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흥망과 발해국의 태조 대조영 25 |
보스톤코리아 2009-08-24, 16:03:57 |
대조영이 당나라의 옥검위 대장군 이해고의 군대에 참패를 당한 후 처음 생각했던 건국의 희망은 완전히 사라진 것 같이 보였다.
진나라를 세우겠다고 선포했던 대조영의 아버지 걸걸중상은 이미 작고했고 말갈족을 이끌던 추장 걸사비우도 이해고에게 패전하여 피살되고 말았다. 그래서 대조영은 고구려의 유민과 말갈족들을 데리고 이해고의가 이끄는 당나라 군사의 추격을 피하여 필사적으로 도망해야 했다. 대조영은 그 성품이 온유하고 인자하여 신망이 높았다. 특히 그는 효성이 지극하였고 책임감 또한 강했다. 이해고에게 패전한 대조영은 고구려의 유민과 말갈족의 무리를 이끌고 험준한 천문령을 넘어 북쪽으로 도망해갔다. 대조영은 무엇보다도 먼저 당나라 군사의 추격을 따돌려야 했고 또 많은 무리의 식량 문제도 해결해야 했다. 그리고 그들 유민의 안전한 거주지를 찾아야 했다. 만주 길림성의 농안과 장충 그리고 길림 지방은 부여족의 발상지로서 농경민이 살기에는 적합한 곳이었다.(일본상고사연구, p. 786참조) 그래서 대조영은 유민들을 끌고 험준한 천문령을 넘어 농안 지방으로 도주했던 것이다. 그러나 전투에 전혀 경험이 없고 또 군사적인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한 오합지졸들을 데리고 아녀자들을 보호하면서 험준한 천문령을 넘는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당나라에 귀순하여 측천무후로부터 금오위 대장군에 임명된 글안의 이해고는 귀순한 글안병과 해족(奚族)의 군사 3만 여명을 이끌고 천문령으로 대조영을 추격해 왔다. 천문령에서 대조영과 이해고의 한판 승부전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에 앞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천문령 대첩이 말해주는 그 천문령이 대체 지금의 만주 어디냐는 것이다. 일본의 역사학자 ‘우에다 다께시’ 는 그의 저 ’발해국’ 에서 지적하기를 지금의 장춘과 길림의 중간 지점이라고 했다. 그러나 필자가 알기로는 그곳에 험준한 준령이 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역사상 그 이름이 뚜렷한 것을 보면 천문령은 적어도 한국의 추풍령만치나 유명했던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그래도 천문령의 정확한 위치가 어디인지 확실히 밝혀지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역사상의 지명은 추상적인 설명만으로는 미흡하다. 보다 구체적이며 확신할 수 있는 전거자료가 제시되어야 한다. 신당서의 발해전에 보면 발해국에서 외부로 통하는 길은 동쪽으로 가는 일본도, 남쪽으로 가는 신라도, 압록강쪽으로 가서 중국으로 통하는 조공도, 장령쪽으로 가는 영주도, 북쪽으로 가는 글 안도 이렇게 다섯 길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요서의 영주에서 발해국의 내부로 들어가는데는 두 길이 있는데 하나는 북쪽으로 통하는 영주도이고 다른 하나는 남쪽으로 가서 중국으로 통하는 조공도라는 것이다. 북쪽으로 통하는 영주도는 육로이지만 글안인들의 화적때가 자주 출몰하여 다니기가 위험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발해의 상경에서 중국으로 가려면 천상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압록강까지 가서 바닷길에 오른 다음 배를 타로 산동반도의 등주로 가 거기서 다시 육로로 당나라의 수도 낙양으로 갔다고 한다.(발해사연구, 제3집 p. 309참조) 나는 천문령을 직접 답사한 일이 없기 때문에 자신 있게 말을 못한다. 그러나 여러면에서 볼 때 그것이 오늘날의 길림성 천문령이 아니었는가 추측된다. 중국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중국 동북부의 흥안령 산맥은 몽고와 만추리아를 구분하는 경계이기도 하다. 이 흥안령 산맥의 동쪽 기슭의 감돌아드는 장령은 산이 높고 계곡이 깊어서 하늘에 닿는 것 같아 그 이름을 천문령이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장령은 북쪽으로 농안 지방에 통하고 동쪽으로는 장춘과 길림을 지나 발해국의 상경인 영안으로 통하게 된다. 그리고 남으로는 사평가와 심양 (봉천)을 거쳐 요동으로 빠져 나올 수 있는 요충지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 천문령을 거치지 않고는 발해국의 내부인 홀한주(忽汗州) 목단강 쪽으로 쉽게 가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그러나 천문령의 위치가 아직 확실하지가 않아 더욱 세밀한 답사 연구가 필요 할 것 같다. 어쨌든 천문령에서 당나라의 군사와 고구려 유민과 말갈인을 인솔한 대조영의 한판승부가 벌어진다. 앞서도 말했지만 대조영은 인물이 출중하고 용맹하였으며 지혜롭고 매사에 침착했다. 신당서는 평하기를 “조영요용 선용병”(요★勇善用兵) 이라고 그의 용맹과 용병술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사실 그의 무술 실력은 창, 칼, 활 그 어느 을 가지고도 당할 가 없었다. 그는 “육도삼략” 에 통달한 용병술에 능한 명장이었다. 대조영은 당나라 옥검위 대장군 이해고가 3만 여명의 군사를 이끌고 천문령으로 추격해 온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재빨리 정예병사를 뽑아 천문령의 험준한 계속에 복병시켰다가 이해고의 군대가 천문령을 통과할 때 그 앞길을 막고 후미를 디리치니 이해고의 당나라 군대는 독안에 든 쥐격이라 우왕좌왕 질서를 잃고 혼란에 빠져 버린다. 다음호에 계속 백린 ㅣ 한미 역사 문제 연구원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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