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세상 - 자전거를 배우는 아버지 |
보스톤코리아 2008-07-15, 09:03:45 |
자전거를 배우는 아버지
박후기 파밭에 고꾸라진 아버지가 파꽃처럼 짧게 쳐올린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자전거와 함께 일어서는 저녁이었다 어린 내가 허리 부러진 대파와 함께 밭고랑에 드러누워 하얗게 웃던 밤중이었다 식구들이 깔깔거리며 대문 밖을 내다볼 때, 입 벌린 대문 깊숙한 곳에 매달린 알전구가 목젖처럼 흔들렸다 아버지! 쓰러지는 쪽으로 핸들을 꺾지 마세요 아버지를 태운 자전거처럼, 한쪽으로 기운 살림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환한 파밭의 어둠 속으로 곤두박질쳤다 늘 같은 자리만 맴도는구나, 벗겨진 체인을 끼우고 손으로 폐달을 돌리며 아버지가 말했다 어머니는 허리 부러진 파는 뒤란에 옮겨 심었다 흙 속에 뿌리만 묻은 채 옆으로 누워 잠자는 대파들처럼, 식구들은 옹기종기한 이불 속에 대파 같은 다리를 묻고 잠이 들었다 아버지는 죽을 때까지 자전거를 배우지 못했다 자식들은 아버지보다 많이 배웠지만 아버지보다 많은 것을 알진 못했다 해설 이 시가 선명한 수채화 한 폭처럼 다가선다. 한 가족의 단란한 보금자리를 위해 어떤 힘든 노역일지라도 감내하며,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었던 아버지. '자식들은 아버지보다 많이 배웠지만 /아버지보다 많은 것을 알진 못했다' 그렇다. 이 지상의 무엇으로 그 아버지를 이름할 수 있으랴. 자전거를 배우는 아버지의 따뜻한 풍경속에서 그 환한 웃음들이 바이러스처럼 전염된다 박후기 시인은 경기도 평택 출생, 2003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으로<종이는 나무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가 있으며, 신동엽창작상을 수상했다. 신지혜.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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