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한 컬럼 [16] 일본 다시보기-오이타현Ⅰ
보스톤코리아  2009-06-01, 16:18:32 
오늘은 하우스 텐 보스를 출발하여 규슈 종단 도로 (규슈 Express way) 를 타고 사가현을 가로질러 오이타현의 유후인 (由布院) 과 세계 제일의 온천 도시라고 하는 벳푸(別府)까지 가기로 되어 있다.

주행 속도는 시간당 70-80km로 변함이 없다. 2차선이면 시속 80km이고 편도선은 70km다. 규칙을 어기는 차량을 볼 수가 없는데, 위반 차량에 부과되는 벌과금이 엄청나다고 한다.

버스 안에서는 모두가 안전 벨트를 매야 하고, 주행 중에는 일어서서도 안되고 돌아다녀도 안된다. 물론 춤을 추는 것은 어림도 없는 얘기다.

운전자뿐만 아니라 보행자들도 교통규칙을 잘 지킨다. Green light이 아니면 절대로 길을 건너지 않는다. J.walker는 더구나 볼 수가 없다.

버스가 사가현에 들어서자 끝없이 펼쳐진 사가평야가 길 양쪽으로 끝이 없다. 사가현은 일본에서 제일 면적이 작은 현이고 85%가 높은 산악지대이지만 15%의 사가평야가 넓고 비옥해서 농축산물의 수확이 대단하다고 한다. 길가에 보이는 농가들은 2층이나 3층으로 다른 곳에 있는 집들보다 아주 큰데, 일년 내내 농사를 짓기 때문에 창고를 겸해서 크게 짓는다고 한다.

규슈의 여름은 몹시 덥다. 그래서 역시 더위를 피하려고 큰집을 짓는다고 한다. 사가평야를 지나면 곧 첩첩산중이다. 히노키, 스기나무가 30m 이상씩 높다랗게 쭉쭉 뻗어있다. 날씨가 더워 연중내내 푸른산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산꼭대기는 용암이 흘러내린 맨 바위산인데도 바위에 대나무 잔디를 심어 놓아서 모두 푸르게 보인다.

히노키 나무나 스기나무는 집을 건축하거나 지붕을 까는 재료로는 최상급 목재로 치기 때문에 가격이 몹시 비싸다고 한다. 어느 회사가 도산하게 되어서 임야를 은행에 내놓았는데 은행에서는 산에 있는 스기나무와 히노키 나무를 판돈으로 도산을 막아 주었다고 한다. 일본 사람들은 산속에 엄청난 돈을 예금해 놓고 살고 있는 것이다.

버스가 사가현을 지나 구마모토현 북쪽 언저리를 돌아들면 주위의 산들이 모두 감나무로 들어차 있는 장관이 도로 좌우로 한없이 계속 된다. 사가현은 밀감이 많이 생산되고 구마모토현 에서는 감의 소출이 많다고 하는데 이렇게 엄청날 줄은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감나무가 위로 크지 못하게 하려고 높은 가지를 쳐주어서 모두 키가 작고 옆으로 퍼져 있기 때문에 수확 하기에 편리하다고 한다. 이렇게 많은 감을 도대체 누가 다 먹을지 궁금하다. 그런데 감 풍년이 들면 감 값이 폭락하기 때문에 구태여 돈을 들여 수확하지 않는 것이 덜 밑진다고 한다. 부러운 얘기다.

목적지 오이타현은 규슈 북동쪽에 있는 현으로 서쪽은 후쿠오카현과 경계를 이루고 남쪽은 구마모토와 미야자키현과 접하고 있다. 동쪽은 바다를 건너 호요 해협을 두고 시고쿠와 마주 보고 있다. 바다와 산의 아름다운 풍광이 일품이고, 우리가 잘아는 벳푸 온천과 일본 사람들이 가고 싶어 하는 유후인 온천이 있는 곳이다.

일본 제일의 현수교인 "고코노에 유메 오쓰리 바시"(九重의 大弔橋)를 비롯해 천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석불 등 관광자원이 풍부하다. 경제적으로는 캐논, 소니, 도시바 등의 하이텍 공장과 자동차 공장들이 있어서 경제적으로 풍족한 현이다. 부자가 되려면 남과 다른 무엇이 있는 법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새마을 운동을 통하여 조국 근대화를 앞당긴 것처럼 오이타현은 일촌일품 (一村一品) 운동의 발상지다. 1979년 오이타현 지사이던 히라마츠 모리히고 (平松守彦) 가 제창하여 시작한 부흥운동이다.

모든 마을이 하나씩 특산품을 정하여 일본은 물론 세계에 통할 수 있는 상품을 만들자는 목표로 이 운동을 전개했다. 그래서 그 결과로 태어난 것이 표고버섯 (일본 전체의 70% 생산), 귤, 분고(豊後) 소, 세키(關) 정갱이, 세키고등어, 보리소주 등으로300여 종이나 된다. 이 운동은 일본의 다른 현에도 번져 곳곳에서 지역 살리기가 진행되었고 해외에도 소개가 되었다. 훌륭한 지도자를 믿고 따른 일본국민의 성공사례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유후인(由布院)>
유후인은 오이타현의 중서부에 위치하고 있는 동서 8km 남북 22km 밖에 안되는 작고 아담한 온천 도시이다. 북쪽으로는 유후다케 (1,584m) 산이 우뚝 솟아 도시의 병풍 역할을 하고 있다. 사방이 1000m 급의 높은 산으로 둘러 쌓인 해발 450m 의 분지에 위치하고 있다.

마을 한가운데에 있는 긴린코 호수로 인해 일교차가 커지는 아침에는 마을 전체가 안개로 가득찬다. 그래서 유후인을 안개마을이라고도 부른다. 곳곳에 산재한 미술관이 있는가 하면 아기자기 한 잡화점에 다양한 공방이 있고 민가를 개조해서 만든 개성 있는 음식점과 카페 등으로 많은 젊은 여성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그래서 이곳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벳푸는 중년과 노년층이 많이 선호하는데 비해 이곳은 젊은 여성들과 그들을 따라오는 젊은 남자들이 많이 보인다.

일본의 3대 온천을 꼽으라면 훗카이도의 노보리베츠 온천, 시즈오카현의 아타미 온천에, 오이타현의 벳푸 온천이 꼽힌다. 그러나 좋아하는 온천을 꼽으라면 노보리 벳푸 온천과, 군마현의 쿠사츠 온천에 유후인 온천이 뽑힌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일년에 일본 사람들만으로도 450만 명이나 몰려들기 때문에 한국을 비롯한 외국에는 홍보조차 안하고 있다. 할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유후인에는 한글로 된 안내 팜플렛이나 지도를 볼 수가 없다.

작은 도시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기 때문에 숙박비나 관람비용이 비싼 것도 관광 코스에 포함시키지 못하는 이유라고 한다. 화가나 작가 등 수많은 예술가 들이 선호하는 도시로 꼭 북해도에 있는 사랑의 도시 오타루와 성격이 비슷한 곳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오타루는 "철도원" 이나 "love letter" 같은 영화나 조성모의 "가시나무새" 나 "불멸의 사랑" 같은 뮤직 비디오를 촬영하는 장소인데 유후인은 작품을 차분하게 구상 하기 위해 묵는 곳이라고 한다.

마을 중앙에는 긴린코(金鱗湖) 라는 호수가 있다. 석양에 비친 호수면을 뛰어 오르는 붕어의 비늘이 금색으로 보인다고 하여 긴린코라고 부른다. 호수 바닥에서 온천과 냉천이 함께 올라와 온도가 떨어지는 새벽에는 수면 위에 자욱하게 안개가 피어올라 온마을을 뒤덥게 된다. 특히 겨울철 새벽에는 더욱더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고 한다.

호수 건너편에는 스기나무로 지붕을 이은 집이 보이는데 아주 옛스럽고 운치가 있는 집이다. 이 집의 이름이 "시탄유" 라고 남녀 혼욕 온천이다. 아침 9시부터 밤 11시까지 이용할수 있고 요금은 각자 내고 싶은 만큼 내면 된다.

일본의 남녀 혼욕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서기 713년의 문헌 "출운 풍토기" 에 기록되어 있다. 그때는 천연의 온천에 물이 고여서 생긴 야외탕으로 남녀노소 구별없이 들어가 목욕 하면서 주연을 베풀고 놀았다고 한다. 자연 발생적인 혼욕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목욕재개를 계율로 삼는 불교가 전래 되자 절에 대형 공중목욕탕이 설치되어 불교승은 물론 민간인들도 이 목욕탕을 이용하였다고 한다. 일본도 백제로부터 불교를 전승 받은 다음에는 절에 대형 목욕탕을 만들었는데, 헤이안 시대에 들어 와서는 시중에 대중 목욕탕이 생겨나 영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에도 시대에는 대중탕에서 때밀이나 머리에 빗질을 해주는 유나(蕩女) 를 고용하는 대중탕이 증가하게 되었다. 당시의 공공 목욕탕은 2층에 사교장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유나에 의한 매춘이 성행하게 되었다. 한 목욕탕에 20-30명의 유나를 고용하고 있어서 막부는 유나의 숫자를 3명 이하로 제한하고 남녀 혼욕을 금지시키는 훈령을 내렸지만 업주들에게는 마이동풍이었고 막부도 강제로 실행하려는 의지가 없었다.

당시에 조선 통신사를 따라 일본을 다녀온 신유한은 그의 "해유록"에 "남녀가 탕 안에 들어가 육체를 들어내고도 서로 괴이히 여기지 않으니 실로 금수와 같다." 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근대화를 지향하는 명치유신에 이르러서는 남녀 혼욕은 풍기를 어지럽힌다고 금지하면서 남녀 욕조를 분리하게 하였다.

그러나 남존여비 사상이 팽배 했던 그 당시에 여탕을 분리는 시켰지만 남탕에 비교해서 시설을 몹시 열악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여권이 신장된 현대 사회에서 여성들의 입김이 강하게 되자 하루에 한번씩 남녀 탕을 바꾸는 곳이 늘어나게 되었다.

그래도 바꾸는 이유가 남녀 음양의 조화를 맞추기 위해서라고 그럴 듯하게 둘러대고 있다. 일본온천에 가면 남녀 탕을 바꾸는 시간을 계시하고 있으니 꼭 기억해 두어야 한다. 수년 전에 하꼬네 온천에 갔을 때 일행의 한 친구가 꼭두새벽에 온천을 하다가 여성 욕객들이 몰려 들어오는 통에 곤욕 (?) 을 치른 일이 있었다. 지금도 남탕에 여자 종업원이 들어와서 청소를 하거나 물건을 정리하는 것은 항상 보이는 일이고 여탕에도 남자 종업원이 들어가는 것이 예사로운 일이다.

아직도 동북지방의 시골이나 몇몇 곳에 남녀 혼탕은 조금은 남아 있지만 옛날과 같은 혼탕은 거의 없어졌다. 대도시에 있는 혼탕은 대부분 수영복을 착용해야 하는 의무조항이 첨부 되어 있다. 일본의 젊은 여성으로 남녀 혼탕에 제정신으로 들어올 사람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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