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
화랑세기花郞世紀, 원화源花 미실美室(12) |
보스톤코리아 2024-01-22, 11:57:42 |
설원은 미실의 권력에 의해 7세 풍월주가 되었다. 그가 설화랑이다. 설화랑의 부모는 설성과 금진낭주이다. 설성의 아버지는 ‘이름 모를 화랑’이었고, 어머니는 유화였던 설씨녀(삼국사기에 등장하는 설씨녀의 내용이 화랑세기의 것과 비슷하다. 삼국사기 편찬시 화랑세기를 참조하였다)이다. 금진낭주의 부모는 1세 풍월주 위화랑과 오도이다(오도의 부모는 소지왕의 왕후 선혜와 승려 묘심이다. 이들이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사금갑의 주인공들이다). 금진은 일찍이 자매인 옥진과 함께 법흥왕의 후궁이 되었는데,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출궁당하여 문천에 살다가 그녀를 얻기 위해 5년간이나 발원기도를 한 구리지의 아내가 되어 토함, 5세 풍월주 사다함과 딸 새달을 낳았다. 구리지가 548년 독산성 전투에서 전사하자, 설성과 사통하여 설원랑을 낳았다. 설원의 출신은 비교적 한미하였지만 아버지 설성을 닮아 풍채가 아름다웠고 피리(옥적玉笛)를 잘 불었다. 설원랑은 어릴때부터 미생(미실의 동생)과 함께 어울리며 자랐다. 또한 이부동복의 형인 사다함이 미실의 연인이었기에 자연스럽게 미실과 가까이 지내며 그녀의 심복이 되었다. 마침내 572년, 설원랑(설화랑)은 원화 미실을 이어 7세 풍월주가 되었다. 처음에는 낭도들이 그의 출신이 한미하였기에 잘 받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든든한 후원자 미실이 권력으로 낭도들을 그에게 예속시켰고, 설화랑에게는 많은 재물을 내렸다. 이에 설화랑은 낭도들에게 몸을 굽히고 재물을 풀어 많은 심복들을 만들어 갔고, 곧 모든 낭도들이 그를 따르고 복종하였다. 미실은 자신의 동생 미생을 부제로 임명하여 설화랑의 부족함을 채워가는 것도 잊지않았다. 설화랑은 미실의 중매로 부인을 맞이하였다. 한편, 1세 풍월주 위화랑의 장녀 준화俊華는 3세 풍월주 모랑毛郞(모랑의 부모는 법흥왕과 백제 동성왕의 딸 보과공주이다)과 혼인하였다. 그들은 딸 준모俊毛를 낳고 행복하게 살았는데, 모랑이 낭도들을 이끌고 국토순례 도중 병을 얻어 555년 비사벌比斯伐467) 에서 객사하였다. 그때 준화는 20세의 나이로 청상과부가 되었다. 그 후 준화는 18년간 홀로 살다가 미실의 권유로 573년경 7세 풍월주 설화랑과 결혼하였다. 설화랑과 준화낭주는 아들 설웅과 설잉피, 딸 정금을 낳았다. 차남 잉피의 아들이 설담날이고, 담날의 아들이 원효이다. 원효가 태종무열왕과 보희(김유신의 누이로 왕후가 될 꿈을 동생 문희에게 팔았고 후일 김춘추의 후궁이 되었다) 사이에서 태어난 요석공주의 남편이 되어 설총을 낳았다. 요석공주는 첫 남편 김흠운이 655년 조천성 전투에서 전사하여 일찍이 과부가 되어 두 딸을 데리고 살던 중 원효를 만나게 되어 아들을 낳으니 그가 설총이다. 즉 설총의 아버지는 원효대사이고, 원효의 아버지는 설담날이며, 담날의 아버지는 설잉피이다. 잉피의 아버지는 설화랑이며, 설화랑의 아버지는 설성이다. 설성의 아버지는 ‘이름 모를 화랑’ 이었으니 성姓을 알 수가 없다. 다만 하룻밤 나눈 사랑으로 얻은 아들을 아버지의 성을 알 수 없어서 어머니 설씨녀의 성을 따랐다고 화랑세기에 전한다. 경주 설씨는 신라가 건국되기 이전부터 있었던 가장 오래된 성씨 중의 하나이다. 삼국유사에 기록되 내용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진한辰韓의 옛땅에 6촌村이 있었다. 첫째는 알천閼川 양산촌楊山村으로 촌장은 알평謁平인데 처음에 표암봉으로 내려와 급량부의 이씨李氏 조상이 되었다. 둘째는 돌산突山 고허촌高墟村으로 촌장은 소벌도리蘇伐都利이다. 처음에 형산兄山으로 내려와 사량부沙梁部의 정씨鄭氏 조상이 되었다. 셋째는 무산茂山 대수촌大樹村으로 촌장은 구례마俱禮馬이다. 처음에 이산伊山으로 내려와 모량부牟梁部 손씨孫氏의 조상이 되었다. 넷째는 취산 진지촌珍支村으로 촌장은 지백호智伯虎이다. 처음에 화산花山으로 내려와 본피부本彼部 최씨崔氏의 조상이 되었다. 다섯째는 금산金山 가리촌加里村으로 촌장은 지타只他이다. 처음에 명활산明活山으로 내려와 한기부 배씨裵氏의 조상이 되었다. 여섯째는 명활산明活山 고야촌高耶村으로 촌장은 호진虎珍이다. 처음에 금상산金剛山으로 내려와 습비부習比部 설씨薛氏의 조상이 되었다.> 신라가 건국되기 이전 부터 있었던 설씨였는데 역사속에서는 물론 현재도 희성으로 총(경주, 순창) 인구는 약 4만명이 조금 넘는다(2015년 -42,646명). 647년에 일어난 ‘비담의 난’을 상기해 본다. 선덕여왕 마지막 해에 비담이 염종과 함께 ‘여왕은 잘 다스리지 못한다 女主不能善理’ 라는 명분으로 반란을 일으켰다가 패할때 명활성에 주둔하였기에, 아마도 이때 고야촌 백성들이 반란에 가담되어 거의 멸족하지 않았을까?(경주설씨 대종회 웹사이트에도 비슷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467) 비사벌比斯伐이 현재의 어디인가? 현재도 역사학계에서는 해석이 다르다. 전라북도 전주와 경상남도 창녕 두 지역 중에 한 곳이다. 삼국사기(신라본기 진흥왕16년)에 보면 “16년 봄 정월에 비사벌比斯伐에 완산주完山州를 설치하였다” 라는 기록이 있다. 완산은 현재 전주이다. 그런데 당시 진흥왕16년은 555년으로 완산은 백제의 영토였다. 그리고 삼국사기에 창녕을 비자화比自火, 561년에 건립한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에는 비자벌比子伐, 2006 ~ 2009년에 걸친 경상남도 함안군 소재 성산산성城山山城 유적 발굴 조사에서 출토된 155개의 목간 중 하나에 비사벌比思伐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화랑세기의 3세 풍월주 모랑공조의 기록으로 보면 창녕일 개연성이 크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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