소감은 어떤가?
지난 주에 마지막 과제를 내고 울었다. 감격해서 운 것이 아니라 ‘다른 나’를 느끼며 대견해서 운 것이다. 내가 나를 객관적으로 보면서 “한비야 정말 애썼다”라는 말이 나왔다. ‘바람의 딸’이란 말 그대로 ‘다녀야 하는’ 내가, ‘사람들과 관계를 이루고 유지하며 살아야 하는’ 내가 일년을 꼬박 도서관에 틀어박혀 공부에만 전념했다. 백프로 끓어 올랐던 시간이었다. painful했지만 sweet pain이었다. 보스톤 생활을 돌이켜 보면 “뜨겁게 살았다”라는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재충전할 시간을 갖고 다음 열차는 어떤 열차를 타야 나 자신도 즐겁고 세상을 위해서 좋은가를 생각할 것이다.
인생의 환승역에 온 것 같다. 인도적 지원에 대한 공부를 했으니 물론 그 일은 계속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월드비전이라는 기차에서 모든 힘이 소진 된 상태에서 내렸는데, 다시 타고 계속 가는 건 나 자신을 위해서도 그 일을 위해서도 좋은 방향은 아닌 것 같다. 월드비전에서 일한 9년의 세월과 지난 보스톤에서의 1년을 합한 10년간의 피로가 온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정신적으로 거의 소진 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며칠간 잠을 잔다고 단순히 회복 될 일이 아니다. 최소한 6개월에서 최대 1년은 아무것도 안하고 쉴 것이다. 일은 쉬고, 정말 읽고 싶었던 책, 머리 복잡하지 않은 책들을 읽으면서 지낼 것이다.

한비야 씨가 탈북자 돕기 모금을 마친 후 팬에게 싸인해주고 있다
한비야 씨가 탈북자 돕기 모금을 마친 후 팬에게 싸인해주고 있다
 
‘인도적 지원’이라는 학업을 통해 얻은 것 중 가장 큰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이라 말할 수 있는가?
지금껏 갖고 있었던 구슬을 잘 꿰는 법을 배웠다. 앞서 말했듯이 구슬을 잘 꿰기 위해서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한 거고, 당연히 시기가 되면 난 또 그 일을 계속할 것이다. 이 일을 할 때 내가 지닌 능력의 최대치가 나온다는 걸 난 잘 안다.

보스톤에서 근 1년간 생활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
처음 보스톤에 온 지 얼마 안 된 어느날 집에 전기가 나갔다. 그때가 9월이었는데 가뜩이나 추운 밤에 다음날이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하는 날이었다. 그래서 밤새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달빛을 이용하다가 랜턴, 촛불 등을 다 동원해 준비를 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다음날 프레젠테이션은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한비야 씨가 남긴 보스톤 강연이 어떤 씨앗이 되어 보스톤에 남게 되길 바라는가?
보스톤에서의 마지막 강연을 앞두고 어떤 분들이 오실 지 많이 궁금했다. 그런데 오늘 꼬마에서부터 노인분들까지 연령을 초월해 참석한 것을 보고 황송할 정도였다. 강연장 안은 열기가 뜨거웠고,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불화살을 쏘았지만 씨도 뿌렸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요한 교회에서 있었던 한비야씨 고별 강연에서 참석자들이 웃고 있다
성요한 교회에서 있었던 한비야씨 고별 강연에서 참석자들이 웃고 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선물은 무얼까 궁금하지 않느냐?”는 대목에서는 할머님들의 눈이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강연 도중 숙연한 모습을 보여줬던 우리 아이들, 유학 와 있는 학생들에게 “지금도 잘하고 있어. 앞으로도 잘할 거잖아”라는 위로의 말이 되면 좋겠다.
강연을 들은 모든 사람들은 ‘자기 최대치를 느끼며 사는 삶’, ‘백퍼센트 끓는 삶’, ‘가슴 뜨겁게 사는 삶’을 살아온 나를 통해 그런 삶을 맛본 것이다. 인생에서 무언가를 선택하는 기로에 놓였을 때 이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길 바란다.

처음 보스톤에 올 때와 이제 보스톤을 떠날 시점에서 바라본 보스톤에 대한 느낌은 어떤가?
나는 보스톤에서 이렇게 즐겁게 보내게 될 줄 몰랐다. 엊그제 LA를 다녀 오는 길에 공항에서 보스톤으로 가는 승객들을 안내하는 방송이 들리는데, 마치 내 고향을 부르는 것처럼 느껴졌다(웃음).
유목민 생활(월드비전 활동)을 하느라 한군데 이렇게 오래 있어 본 적이 없는데다 ‘공부’가 만만치 않았던 것이 합해져 진한 정(情)을 쌓이게 한 것 같다. 공부, 정말 힘들었다. 나를 위한 많은 분들의 기도와 격려는 잊지 못할 것이다. 여러 면에서 보스톤은 나에게 기쁨을 준 곳이고 마음의 고향 같은 곳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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