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세상 - 누님같이 잠깐 다녀간 저녁비의 이미지
보스톤코리아  2008-08-25, 21:20:13 
누님같이 잠깐 다녀간 저녁비의 이미지
조정권

밤이 파란 면도날 하나를 내게로 날린다.
누가 모차르트를 치고 있다.
비 내리는 뜨락으로 파묻히는 피아노,
저물녘 돌바닥으로 떨어뜨리는 바늘소리
접시 위에 떨구는 바늘소리  검은 튤립처럼 펼쳐진 악보,
등뒤에서 누가 모차르트를 동생 안아주듯 치고 있다.
하늘을 향해 검은 꽃송이를 봉인하듯
미모사나무 죽은 아랫도리를 포근하게 안아주는 비. 눈물이 아직도 따뜻하다.
音들이 철조망의 거위들처럼 모가지를 늘어뜨린 채 거꾸로 매달려  있다.
거위들은 죽어서도 모가지를 껴안고 있다. 눈물이 체온처럼 남아 있다.
누가 오선지에 탐스런 포도송이들을 걸어놓고 있다.
미모사 꽃향기 환한 창가에서 밤이 면도날 하나를 내 귓가로 또 날린다.
내겐 구석의 슬픔이 더 따뜻하다.
꺾인 길섶으로 한참은 더 초록이 좋으리
큰 회화나무 꽃 떨어진 무늬는 좋기도 하지.


해설
그대는 지금 저녁비 내리는 화폭속으로 초대받은 자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라. 그것도 누님같이 푸근하게 그대를 품어주는 한밤의 빗줄기들속에서, 피아노,악보, 철조망에 거위처럼 매달린 빗방울들, 포도송이들, 면도날... 그 붓의 강렬한 터치로 하여, 명징하게 돋아오른  이 싱그러운 이미지들속에서, 어찌 꽁꽁 닫혔던 오감 마저 툭, 터져 버리지 않으랴.

조정권 시인은 서울 출생, 중앙대 영어교육과를 졸업. 1970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비를 바라보는 일곱 가지 마음의 형태> <시편> <허심송><하늘 이불> <산정묘지> <신성한 숲><떠도는 몸들> 등, 녹원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김수영문학상, 소월시문학상, 현대문학상 등 수상했다                
신지혜.시인          
의견목록    [의견수 : 0]
등록된 의견이 없습니다.
이메일
비밀번호
올스톤 한인업소 수 급격 팽창 2008.09.02
올해 6개 업소 개업, 2개 업소 오픈 예정 하버드 애비뉴를 중심으로 한인 상권이 형성되어 있는 올스톤에  한인 업소들이 급격히 증가..
운(運) 2008.08.25
신영각(한미 노인회 회원) "군사 쿠데타로 집권, 9년 넘게 파키스탄 대통령직을 유지해왔던 무샤라프(Pervez Musharraf)는 사우디 아라비아에 순례..
詩가 있는 세상 - 누님같이 잠깐 다녀간 저녁비의 이미지 2008.08.25
누님같이 잠깐 다녀간 저녁비의 이미지 조정권 밤이 파란 면도날 하나를 내게로 날린다. 누가 모차르트를 치고 있다. 비 내리는 뜨락으로 파묻히는 피아..
어머니가 된 여자는 알고 있나니 2008.08.25
선물은 누구에게나 기쁨과 행복을 선사한다. 곱게 포장된 선물꾸러미를 풀어보며 설레는 마음과 기다리는 마음은 더없는 행복한 시간이다. 그래, 그랬었다. 딸아이를 처..
ACT에 관심증폭 2008.08.25
상위권 성적학생이면 준비없이 응시무난 ACT 응시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2008년 8월 현재를 기준으로 올해 ACT에 응시한 고교생은 총 142만명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