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
화랑세기花郞世紀, 원화源花 미실美室(8) |
보스톤코리아 2023-12-18, 11:36:32 |
사다함은 대가야 정벌에 참전하고 돌아온 그해(561년, 삼국사기의 기록은 562년이다) 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는 화랑세기의 기록을 중심으로 풀어보면, 세종과 미실의 장남 하종은 562년(~ 564년) 에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 하종의 외모가 사다함을 많이 닮았기에 사람들은 그를 사다함의 아들이라는 풍문이 돌았다. 또한 사다함의 아들이 아니라는 기록도 함께 전한다. 미실의 이모인 사도왕후가 미실에게 태자 동륜을 섬겨 아들을 낳으면 후后에 봉해 주겠다며 꼬드긴 때가 곧 하종이 태어난 해라고 볼 수 있다. 즉 562년 무렵 미실은 동륜태자에게 색공하여 임신을 했다. 미실은 사도왕후의 명으로 동륜을 섬긴지 얼마(며칠?)되지 않아 또 진흥왕의 침전으로 불려가게 되었다(왕이 왕후에게 먼저 채근하였다). 왕은 미실을 한번 사랑하고 두번 사랑하면서 그녀의 ‘색공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결국 왕의 곁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늘 미실이 있었다. 당시 왕궁에는 진흥왕의 정비 사도思道왕후 외에도 많은 후궁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미실美室, 보명寶明, 옥리玉理, 월화月華는 왕후와 함께 왕을 가까이서 모신 대표적인 궁주들이었다. 물론 진흥왕은 누구보다도 미실을 가장 총애하였다. 미실은 교태와 가무 뿐만 아니라 문장에도 능하여 왕이 조정에서 국사를 논할 때도 동행하여 문서를 참결하며 모든 업무를 보좌하였다. 이 무렵(아마도 564년 경) 미실이 둘째 아이를 출산하였다. 딸이었다. 진흥왕은 애송공주라고 이름하였다. 왕은 예쁜 딸을 자신의 딸로 알고 공주에 봉했지만 사실 그 아이는 자신의 아들인 동륜태자가 아버지였다. 다만 진흥왕은 그 내막을 모를 뿐이었다. 당시 하종은 세살(만2세?)이었는데 애송공주와 동복이었기에 진흥왕은 그에게 사지舍知(13등급의 경위京位이다)의 관위를 내렸다. 아울러 왕은 하종에게 왕궁에서 기거할 수 있도록 특전도 베풀었다. 그후 왕은 미실을 더욱 총애하여 또 딸을 낳았으니 그녀가 반야般若공주이다. 미실의 출산이 거듭해지자 왕은 이와 동시에 하종의 관위도 승진시켰다. 진흥왕이 얼마나 미실을 총애하는지 가늠할 수 있는 광경이 아닐 수 없다. 하종은 대사大舍(12등급이다)로 승진되었다. 왕과 미실의 사랑은 식을 줄 몰랐고 다음에 태어난 딸은 난야蘭若공주로 봉했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하종의 관위는 올라 나마奈麻가 되었다. 나마는 11등급이다. 이윽고 진흥왕은 미실로 부터 아들을 얻었다. 그가 수종전군壽宗殿君이다. 왕은 미실로 부터 태어난 네 명의 자녀들에게(애송공주는 아들 동륜태자의 딸이다) 동복 형인 하종에게 호형하도록 했지만, 하종은 자신의 관위가 낮았기에 공주들과 전군으로 부터 형이라 불려지길 꺼려하였다. 이에 진흥왕이 하종을 전군殿君으로 봉하려 하였다. 하지만 담당 관원인 삼호공三好公의 반대로 그 뜻을 거두었다. 삼호공은 (세종)전군의 아들을 또 전군으로 봉함은 부당하다고 직언하였다. 이에 미실은 노여움을 감추지 못했고 결국 그를 호출하여 강하게 질책하였다. 미실은 삼호공이 가까운 친척이었기에 그 자리에 앉혀서 내질內秩의 업무를 관장하도록 하였는데 자신의 마음도 읽지 못했다며 그를 파직하려고 하였다. 이에 삼호공은 “얻을 수 없는 것을 얻는 것은 상서祥瑞로운 일이 아닙니다. 급히 차면 기울어지고 서서히 이루어지면 완전합니다. 비록 전군이 아니더라도 부마가 될 수 있습니다. 하필 제도를 넘어서서 뭇 사람들의 마음을 거슬린 후에 가하겠습니까?” 라고 충언하였다. 그러나 미실은 끝내 노여움은 풀지 않았고, 그 관직은 박영실의 아들인 노동弩同(미실과는 이종이다)에게로 돌아갔다. 하종은 삼호공의 예언처럼 후일 부마가 되었다. 하종은 두 명의 부인을 두었는데 정처 미모낭주는 7세 풍월주 설원랑의 딸이고, 2처 은륜공주는 진흥왕과 사도왕후의 막내딸이다. 미모낭주는 딸 유모와 영모, 아들 모종공을 낳았다. 영모는 김유신의 정처이고 유모는 2처이며, 모종은 22세 풍월주 양도공의 아버지이다. 하종의 2처 은륜공주는 딸 하희와 월희, 아들 효종공을 낳았다. 하희의 아들 춘장공은 23세 풍월주가 되었다. 한편 진흥왕은 하종을 전군으로 봉하려는 미실의 바램을 알고 있었기에 일단 하종을 자신의 가자假子로 삼아서 마침내 전군으로 책봉하였다. 그날이 수종이 태어난지 77일이 되는 날이었다(572년 무렵의 일이다). 진흥왕은 미실과 하종, 수종과 함께 같은 수레를 타고 전군의 책봉을 위하여 신궁으로 향했다. 신궁에서 예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미실은 기쁨이 지극하여 왕의 품속에 안기어 “하루 아침에 두 전군의 어미가 되었습니다.” 라고 감격하며 말하자, 왕은 “짐과 더불어 한 몸인데 어찌 다만 두 전군뿐이겠는가?” 라며 미실을 총애함이 그지없었다. 그날 밤 왕은 성대한 잔치를 베풀어 친히 축하하고, 태자 이하 모든 왕자와 전군들을 모아 미실에게 절하고 어머니라 부르도록 하였다. 그런데 동륜태자는 이미 미실과 사통한 관계였기에 ‘엉거주춤’ 하게 절을 하였다. 이에 미실이 급히 일어나서 태자는 다른 전군과 같지 않은데 어찌 절을 시키냐며 절 받기를 거부하였다. 그러자 왕은 허락하여 동륜태자는 일배一拜를 하였고 다른 왕자들과 전군들은 사배四拜를 하였다. 수종과 하종을 전군으로 봉한 진흥왕은 기뻐하며 잔을 들어 취기가 올랐고, 곧 미실을 이끌고 장막으로 들어갔다. 이에 동륜태자 이하 모두 만세를 외치고 물러갔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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