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유국 “유가는 아직 저렴하다”


지난 17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석유수출국기구(OPEC) 정상회담이 열렸다. 이번 정상회담은 1960년 OPEC 창설 이래 3번째 열린 역사적 정상회담이었지만, 정작 회담장은 친미와 반미의 갈등과 1세계의 관심과 3세계의 관심의 충돌로 얼룩졌다.
우선 OPEC 회의장은 석유의 정치적 무기화 문제와 달러화 약세 등의 문제를 놓고 친미 성향의 산유국과 반미 성향의 산유국 사이의 갈등이 표출되었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OPEC은 과거 어느 때보다 강하다"며 "미국이 이란을 공격하거나 베네수엘라에 또 공세를 취한다면 유가는 100달러에 그치지 않고 200달러 이상이 될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미국의 우방인 사우디의 압둘라 국왕은 "석유는 갈등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대응했고, "OPEC이 독점적 기구라고 말한다면 OPEC이 언제나 중도적이고 현명한 행동을 해왔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처사"라며 OPEC이 정치적으로 중립이 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OPEC 13개국 회원국 가운데 반미 성향의 국가가 이란과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정도밖에 없는 점을 고려할 때, 이들 반미 국가의 의견이 당장은 OPEC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들 반미 산유국이 국제사회에서 입지가 강화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OPEC의 행보에 이들 국가가 더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실제, OPEC은 1973년 제4차 중동전쟁 시 이스라엘을 지지했던 미국 등 서방에 석유 수출을 금지키로 하면서 석유의 정치적 무기화를 행동으로 옮기기도 하였다.
또한, 정상회의에 하루 전인 16일 비공개 장관급 회의에서 이란과 사우디가 OPEC이 달러 약세를 의제로 삼을 것인지를 놓고 격한 토론을 벌이는 장면이 실수로 방송을 통해 공개되기도 했다. 이란을 포함한 반미 국가는 국제 원유거래에 독점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달러화 약세가 원유 증산을 막아 유가 상승을 부추기고 산유국의 구매력을 떨어뜨린다고 주장하고 있다.
나아가 이들 반미 국가는 원유 거래에 유로화 등 달러화에 강세를 보이는 기축통화를 도입하자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반미 국가의 이러한 주장은 한 편으로는 자국의 경제를 보호하려는 입장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줄이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OPEC 회의에서는 환경 보호 문제를 놓고도 산유국 사이에 갈등이 일었다. 사우디 등의 걸프지역 국가는 지구 온난화를 막고자 수 억 달러 규모의 기금을 마련했다. 그러나 에콰도르의 라파엘 코리아 대통령은 "유럽이 아마존의 맑은 공기를 마시고 싶다는데 아마존 인근의 나라가 돈을 낼 필요가 없다"며 "부자 나라가 가난한 나라의 환경 보호를 위해 돈을 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는 등 1세계 국가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유지했다.
OPEC 회의 내내 산유국은 서로 다른 입장을 보이며 의견 충돌을 했지만, 한 가지 문제에 있어서만은 같은 목소리를 내었다. 그것은 비록 국제사회가 고유가 문제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인플레이션 비율에 고려할 때 현재의 유가는 절대 비싸지 않다는 것. 압둘라 국왕은 "100달러에 육박한 현재 유가가 인플레이션을 감안할 때는 사실상 1980년대보다 낮다"고 말했고, 차베스 대통령도 "인플레이션을 계산해보면 현재 유가는 1970년대로 치면 33달러 정도에 불과하다"라고 주장했다.

김진혁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