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춘 교수와 일문일답
보스톤코리아  2009-03-30, 14:51:13 
<보스톤 칼리지에는 어떤 목적으로 방문하게 되었는가.>

-당초 예정은 시카고에서 과거사위원회의 활동에 대해 알리는 자리에 참석하는 것이었는데 이왕 미국에 온 김에 이번 기회에 가능하면 많은 대학에서 우리 위원회의 활동에 대해 소개하는 것이 의미 있겠다고 생각해 다소 빡빡한 일정이지만 나서게 됐다. 보스톤 칼리지에는 램지 림 교수(심리학 전공)의 강력한 요청으로 방문하게 되었다.

<과거사 위원회의 활동에 대한 평가를 부탁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약 만 명 정도의 진상규명신청을 받아 그 중에서 약 50%를 완료했고, 제보와 관련된 지역의 유해 발굴 작업도 10 곳 정도에서 진행되었다.

뿐만 아니라 과거 조작된 간첩 사건과 같은 공안 사건의 진상이 규명되어 법원에서 재심이 이루어졌고 결국은 과거의 피의자들이 무죄로 판결되어 명예 회복과 함께 국가로부터의 보상도 받게 된 사례가 많다. 대표적 사례가 인혁당 사건 재심판결이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전 인수위 때부터 과거사위원회와 국가인권위원회의 기능을 축소 또는 통폐합시킬 것을 공공연히 밝혀왔다. 과거사위원회 내부의 사정은 어떠한가.>

-과거사위원회는 출범부터 관련법(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기본법)에 기초해 활동 기간과 위원들의 임기가 법으로 보장되어 있다. 때문에 함부로 축소하거나 폐쇄시킬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번 위원회의 활동 기한이 내년 4월까지인데 3개월 전에 위원회 자체의 결정과 대통령에 보고로 활동 연장 여부를 결정할 수 있지만 사실상 보고가 아니고 허가에 가까운 것이어서 아마도 정권에서는 활동연장을 꺼려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현 위원장인 안병욱 위원장과 나의 임기가 올 해 11월로 끝나는데 이 역시 정권에서 연장시키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 빈 자리에 대통령과 여권의 입맛에 맞는 인사를 임명할 가능성이 아무래도 크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설혹 여론에 밀려 위원회 활동 기간을 2년 더 연장 하더라도 정권의 입맛에 맞는 인사들이 위원회의 다수를 차지하게 해 지금까지의 위원회 결정을 번복하고 흠집 내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다.

<한국 내에서 대표적 진보적 지식인으로 알려져 왔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한국 사회의 진보 운동에 대한 평가를 부탁한다>.

-현재 정부 기관에 몸담고 있기 때문에 말하기 좀 조심스럽다. 진보의 범위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겠는데, 과거 8년 간 여당이었던 민주당은 국민들에게 설득력 있는 경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무능함을 보였고 결국 그 접점에서 강력히 어필한 지금의 여당에게 정권을 넘겨주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역시, 서민 중심의 경제 정책을 제시할 수 없는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다. 여기에 세계적 경제 위기까지 겹쳐 서민들의 삶은 더욱 곤경으로 빠져들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흔히 진보정당이라고 불리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역시 작년 총선을 앞두고 갈라져 한국 진보운동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줬다. 일반 국민들은 여전히 두 당이 왜 갈라져야 하는지에 대해 아리송해 하고 있다.

게다가 두 정당이 비정규직 문제를 비롯해 서민계층이 겪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에 대해 적절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단지 ‘선거정당’으로만 보여지고 있어 안타깝다. 노동조합의 조직률이 10%도 안 되는 열악한 상황에서 그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진보정당을 탄생시킨 점은 훌륭한 성과인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갈수록 지지기반의 계층이 다분화되고 직종이 다양화되면서 더욱더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진보세력만이 갖고 있는 과제라면 무엇이 있겠는가.>

-무엇보다 통일 문제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종종 통일 그 자체를 지상 목표로 삼고 북한과 미국을 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통일 이후의 사회를 어떤 모습으로 꾸밀 것인가 하는 점인데 이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아직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이 부분에 대한 생산적 논의가 하루 빨리 이루어져야 통일 문제를 접근하는 데에 있어서도 도움이 될 것이다.

<미국내에서 진보정권으로 불리는 오바마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북미관계의 전향적 전환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북미관계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점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가장 큰 이유로는 경제 위기 때문에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여력이 없는 점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북한 문제를 다룰 실무책임자의 인선이 늦어지고 있고 내부의견이 명확히 서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최근 북한이 위성 발사를 계획하고 있는 것은 이를 재촉하려는 의도라고 이해하면 맞을 것이다. 시간이 좀 걸릴 것으로 본다.

<오바마 행정부의 개혁에 대해 전망해 본다면.>

-레이건 이후 지난 30년 동안 미국 사회가 너무 오른쪽으로 갔기 때문에 이를 30년 전으로 되돌리는 것은 사실 조금 회의적이다. 지난 세월 동안 미국 사회를 지배해온 패러다임을 수정해야 하는데 엄청난 저항이 뒤따를 것이고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 하에서 한국의 진보세력이 미래를 위해 준비해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과거 8년 간의 민주당 정부에서 양산된 수많은 오류와 실책을 거울 삼아 서민들에게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한국의 경제정책은 사실 한나라당이나 청와대도 아닌 모피아(Ministry of Finance(재무부)+Mafia(마피아)의 합성어)가 이끌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은 노무현 정부나 이명박 정부나 마찬가지다. 결국은 이들 모피아와 대적할 수 있는 정도의 실력을 갖춘 대안그룹을 만들어 내는 것도 한국의 진보세력이 풀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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