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人의 암투병기
보스톤코리아  2008-12-19, 17:46:51 
홍순영 (보스톤 역사 문제 연구회)
내가 세상에 태어난 해가 1935년 12월 31일 이니 올해 마지막 12월 31일 이면 내 나이 만으로 73세가 되는 해다. 속된 말로 많이 살았다면 많이 산 사람이 되고 아내의 희망대로 10년은 더 살았으면 10년은 더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 이뤄 진다면 삶의 의욕이 너무 과한 부류에 속한 사람이 되지 않을까 괜한 우려도 해보는 것이 죽음을 향한 내 자신과의 주고 받은 문답이 되어 웃음이 절로 난다. 의료기술의 향상과 식생활의 향상으로 인간의 평균 수명이 10년 이상 늘어 나면서 노인 인구의 증가 문제를 가지고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는 것이 오늘 세계 각국이 겪는 문제이다. 요즘 신문에 실리는 부고만 살펴봐도 70세 전후까지 살다 죽는 사람들의 부고가 대부분 이지만 80세, 90세까지 살다 죽는 사람들의 부고도 늘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70세 전후 노인들의 죽음을 놓고 단명 이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더 살수 있는 나인데 하는 조문객의 인사말을 들을 수 있는 것이 상가에서 듣는 말이기도 하다.
나의 경우 70을 넘어 80을 향해 달려 가면서 느닷없이 암 선고를 받고 근 1년 동안 항암 치료를 받았던 사람으로 나이에 관계없이 암은 극복할 수 있는 병임을 심어주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다. 내가 처음 암이란 진단을 받고 왜 하필이면 나에게 라는 당혹감에서 살만치 살아온 사람이 무슨 항암 치료를 받을까! 포기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던 것이 그때의 내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아내의 만류와 아들, 며느리의 권유를 이겨내지 못해 암과의 사투를 벌이는 힘든 싸움을 벌리게 되었던 것이다.
힘든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힘을 내라는 격려도 받았지만 무엇보다 내가 출석하는 교회와 아들 내외가 출석하는 교회 목사님과 성도님 들의 뜨거운 기도가 있었기에 오늘이 내가 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위치에서 있지 않나 싶어 교회와 성도님 들께 감사를 잊지 않고 있다.
이유도 없이 갑자기 배가 아프기 시작해 왔다. 참으로 견뎌내기 힘든 아픔이 3일째 계속 되었다. 보스톤에서 이곳 테네시주 네쉬빌에 이사온 직후라 주치의는 물론 어디에 무슨 병원이 있는지도 알지 못한 상태에서 배 아픔의 병명을 찾아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 중에 어느 한인 교회에서 10년 이상 무료 진료를 하고 있다는 어느 한인 의사를 찾아 갔지만 결과는 밝지 않았다.
아픈 상태를 진찰한 M의사의 소견은 위암이나 대장암에 가까운 병인 것 같다는 소견을 전하면서 정확한 검사를 받아 보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며칠 후 M의사가 정한 s병원에서 위 검사와 CT검사를 비롯한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지만 확실한 병명을 찾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배 아픔의 고통은 날로 심해져 2년전 보스톤에서 받았던 장 내시경 검사를 다시 받아 보자는 M의사의 의견에 따라 장 내시경 검사를 다시 받게 되었다. 결과는 대장과 소장 사이에 탁구공 같은 종양이 발견 되었다. 임좌선 암(LYMPHOMA CANCER)으로 판명되어 암 전문의에 결정에 따라 항암 치료인 키모테라피(CHEMOTHERAPHY)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두 번씩이나 쓰러져 구급차로 병원으로 실려가는 어려움도 겪었으며 1주일 또는 3,4 일씩 병원에 입원을 해야 하는 고통을 반복해서 겪어 내야만 했다. 내가 입원을 하고 키모데라피를 받았던 병동에는 10여명의 암 환자들이 들러 앉아 가슴에 주사기를 꽂고 기약이 없는 삶의 연장을 위해 조용히 기도하는 환자의 모습도 본다. 그들 속에 나는 누구인가? 살아 남아야 한다는 절박감에서 환자 본인은 말할 것도 없지만 아내나 자식들의 부축을 받으며 병원을 드나드는 암 환자들의 여린 모습을 바라보는 안타까운 모습을 작은 지면에 옮겨 쓸 수는 없다. 그리고 서툴게 쓰고 있는 이 투병기가 자칫 잘못 비쳐줘 내 자신을 내세우기 위한 글이 되진 않을까 걱정이 된다. 그러나 암은 극복할 수 있다는 신념을 체험한 사람이기에 지금도 암과 투병중인 많은 암 환자들을 위해 나의 투병기를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지금 암 발생 전처럼 체력을 유지 하면서 즐기던 골프도 다시 치고 매일 30분 이상 걷기도 한다.
165파운드 체중이 125파운드로 떨어져 잠시도 서 있지 못했던 내가 지금은 165파운드 정상 체중을 유지 하면서 교회 생활도 열심히 하면서 책이나 신문도 읽고 글도 쓰고 있다.
비록 재발 여부를 점검하기 위해 3개월 마다 정기 검진을 받고는 있지만 정상인의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를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일을 잊지 않고 있다. 사랑도 나눔이고 기도도 나눔이듯 암과 투병중에 있는 주변의 친지와 교회 성도들을 위해 기도를 드리는 것이 빼놓을 수 없는 나의 일과 중 하나이다. 그들이 나를 위해 기도해 주었듯이 나도 그들을 위해 기도를 드린다. 사랑의 손길로 회복시켜 달라고! 암과 싸워 이기는 길은 무엇보다 삶의 의지력이 강해야 한다. 의사의 지시에 따르는 것도 중요 하지만 모든 것을 하나님께 내려 놓고 기도하는 선한 모습이 더욱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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