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
화랑세기花郞世紀, 원화源花 미실美室(47) |
?????? 2024-11-06, 13:31:57 |
640년, 김양도는 풍월주의 위位를 부제 김군관에게 물려주고 자신은 병부로 들어갔다. 양도는 670년 당나라에서 옥사할때 까지 삼국통일을 위하여 수 많은 전공을 세웠다. 양도를 이어 23세 풍월주에 오른 군관은 양도가 펼쳐던 정책을 그대로 이어 악습을 제거하고 순차적인 개혁을 통하여 화랑도의 조직을 더욱 공고히 하려고 많은 노력을 하였다. 이에 선덕여왕의 위로를 비롯한 많은 상선들의 지지를 받음과 동시에 아래로는 존경과 복종으로 따르지 않는 낭도들이 없었다. 군관의 부모는 동란과 석명공주이다. 동란의 부모는 동종과 오란이다. 동종은 거칠부의 아들이다. 오란의 부모는 오종과 비란이다. 오종의 부모는 입종과 사실공주이다. 진흥왕이 입종의 아들이니 오종은 진흥왕과 이복형제이다. 사실공주의 부모는 법흥왕과 보현공주인데 그들은 남매사이이다. 군관의 어머니 석명의 부모는 제25대 진지왕과 보명이다. 즉 석명과 양도의 어머니 양명은 이부동복의 자매이니 군관과 양도는 이종사촌간이다. 군관은 양도보다 세살 아래로 어릴때부터 양도를 따랐으며 학문과 무도를 함께 익히며 자라났다. 군관은 힘이 세고 활쏘기를 잘해서 가히 당할 자가 없었다. 그러나 양도와 보량 부부에게는 더없이 충직한 신하였다. 그때 양도의 폐신인 찰의察儀가 미모로 아양을 떨며 보량과 내통하면서 많은 전횡을 하였다. 이에 불의를 참지 못했던 군관이 검을 뽑아 찰의를 죽이려고 하였다. 보량의 만류로 겨우 목숨을 건진 찰의는 그후로는 다시 낭정에 관여하지 못했다. 어느날 선덕여왕이 궁정에서 연회를 열었다. 거기에는 보량부처도 초대되었다. 초대된 가빈嘉賓들의 가무주연은 흥겹게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이때 선덕여왕이 보량을 조용히 불러서 뜬금없이 “든건대 너의 폐아嬖兒가 아름답다고 하는데 그 아름다움이 과연 어떠한가?” 라고 물었다. 이에 보량은 선덕여왕이 찰의에 관해서 묻는 것임을 알면서 “신이 듣건대 천자는 신하의 내사는 묻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 폐하가 굳이 물으신다면 신첩에게는 한 명의 사신私臣이 있으니 보여드리겠습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다음날 보량은 군관을 데리고 선덕여왕에게로 갔다. 여왕은 이미 다른 사람임을 알면서도 “사람들이 네가 아름답다고 하는데 무슨 재주가 있느냐?” 라고 물었다. 군관은 “신의 아름다움은 외모에 있지 않고 단지 마음 속에 있습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여왕은 다시 “네 마음 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라고 하자, 군관은 “신은 보량 부처를 위하여 죽기를 원하고 보량부처는 폐하를 위하여 죽기를 원합니다. 소위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이것 뿐입니다” 라고 했다. 이에 선덕여왕은 술과 음식을 군관에게 내리고 보량을 보며 “네가 데리고 있는 한 아이가 나의 열 아이보다 낫다. 잘 기르기를 바란다” 라고 하였다. 당시 선덕여왕은 삼서제도에 의하여 남편을 셋이나 맞았지만 후사를 보지 못했다. 선덕여왕의 셋 남자가 모두 가정을 이룬 것으로 보아, 여왕은 불임녀였다(화랑세기에는 선덕여왕의 공식적인 남편인 용춘龍春, 흠반欽飯, 을제乙祭 외에도 양도와 군관도 입시하였다. 양도와 군관은 이로 인하여 고속승진을 하였기에 많은 귀족들이 그것을 잘못으로 여겼다고 기록되어 있다) 김군관은 양도와 함께 김유신과 무열왕 김춘추를 따라 삼국통일에 많은 전공을 세웠다. 680년 문무왕이 그를 상대등으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이듬해 681년 김흠돌이 흥원과 진공 등과 함께 역모를 꾀하다 발각되어 처형되었다. 이때 상대등으로 모반을 알고 있으면서도 보고하지 않았다는 죄명으로 처형(자결?)되었다. ‘흠돌의 난’ 에 군관의 적자/서자 등 여러 아들들도 참가하였다. 침착하고 중후하고 원대한 지략을 가지고 있어 수하의 낭도들을 잘 다스렸던 김군관은 643년 풍월주의 위位를 김천광에게로 물려주었다. 천광의 외모는 김군관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천광은 얼굴이 아름답운 꽃과 같고 교태는 마치 부인과 같았다고 화랑세기에 기록되어 있다. 또한 말도 친절하고 거동도 단아했다고 한다. 하지만 마음은 협기가 있어서 강한 자를 누르고 약한 자를 도우며, 자신의 의지를 과감하게 펼쳐 어느 상선의 영향력에도 동요되지 않고 화랑도를 이끌었다. 천광은 제24대 진흥왕의 증손자이다. 가계를 보면 아버지는 수품(상대등 636 ~ ?)이고 할아버지는 진흥왕의 적자 구륜이다. 천광의 어머니 천장낭주 또한 진흥왕의 손녀이다. 진흥왕이 가야에서 온 후궁 월화와의 사이에서 천주를 낳았고, 천장은 천주의 딸이다. 천광의 할머니 반야공주 역시 진흥왕의 딸인데 반야의 어머니는 미실이다. 즉 구륜과 반야는 동부이복 남매인데 결혼하여 수품을 낳았다. 여성스러운 천광이 22세 풍월주 김양도의 천거로 화랑도의 수장인 풍월주에 올랐는데 그 내막에는 양도의 사랑이야기가 숨어있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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