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흥망과 발해국의 태조 대조영 19. |
보스톤코리아 2009-05-04, 16:36:46 |
발해의 건국동기는 제목을 달리하여 독립적으로 서술해야 할 중대한 역사적 사건이다. 그러나 고구려가 망하지 않았다면 그 땅에 발해라는 나라가 생겨날 리 만무하다.
발해인은 고구려의 후예이다. 그것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구려의 흥망과 발해국의 태조 대조영이라는 제목 하에 이 글을 연재해 왔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그 옛날 중국의 한나라와 당나라에 대적하면서 그 세력을 떨쳤던 고구려가 서기 668년 10월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에게 패하여 망하고 말았다. 700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고구려가 동족인 신라를 끊임없이 공격하다가 결국 자신이 망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고구려가 망했다고 그 민족마저 소멸된 것은 아니다. 검모잠, 고연무 등 장군이 일어나 고구려의 부흥운동을 일으켰으나 결국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고구려의 운명은 역사의 뒤안 길로 잦아들고 말았다. 그런데 고구려가 망한 지 30년 후인 서기 698년 고구려의 후예인 대조영이라는 영웅이 나타나 당나라의 군사를 물리치고 고구려의 옛터인 지금의 만주지방에 발해국을 세웠다. 발해국은 서기 698년부터 926년까지 230년간 해동성국(海東盛國)으로 그 국력과 문화를 자랑하던 제국이었다. 그럼에도 발해국의 역사는 제대로 편찬되지 못하여 그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잃어버린 강국이 되고 말았다. 발해국은 서기 926년 거란족의 요나라에 의하여 멸망 되었다. 그런데 그 후로 중국과 동북 아시아의 만주지방에 일대 역사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사실 발해국의 흥망은 중국과 동북아시아의 역사적 변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그 사실 규명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서기 916년 요서지방에서 일어난 거란족이 926년에 발해국을 멸망시키고 중국본토로 진격하여 송나라를 압박하였다. 송나라는 요나라에 굴복하여 세비로 명주20만 필과 은자10만냥을 바치고 화약을 맺어 겨우 그 명맥을 유지했다. 그런데 1115년경 북만주에서 일어난 말갈족의 금나라가 요나라를 멸망시키고 그 여세를 몰아 중원에 입성, 송나라를 양자강 이남의 항주로 추방한다. 이후의 송나라를 남송이라고한다. 서기 1234년에는 북서부에서 몽고족이 일어나 금나라를 멸망시킨 다음 1279년에 남송을 병합하여 중국을 통일하고 그 국호를 원이라고 하였다. 이 몽고족이 중국을 지배한 것은 1368년까지 약 90년 간이다. 그리고 서기 1619년 명나라가 그 말기적인 증상을 보이자 북만주에서 말갈족의 후예인 여진족이 일어나 발해의 고도 심양 (봉천)을 통합하고 중원으로 진격하여 지금의 북경을 점령, 청 나라를 세운다. 이 청나라는 서기 1910년까지 250년간 중국을 통치하였다. 청나라의 주체인 여진족은 그 옛날 읍루, 숙신, 말갈, 여진 등으로 이어져 내려온 소위 동쪽의 오랑캐로 그 발상지가 지금의 만주지역이었기 때문에 일본인은 그들을 중국인과 달리 만주인이라고 했다. 일본이 1932년 만주를 침략하여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부의를 찾아다가 만주제국을 창립한 것도 그 이유의 하나이겠다. 이 같이 거란족, 말갈족, 몽고족 그리고 여진족 등이 중국을 침략하여 자기네 나라를 세울 수 있었던 것은 동북쪽의 발해국이 멸망하여 그 변방의 방어가 허술했기 때문이었다. 중국의 역사는 한, 당, 송, 명 등 한족통치시대를 정통으로 하고, 요, 금, 원, 청 등 외방민족이 지배했던 시기를 정복왕조 시대라고 한다. 이 정복왕조 시대에 중국을 통치한 주체는 중국인이 아니고 그들이 이적 (夷狄)이라고 야만시했던 소위 북적 (北狄) 과 동이 (東夷) 족이었다. 발해인은 중국인이 아니었으며 말갈족과도 달랐다. 발해인은 농경민이었으며 그들이 사용한 언어는 고구려와 같았다. 그런데 말갈족은 수렵민이었으며 그 언어는 여진어였고 정치제도 없이 오랜 역사 동안 고구려와 발해에 부속해서 살아왔던 흑룡강 북쪽의 부족들이었다. 그런데 근래에 와서 중국학자들이 발해국을 중국의 지방행정지구이며 당나라의 속주였다고 주장하는 학설을 제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나라는 발해국에 절도사를 두었거나 도독부를 설치하고 그 행정을 감독했다는 사실이 전혀 없다. 오히려 당나라는 해동성국 (海東盛國) 이라고 극찬하면서 그 국위와 문화를 높이 평가했던 것이다. 중국은 발해국의 강역에 대한 문제보다도 그 역사적 귀속문제를 가지고 논쟁을 벌이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같은 역사분쟁이 발생하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는 것이다. 그것은 첫째로 청나라가 1644년부터 1910년까지 250여년간 중국을 통치하여 왔으며 청조의 주체인 여진족의 발상지가 발해의 옛 영토인 만주지방이었다는 데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둘째는 한국의 고대사가 고구려의 후예국인 발해국의 역사를 소홀히 하여 그 역사를 잘정리해 놓지 않은 데 또한 그 책임이 있다고 보게 된다. 하지만 중요한 왜곡은 무엇보다도 신중국이 정치적이며 중화주의 내지 패권주의에서 강요되는 변방국가에 대한 인식부족과 편향적인 사관에 기인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다음호에 계속>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의견목록 [의견수 : 0] |
등록된 의견이 없습니다. | |
|
프리미엄 광고
161 Harvard Avenue, Suite 4D, Allston, MA 02134
Tel. 617-254-4654 | Fax. 617-254-4210 | Email. [email protected]
Copyright(C) 2006-2018 by BostonKorea.com All Rights Reserved.
Designed and Managed by Loopivo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