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제의 아들 주몽의 탄생과 고구려의 건국
보스톤코리아  2007-11-03, 21:26:32 
백린 (역사 학자)


-고구려의 건국-

생각 하건데 후비인 유화가 세상을 떠난 후 얼마 아니하여 서거한 것이 아닌가 싶다. 어쨌든 금와왕이 돌아가시자 대소가 동부여의 왕위에 오른 것이다. 그 후 동부여에 대한 말이 일체 없는 것을 보면 동부여는 대소왕의 부여에 통합된 것 같다. 부여 민족의 본래의 근거지가 지금의 길림성 장춘(일제시의 신경)과 농안 지방이었다 는 데는 별로 이의가 없는 것 같다. 지금도 길림 근처에 구태라는 부여시대의 지명이 그대로 남아 있다. 구태는 위구태 라는 부여왕의 호칭이다. 부여의 대소왕은 아버지 금와왕이 돌아가시자 동부여까지 통합 하였다. 그런데 지황 3년(서기 22년)에 고구려의 제3대 대무신왕 에게 정복되고 이때 대소왕이 살해되었다. 그러나 부여는 이때 완전히 멸망한 것은 아니다. 왕을 잃은 부여의 왕실과 귀족들은 송화강 남쪽으로 이동하여 지금의 쌍성(雙成)지방에 도읍을 정하고 현도 태수에 의탁하여 그 명맥을 유지한다. 그리고 남은 부족들은 나라를 이끌어갈 여력이 없어 왕의 사촌동생(성명미상)이 주민 1만 명을 거느리고 고구려에 투항 하였다. 이후로 부여의 도성과 동부여는 고구려에 귀속되고 만다.
고구려는 부여국에서 갈라져 나왔고, 그 부여는 조선의 후예국이었다는 것은 우리가 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의 고대사를 좀더 정확히 알기 위해서 아무래도 고구려의 창건과관계되는 동부여가 어떤 나라였으며 그리고 금와왕 시대에 일어났던 역사적 사실등에서 몇가지 의문나는 상황을 간단히 짚고 넘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동부여와 관련한 중국문헌을 찾아보면 고리국에 대한 얘기가 자주 눈에 뜨인다. 그런데 역사문헌에 따라 고리국은 탑리국, 색리국, 비리국 등 각기 다른 명칭으로 표현했을뿐만 아니라 어떤 문헌을 보면 고리국은 고구려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논자마다 그 설명이 다르고 명칭또한 여러 종류이니 쉽게 이해하기가 어렵다. 헌데 한국의 고대사인 삼국사기 나 삼국유사 에서는 고리국이라는 명칭은 찾아볼 수 가없다. 중국 문헌에 씌어진 고리국이란 대체 어떤 나라를 두고 하는 말일까. 사실 지금까지 한국 고대사는이 문제를 확실히 밝혀주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동부여시대에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과 함께 자주 언급되는 태백산과 곤연(鯤淵) 그리고 불함산(不咸山)의 위치가 애매모호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들의 지방을 확실히 밝혀주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 고대사의 해석에 많은 논란을 가져오게 하였다. 이제 순서가 좀 바뀌는 것 같지만 잠시 말을 옮겨 고리국과 태백산, 불함산, 그리고 곤연이 어디였는 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첫째, 중국의 역사문헌들은 부여국을 말할 때 고리국을 내세우는데 고리국이란 도대체 어떤 나라를 말하는 것일까. 중국의 양서(梁書)고구려편에 보면 “고구려의 선조는 동명왕이다. 동명왕은 본래 북쪽 오랑캐인 고리국왕의 왕자이다” 라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삼국지의 동의전은 위략(魏略)을 인용하여 부여국의 사적을 말하면서 “옛날 북쪽에 고리국이라는 나라가 있었다”고 주몽의 탄생설화를 싣고 있다. 후한서 에서도 부여국을 설명하면서 말하기를 “부여국은 현도의 북쪽 천리에 있으며 남은 고구려와 접하고 동쪽은 읍루와 경계 하였으며 서쪽은 선비와 접하고 그 북쪽에 익수가 있는데 지방은 1천리이며 원래 예맥의 땅이었다. 일찍이 북쪽 오랑캐 색리국왕이 출행하였다가...” 라고 설명하면서 금와왕이 유화를 만난 사실과 주몽의 탄생설화를 전제하고 있다. 여기서 색리국이라고 표현한 것은 고리국의 고자를 색(索)자로 잘못 기록한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진서의 동의전 역시 부여를 말하면서 숙신 서북쪽에 비리국이 있었다고 하여 고리국을 비리국 이라고 했다. 이같이 역사문헌 마다 고리국에 대한 명칭도 다르거니와 그 설명 또한 일정치가 않다. 그래서 통전(通典)의 저자는 말하기를 고리국에 대하여 여러 문헌을 조사 검토한 바 분명 부여나 고구려와는 다른 나라 같은데 그 실체를 알수 없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씨 왕조 정조시대의 실학자 유득공은 그의 저 발해고의 지리지에서 지적하기를 만주의 안영(安寧)이 고리국의 옛터였다고 밝혔다. 고리국은 동부여를 두고 하는 말이다. 안영은 지금의 흑용강성 영안현 발해진 발해국의 상경 용안부가 있던 곳이다.
나라의 수도인 도성은 아무곳에나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도읍이 들어서려면 정치, 경제, 군사, 문화 등의 제반조건이 충분히 갖추어져 백성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명승지여야 한다.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정할 때도 무학대사로 하여금 500년 왕업을 이룰 수 있는 도성지를 찾게 하였는데 무학대사는 한양에 다달아 왕심리 하여 묵악산 밑에 궁궐을 세울 수 있는 좌청룡 우백호의 명당을 찾았다는 일화가 있지 않은가. 흑용강성의 영안도 동부여의 수도가 들어설 수 있는 조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남쪽에는 장광재령(長廣才嶺)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고 아름다운 경박호와 조수루(吊水)폭포가 있어 장관을 이루고, 도성을 에워싸고 흐르는 목단강은 서쪽으로부터 북류하여 송화강에 합류한다. 장광재령과 노야령(老耶嶺)사이에 펼쳐진 평야는 비옥하고 수자원이 풍부하여 농업에 적합하였다. 그리고 멀고 가까운 산에는 삼림이 울창하여 아름다운 풍치를 이루어 가히 도성이 들어설 수 있는 명승지였다.
농업민족인 부여족이 그 같은 옥토를 그냥 방치했을리 만무하다. 일찍이 부여왕이 재상 아란불의 말을 듣고 동쪽 바닷가 땅이 기름지고 오곡을 심기에 적당하다고 하는 그 가섭원이 바로 이 영안지방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천년전에 세워진 이 도성은 국가의 흥망과 함께 그 면모를 바꾸면서 부여에 흡수되었다가 부여가 망한후 고구려에 부속되었고 발해시대에는 상경용천부의 대도시로 발전하여, 지금은 발해의 흥망을 말해주는 폐허로서 고고학자의 답사를 기다렸던 것은 아닌지. 이 영안이 발해국의 상경 영안부였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1910년 경 시라도리 구라기찌(白鳥)라는 일본 학자가 흑용강성의 영안지방을 답사하였다가 그곳에 발해국의 유적지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후 만주국이 성립된 뒤 일본 고고학자들이 관공군과 만철의 자원을 받아 이 영안 유적지를 발굴 조사하여 그것이 발해의 상경 용천부 유적이라는 것을 확인하였고 동시에 많은 성과를 올렸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1960년 이후 중국의 고고학 연구팀이 상경용천부의 유적지를 조사 발굴 했다는 말은 들었으나 보고서를 직접 보지 못하여 그 성과를 알지 못한다. 그런데 유득공은 발해고에서 부여부에 대하여 설명하기를 "한나라 때는 부여국 땅이었고(고구려가 망한후) 당나라는 흑수도독부를 두었으며, 발해국에 서는 부여부라고 하였다가 후에 용천부가 되었다" 라고 하였다.
발해의 용천부가 있던 영안은 그 옛날 동부여의 수도이었던 곳이 틀림없다. 두번째 의문은 동부여의 해부루왕이 대를 잇게 해달라고 산천에 제사를 지내려고 갔다가 곤연(鯤淵)에서 갓난 금와왕을 얻었다는 그 곤연이 어디냐는 것이다. 「삼국유사」의 번역본에서는 그 곤연을 백두산에 있는 천지(天池)라고 하였다.
백두산의 상상봉에 있는 천지가 사람이 지나다니는 길목에 있단 말인가. 이 얘기는 동부여의 해부루왕의 전설이다. 그렇다면 그 위치를 동부여의 어느 지점에서 찾아야 할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 곤연은 저설이 뜻한 내용과 같이 부여인들이 가끔 찾아 자주 입에 오르내리던 전설적이며 현실적으로 유명한 호수일것이 틀림없다. 만주지방에는 송화호, 경박호, 홍개호 등 유명한 큰 호수가 여럿있다. 그 중에 서는 장광재령을 배경으로한 경박호가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널리 알려진 호수라는 것이다. 경박호는 옛이름을 홀한해(忽汗海)라 했다. 경박호는 목단강을 따라 북쪽으로 120km 가는 도중에 있다. 그 호수의 입구에 조수루라고 하는 폭포가 있어 마치 하늘에서 물이 쏟아지는 비폭을 이루어, 그 물줄기를 타고 용이 승천하는듯한 장관을 이룬다. 이 경박호에서 다시 북쪽으로 20km쯤 올라가면 발해시대의 상경용천부의 광대한 유적지가 있다. 이 경박호는 동부여시대의 해부루왕의 전설과 발해시대의 어느왕의 공주이던 홍나녀의 전설등 많은 민담과 전설을 가지고 있다. 그 같은 민담 전설을 하나하나 예를 들어 설명할 수 는 없지만, 어쨌든 경박호의 아름다운 경치와 조수루 폭포의 장관, 그리고 그에따른 전설은 발해 시대의 큰 자랑이 였다고 한다. 이 경박호가 동부여 해부루왕의 전설에 나오는 그 곤연이 틀림없다.




<2주 후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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