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후 아이가 다시 償을 받았다.
보스톤코리아  2009-05-25, 17:35:52 
꼭 일년이 지났다. 그동안 가는 세월을 붙잡지 않았고, 오히려 날(日)들을 밀었다. 다시 봄이 왔고, 이 시기를 기다렸다. 한글 글짓기 대회의 결과를 궁금해 하는걸 숨기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가 쓴 글을 읽는 즐거움을 갖고자 소망했던 거다.

지난 해에, 아내는 아이의 글과 인터뷰기사를 신문에서 스크랩했고, 냉장고 문에 자랑스럽게 붙여놓았다. 아이의 사진과 글, 그리고 신문기사는 이제 색도 변했고 먼지도 끼었건만, 여전히 나의 잡문은 동렬에 설 수 없는 완전한 찬밥이고, 열등함이다. 같은 신문에 실렸다만 말이다.

아이가 상을 받았다. 다시 한번 혼자서 아이의 글을 여러 번 읽었다. 요모조모 따지면서, 차근차근 재독에 삼독이다. 작년과 비슷하지만 다른듯 하고, 반복되는 단어와 문장들은 눈에 거슬린다. 주어진 제목이 비슷해서 그렇겠지 혼자 중얼거리고 밑줄만은 치지 않았다. 아이에게 너무 많은 걸 기대하고 요구하는 건 무리라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말이다.

‘밥벌이의 지겨움’을 김훈이 말했단다. 그의 이 책은 읽지 못했다. 이 책의 작가는 글을 써서 먹고 산다는 걸 알고 있지만, 책의 제목은 상당히 고단하다. 곤하고, 힘겨운 밥벌이를 보여주는 책이라 막연히 생각한다. 하기사 글을 써서 먹고 사는것 만 힘들고, 지겹겠는가. 다른 직업도 밥벌이로 치자면 힘겹고, 지겹다.

아이가 장래에 하고 싶은 일이 일년사이에 바뀌었다. 글을 써서 먹고 사는 대문호에서 이제는, 화학자가 되겠다 한다. 헌데, 나에게도 화학은 밥벌이다. 섞고 지지고, 볶아서 뭔가를 만드것이 바로 직업이다. 라면 끓이듯, 부엌에서 하는 저녁식사 준비처럼 말이다.

삼십년 가까이 밥짓는 일을 해온 아내는 불평한다. 밥하기의 지겨움이라고 말이다. 하긴 나도 지겨운데, 아내는 더 할거다. 아내의 말을 이해 한다. 나의 아내도 화학을 공부하기는 했다. 지겹다고 이제는 화학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만, 아이가 제 아빠 엄마를 보고 따라 가려 하는 모양이다.

나의 선친은 교편을 잡고 계셨다. 학교 선생님이 가장 좋은 직업인줄 생각했고, 나는 사범학교에 가야 겠다고 말씀 드렸다. 내가 아이만한 나이 때였다. 선친은 신문을 읽고 있었고, 그의 입가에는 엷은 미소가 번졌다. 선친은 교장이었고, 번쩍이는 별을 달고 있었는데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으셨다. 옆에서 듣던 어머니는 가볍게 혀를 찼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기만 할 뿐 어머니도 아무 말씀 하지 않았다.

이젠, 내가 아비가 되어, 무슨 말인가를, 화학자가 되겠다는 아이에게 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할 이야기가 없고, 아무말도 할 수 없다. 나의 아내는 그저 가볍게 혀를 찰 뿐이다. 그때 선친이 나의 당돌함에 무슨 대답을 준비하고 있었는지 알수 없다. 그걸 안다면, 아이에게 대답으로 해 줄수 있을 텐데, 여쭈어 보지는 않았다. 아쉬움 이다.

내년 이맘때 즈음, 아이는 장래에 하고 싶은 일은 무엇으로 할 것인가? 바뀔까 아니면, 여전히 화학을 해서 먹고 산다고 할까. 글쓰는 작가가 되고 싶어할까. 이건 화학해서 먹고 사는 한 과학자의 궁금증이다. 과학은 궁금증에서 시작하니 말이다. 내년을 기다리며 벌써 시간을 잡아 당긴다.

헌데, 올해엔 신문사에서 연락이 없다. 인터뷰하자는 소리가 없는 거다. 그렇다고 왜 인터뷰 안하는가 물을 수는 없다. 그래도 장래 대문호요 대화학자의 아비인데, 차마 할 일은 아니다. 신문사 편집방향과 일치 하지 않아 그럴수 있을거라 치부한다.


김화옥 (렉싱턴 거주)
편집자 주)
김화옥 씨는 지난 5월 2일 열린 뉴잉글랜드 어린이 글짓기 대회에서 5학년 부문 공동 1위상을 수상한 김선우 군의 아버지입니다. 김선우 군은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1등상을 수상했습니다. 지난해에 김선우 군은 대회 첫 만점을 기록했으며 본지가 김군의 인터뷰 기사를 게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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