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한미정상회담과 한미관계 |
보스톤코리아 2008-05-05, 22:26:21 |
김일평 (커네티컷대 명예교수)
지난 주 "보스톤 전망대" 에 실린 김은한 칼럼니스트의 "천금같은 대통령의 언동"을 매우 흥미있게 읽으면서 반세기 전인 1954년 이승만 대통령의 미국방문 당시의 일화를 회상하게 되어서 이글을 쓰게된 것이다. 그 당시 이대통령을 시카고에서 만나 악수도 나누었고 또 유학생과 간담회에서 한 말씀도 아직까지 기억이 나기 때문이다. 훌륭한 말은 오래 남고 좋은 책은 오랜세월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읽고 기억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고집불통의 대통령이라고 이름이 나 있다. 1953년 한국전쟁을 종식시키는 휴정협상을 적극적으로 반대했기 때문에 미국은 이승만 박사를 설득하는데 진땀은 뺏다고 말한다. 미국의 트루만 대통령이 6.25 동란에 미군을 파병하여 북한의 남한점령을 막고 맥아더 장군이 인천상륙을 성공시켜서 38선을 넘어 북진하여 압록강까지 전진하게 된 것은 다 알고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중공군 (중국과 북한은 중국인민의용군이라고 함)이 한국전쟁에 참전 함으로서 한국군과 미군(유엔군)은 다시 또 후퇴하여 38선 이남까지 밀려나게 된 것이다. 따라서 한국전쟁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국전쟁에서 전사하고 부상당하는 미군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미국내의 여론은 더욱 악화되어 한국전에서 철수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전선은 현 휴전에서 고착되고 북한이나 중국은 전선을 고착시켜 놓았다. 휴전협상이 시작되자 이승만 대통령은 휴전협상 반대를 외치며 북진통일을 하겠다고 미국에 압력을 가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반전무드가 조성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이었든 아이젠하워 대장이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고 선거유세를 했다. 자기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한국을 방문하고 한국전을 끝내는 동시에 한국전에 파병한 미군 장병들을 모두다 미국으로 돌아오게 한다는 선거공약을 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공화당 후보인 아이젠하워 장군이 대통령에 당선 되고 휴전협정은 이루어진 것이다. 한국의 이승만 대통령은 휴전협정을 반대하며 남북통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싸우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선거공약을 지키기 위해 이승만 대통령을 설득하는 수 밖에 다른 길이 없었다. 이대통령은 미국에게 한국군을 50만으로 증강시키는 국방예산과 최신무기를 제공해 줄 뿐만아니라 한미간의 방위조약을 체결하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으면 휴전협정에 반대하겠다는 것이다. 릿지웨이 극동군사령관은 오랜 협상 끝에 한국전쟁의 휴전협정을 북한의 김일성 수상, 중국의용군총사령관 펑더화이(후에 국방장관역임)과 함께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서명했다. 그러나 한국측은 협정에 서명하지 않았다. 따라서 미국은 이대통령의 휴전협정 반대를 무마하기 위해 미국에 초빙하기로 했다. 이대통령은 1954년7월27일 워싱톤에 도착하여 미국국회에서 연설한 후 7월31일 아이젠하원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개최한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워싱톤 방문 후 뉴욕을 거쳐 8월 초 시카고를 방문했다. 그 당시 시카고에는 정착하여 살고있는 한인은 손꼽을 정도로 몇 명에 불과했다. 시카고 부근의 여러 대학에 유학생으로 온 한인 학생들은 여름방학이 되면 시카고에 와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학비를 조달하는 때였다. 유학생들은 주중에는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주말이 되면 시카고에 하나 밖에 없는 한인교회에 모여서 예배를 드린 후 한국식사를 하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지금은 시카고에 한국인의 이민사회가 형성되었고 한국인이 많이 진출해 있지만 55년전에는 시카고에 정착한 한인 수는 10여명에 불과했다. 시카고에 도착한 이승만 대통령은 시카고 힐튼 호텔에 모인 한인유학생들과 악수를 일일이 한 후 간담회를 했다. 이 대통령의 말씀은 한국이 3년간의 전쟁을 겪었기 때문에 황패해 있는 것은 유학생도 다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유학생은 누구나 다 애국심을 깊이 품고 와서 공부 열심히 하고 한 사람이 한 개의 기술이나 전문지식을 배워 가지고 조국에 돌아와서 조국경제 재건에 공헌하라는 것이었다. 오늘 들으면 막연한 말 같았지만 55년전의 유학생들은 애국심에 불타 있었기 때문에 감명깊게 들었다. 그리고 이승만 대통령과 프랜체스카 여사를 중심으로 유학생은 기념사진을 찰영한 것이 아직도 남아있다. (이사진은 한국의 "월간조선" (2003년 4월호)에 실은 "김일평교수 회고록-미국유학 50년의 비화" 에 수록되어 있다) 아래 사진은 1954 년 8월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시카고에 와서 한국유학생과 간담회를 하고 함께 찍은 기념사진이다. 둘째 줄 왼편이 이승만 대통령 내외. 셋째줄 오르편으로 부터 네번째가 필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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