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마운틴의 주역들(5) |
보스톤코리아 2009-10-26, 16:45:30 |
Willey 전가족의 참변을 가져온 1826년의 대홍수는 Ethan이 결국 산간벽지에서 20년간 개척자로 이루어 놓은 전 재산을 잃게 되는 불행으로 이어진다. Ethan은 홍수로 다수의 가축과 농토 일부를 잃은 데다, 도로와 다리의 훼손으로 여행자들도 줄어 숙박과 등산안내 수입에도 타격이 있어 경제적 큰 손실을 보았다.
8년 전에는 외할아버지 유산이었던 $3,000 모게지가 남아 있던 집을 일년도 채 못되어 화재로 잃어 버려, 빚을 갚기에 항상 어려웠던 차에 이번 대홍수는 설상가상이었다. 차츰 홍수피해가 복구되고 화이트마운틴의 절경이 널리 알려지며 여행자가 늘자 숙박시설의 확충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Ethan은 보증인의 도움으로 집과 농토를 담보로 $1,500의 융자를 받아 건물을 확충하였다. 그러나 Ethan은 류마치스 관절염과 암으로 건강이 나빠지고, 부근에 경쟁업자가 생기는 등 사업이 부진하였다. 결국1837년에는은행빚이 $4,000로 오히려 늘어나며 모게지를 체납하게 되자, 보증인의 농간에 속아 당시 싯가 $12,000 이 되던 농토와 집 등 전 재산을 차압당 하게 된다. Ethan 은 부인 Lucy 에게 “우리가 수 많은 힘든 일을 해 냈고, 이 산의 경치를 보다 아름답게 보이도록 온 갖 노력을 다 하였고, 이제는 편한하게 살 수 있게 되었는데, 이를 모두 포기하고, 남의 손에 들어 가게하다니” 라고 하며 매우 침통하였다 한다. Ethan은 Crawford 협곡을 떠나 출생지였던 버몬트주의 Guildhall로 이사를 하고 어린 자식들과 함께 (아홉아이들의 나이 2살 부터 20살 까지) 농사일 과 maple syrup 을 만들며 생계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이 곳의 사정도 여의치 않게 되자, Crawford 협곡으로 1843년 되 돌아 온다. 세를 얻은 집은 Ethan 부부의 전 생애가 담겨있던, 그러나 잃어 버려 자금은 남이 살고 있는 그 집이 빤이 보이는 곳이었다고 한다. 날로 쇄약해 지는 건강으로 별다른 활동을 하지 못하고, 종래에는 장질부사에 걸려, 1846년 56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화이트마운틴의 거인”으로 Ethan이 우뚝서기에는 Ethan의 부인 Lucy가 있었다. Lucy야 말로 화이트마운틴의 빼 놀 수 없는 주역 중의 한사람이다. 말기 병환에 있는 외할아버지의 가사를 돌보려고 산간 벽지에 와서, 외사촌인 Ethan과 결혼하여, 10남매를 낳아 기르며, 농지를 이루고, 여행자의 숙박 서비스, 홍수 등 천재로 인한 폐허의 복구, 전 재산을 잃는 고통, 10여년을 앓다 떠난 남편의 간병, 이 것이 Lucy 의 일생이다. Ethan과 달리 약간의 교육을 받은 Lucy는 남편의 의사를 거스리는 적이 없었다고 한다. 여행자가 많을 땐, 자기의 침실까지 내 주고 마루바닥에서 잠을 잤다고 한다. 여자 등산객의 안내를 맡아 MT. 워싱톤에도 올랐다. 9남매 ( 한 아이는 유아시 사망)의 교육을 위하여 때로는 숙박객에게도 도움을 청했다고 한다. 남편 Ethan을 깊게 이해하고 존경하여 Ethan은 신체적으로 건장하고, 그러나 비록 매너가 거칠고, 잘 생기지는 않았더라도, 따뜻한 마음씨를 가져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도우는 데는 누구보다 앞장선 사람이다. 수도 없이 여러번, 등산객을 그 넓은 어깨에 메고 내려 왔으며, Ethan의 안내를 받는 사람들은 누구나 험한 산 중에서도 안전하다고 느꼈다.” 라고 기술하고 있다. 남편이 생전에 자신의 생활이 너무나도 독특하였기에 메모를 남겨 두라고 Lucy에게 부탁하였다. Lucy는 메모를 쓰는 것이 힘들지만, 자신들이 양심바르게 생을 살았다는 것을 남에게 알릴 수 있었기에 즐거운 일이었다고 하였다. Ethan 사후에 “History of White Mountains”라 책을 출판하여, 화이트마운틴의 고전이 되었다. Lucy는 1869년 74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Ethan 의 부친 Abel은 노년에도 건강하여 75세에 Ethan의 매부인 Davis가 만든 현재의 Davis Path를 말을 타고Mt. 워싱톤을 최초로 올랐다. Abel은 처음 정착한 협곡의 남쪽에서 평생을 살다, 1851년 85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Crawford일가, 즉 Ethan외조부모, Ethan부모, 그리고 Ethan 부부는 Mt. 워싱톤 호텔 인근의 한 묘역에 묻혀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이 화이트마운틴의 여러 봉우리를 여러 다른 이유로 찾아 오른다. 필자도 그 중의 하나이다. 멀지 않은 거리에 이토록 훌륭한 산이 있는 것도 행운일 수 있지만, 말이 없는 산이 간직한 사연들의 아주 적은 부분이라도 알게 된 기회를 갖게 된 즐거움이 크다. 화이트마운틴을 터전으로 대대로 이어 온인디안과 이를 수호하기 위하여 목숨을 버린 인디안 지도자들, 인류문명의 미개지에서 삶을 개척하기 위하여 온 갖 시련을 이겨낸 초기 백인들, 산중의 산 속에 터전을 잡고, 절경의 산을 외부에 알리고, 안내한 산악인 Crawford 일가, 산을 오르는 발걸음마다에 새로움이 전해 올 것 같다. (끝) 역사문제연구소 윤희경 박사 칼럼의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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