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흥망과 발해국의 태조 대조영 32 <마지막 회>
보스톤코리아  2010-01-11, 14:44:26 
해동성국 발해는 서기 926년 요나라의 태조 야율아보기의 공격을 받아 망하고 말았다. 이왕 얘기가 나왔으니, 그 패망의 원인과 결과가 어떠 했는지도 알아보기로 하자.

고어에 국운은 천명(天命)이라고 했다. 사치와 권세가 극에 달하면 그 다음은 내리막 길이다. 당 태종 이래 정관의치(貞觀之治)와 개원의치(開元之治)를 과시하던 당나라가 서기 907년에 결국 망하고 만다.

그 후 중국은 통치질서를 잃고 지방절도사들이 세력다툼으로 무력이 난무하는 5대10국 시대가 전개 된다. 중국의 역사를 통해볼 때 중국 내부에 변화의 기미가 보이면 이 때를 기해서 북방 유목민족인 흉노, 글안, 돌궐, 몽고족 등이 전후하여 일어나 중국의 중원을 차지하려고 패권을 다투는 변란이 빈번히 일어났다.

이들 북방민족들이 역사현장에 나타나 패권을 다투게 되면 중국의 운명은 물론 동북아시아의 국가들도 그 화를 면치 못하였다. 말갈족의 별종인 글안의 추장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가 부족을 결합하여 서기 907년에 요나라를 세웠다.

요나라를 세운 야율아보기는 중국 공략에 앞서 동부아시아의 강국인 발해를 먼저 점령하려고 싸움을 걸어왔다. 요 태조 야율아보기는 서기 919년 만주의 요양에 있는 옛 고구려의 도성을 수리하고 발해인들을 잡아다가 거기에 채웠다. 이에 반발한 발해의 대인수 왕은 서기 924년에 군사를 동원하여 요양을 공격하고 요주자사 장수실(張秀實)을 잡아 죽였다. 그리고 거기에 잡혀갔던 발해인들을 모두 데려왔다. 이것을 발단으로 발해와 요나라가 전쟁에 몰입했던 것이다.

그런데 북사(北史)에 글안만가기여고려(契冊萬家寄於高麗)라 기록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글안인은 전에 고구려에 예속 되었던 말갈족의 별종으로 고구려의 후예인 발해를 원수로 적대시했다.

요 태조 야율아보기는 그 조서에서 이르기를 “우리는 건국사업을 충실히 끝냈다. 그러나 발해는 대대로 우리와 원수인데도 아직껏 그 원한을 설욕치 못하고 있다. 어찌 이대로 편안히 있을수가 있겠는가”라고 하면서 발해공격을 명령했다.

폭설과 강풍이 몰아치는 서기 927년의 정월이었다. 요 태조 야율아보기는 수만의 군사를 이끌고 불시에 발해를 공격해 왔다. 야율아보기는 황후와 태자 야율배(耶律倍)를 앞세우고 요골(堯骨) 장군을 대원수로 삼아 총 공격을 감행했던 것이다.

발해군은 이에 대항하여 변변히 싸워보지도 못하고 힘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발해의 도성 홀한성은 글안군에게 함락되었다. 해동성국으로 200여년의 역사와 문화전통을 자랑하던 발해국은 서기 926년 기어히 망하고 말았다.

발해가 힘 없이 망하게 된 까닭은 잘 알 수 없다. 일찍이 중국의 사학자 사마천은 그 저서 사기에서 말하기를 “군주가 지혜롭고 총명하며 용감하면 나라가 부강하여 외방민족이 감히 넘보지 못한다”고 했다. 어느정도 재능이 있고 중등정도의 능력을 가진 대신과 장군들이 군왕을 보필하였다면 그렇게 쉽게 망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대인선왕과 귀족 그리고 대신들이 포로의 신세가 되어 글안으로 끌려갔다. 나라가 망하면 국왕도 신하도 그리고 국민도 없는 것이다. 팬전국의 왕과 신하가 적군에게 끌려가는 참상은 노예 바로 그것이었다.

글안인은 본래 유목민족으로 수초를 따라 이리저리 이동하며 양 떼를 몰던 동호족이다. 그래서 그들은 농업이나 공업에 익숙치 못했다. 요나라의 태조 야율아보기는 발해인들을 끌어다가 열하섬과 요하 지방에 투입하여 중국인들과 섞여 살게 하면서 공업과 농업에 종사케 했다.

한편 세자 대광현(大光顯)은 글안의 공격을 용케 피하여 자기를 수행하던 귀족과 장성들을 데리고 고려에 와서 태조 왕건에게 투항했다. 고려 태조 왕건은 대광현 세자와 그의 일행을 친절히 맞이하여 후하게 대접했다. 고려에 망명한 발해국의 난민은 10여만 명에 이르렀다. 태조 왕건은 그들 난민을 기꺼이 받아들여 그 신분과 재능에 따라 직책을 주고 농민들에게는 농토를 주어 농사를 지으면서 안전한 생활을 하게 하였다.

고려에 귀화한 발해국의 귀족과 장성의 명단, 그리고 난민의 통계는 전 서울대학교 교수 김상기 박사의 저서 고려시대사의 부록에 자세히 실려 있다. 그런데 고려에 미처 도망쳐 오지 못한 발해인들은 발해의 본토와 말갈 지역에 그대로 남아 농사를 지으면서 근근히 살아야 했다. 그들은 나라를 잃은 백성이라 보호를 받을 길이 없이 글안인과 말갈족에게 천대를 받고 약탈을 당하다가 말갈족에 동화 되고 말았다.

요태조 야울아보기는 발해국을 멸망시킨 다음 그 지역에 동단국(東丹國)을 세우고 태자 야율배(耶律倍)를 동단국의 왕에 책봉, 통치케 했다. 그리고 발해의 수도 상경용천부를 천복성(天福城)이라 개칭하고 동단국의 수도로 삼았다. 그런데 그 후 발해의 유민들이 곳곳에서 일어나 반란을 일으키고 또 한 글안의 통치자들이 발해의 옛 도성보다도 오히려 중국의 중원에 관심이 높아 화북쪽으로 이동하면서 서기 928년 동단국의 수도 천복성에 불을 놓아 태워 버리고 거기에 있는 원주민들은 모두 요양지방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이후 발해의 도성은 일정한 통치자가 없이 방치되어 말갈족의 천하가 되고 말았다. 말갈족은 서기 1126년에 금나라를 세우고 하북으로 진출하여 송나라를 위협하였다. 서기 1616년에는 여진족(말갈족의 별종)이 일어나 청나라를 세우고 드디어 중국을 통일한다. 중국에 변란이 일어나면 중국 천하는 물론 동북아시아의 나라도 크게 그 화를 입게 된다.

5대 이후 중국에 요,금,원 등 유목민족의 정복왕조가 교체로 들어서면서 그 와중에 휘말려 발해국은 멸망하고 말았다. 그 영토와 백성은 글안과 중국 그리고 고려에 분산 되었고 그 역사는 챙겨주는 주인이 없어 결국 잃어버린 왕국이 되고 말았다.

일찍이 일본에 갔던 발해의 사신들이 일본에서 아름다운 시를 많이 남겼는데도 정작 발해국의 흥망을 전해주는 시 한수도 찾아보기 어렵다. 고려 고종시에 진화(陳華)가 사신으로 중국에 가다가 요동땅에서 당시의 정황을 보고 읊은 시 한구가 있길래 그것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글을 맺으려고 한다.

서화 이소색 (西華已蕭索) : 서쪽의 중국은 이미 시들었고
북새 상혼몽 (北塞 尙昏蒙) : 북쪽의 변방은 아직도 쓸쓸하다.
좌대 문명단 (坐待 文明旦): 앉아서 날 밝기를 기다렸더니
천동일 욕홍 (天東日 欲紅): 해가 뜨려고 동쪽 하늘이 붉으레 해지는구나.

종래의 번역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필자가 나름대로 다시 번역했다.
때는 몽고의 저 북쪽에서 징기스칸이 일어나 말갈족의 금나라와 중원을 두고 패권을 다투는 서기 1220년 경이다.
<참고문헌>
1. 삼국사기, 김부식, 찬.
2. 삼국유사, 석일련, 찬
3. 발새고, 유득공 지음, 송기호 옮김
4. 사기, 사마천 찬
5. 한서, 반고(班固) 찬
6. 후한서, 범엽(范曄) 찬
7. 삼국지,진수(陳壽) 찬
8. 위서, 위수(魏收) 찬
9. 북사, 이연수(李延壽) 찬.
10. 구당서, 유향(劉珦) 찬
10. 신당서, 송기(宋祁) 찬
11. 통전, 두우 (杜佑) 찬
12. 당시선, 이반용 (李반龍) 편
13. 고려시대사, 김상기 저
14. 발해사 연구, 연변대학교, 편
15. 다시 찾는 우리나라 역사, 한영우 저
16. 신중국사, 존페어 저, 김형종 옮김
17. 발해국, 우에다다께시(上田雄) 저.
18. 중국의 역사, 가와사기 요시오 저 임대희, 역.
19. 북한의 선사 고고학, 한창균 엮음
20. 신중국의 고고학, 중국사회 과학 원, 고고연수고 편저.

백린 (한미 역사 문제 연구원)

<편집자 주> ‘고구려의 흥망과 발해국의 태조 대조영’은 이번 호로 마감합니다. 성원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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