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
화랑세기花郞世紀, 32세 풍월주風月主 신공信功(34) |
보스톤코리아 2023-08-28, 11:31:00 |
927년 음력 11월 후백제의 견훤이 신라를 침공하였다. 포석정에서 왕비와 왕실 친척과 공경대부 등과 함께 유희를 즐기고 있던 경애왕은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나라를 잃었다. (삼국사기의 기록이다. 그러나 포석정에 관한 화랑세기의 기록을 종합해 보면, 경애왕은 그곳에서 한겨울에 유희를 즐긴 것이 아니라, 국가의 안위를 염원하는 제사를 신궁에서 올렸을 개연성이 크다). 결국 경애왕은 견훤의 겁박에 자살을 했고, 견훤(또는 화백회의?)은 김부金傅를 왕으로 세웠다. 그가 신라의 마지막 왕 제56대 경순왕이다. 하지만 김부 역시 935년 11월 재위 8년만에 천년의 신라 사직을 고려에 양국讓國하였다. 그리고 고려로 부터 상주국上住國 낙랑왕樂浪王이라는 품위를 받고, 고려 태조의 딸 낙랑공주와 결혼하면서 왕건의 사위가 되었다. 김부는 비록 나라는 고려에 바쳤지만 자신은 태자보다도 높은 지위를 부여받았고 81세까지 사는 천수를 누렸다. 김부의 가계를 살펴보면, 김부는 제46대 문성왕 김경응의 6대손이다. 문성왕에게는 제1왕후 소명왕후가 있었는데 아들이 없었다. 그래서 숙부인 김의정을 양자로 삼아 왕위를 잇게하였다. 그가 헌안왕이다. 그리고 제2왕후 흔명부인은 아들을 하나 두었는데 그가 김안金安으로(어머니가 미상이라는 기록도 있다), 경순왕의 고조부이다. 김안은 아마도 문성왕의 적자가 아니었기에 왕위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아버지 문성왕이 죽고 자신의 종조부 김의정이 부왕의 양자(즉 문성왕의 적자가 되어) 가 되어 왕위에 오른 그해 857년에 상대등이 되어 약 6년간 재임하였다. 김안은 아들 김민공을 두었는데 김민공金敏恭은 신라 최고의 관등인 각간으로 시중의 벼슬을 지냈다.449) 김민공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그가 김인경金仁慶이다. 김인경이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 김부의 할아버지이며 의흥왕懿興王으로 추봉되었다. 그는 아들 둘을 두었는데 장남이 김억렴이고 차남은 김효종이다. 김억렴은 아들 유렴과 딸을 하나 두었다. 아들 김유렴金裕廉은 917년 시중에 임명되었다(제54대 경명왕 즉위년). 931년 고려 태조 왕건이 서라벌을 방문했을때 유렴을 인질로 삼아 고려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김억렴의 딸은 태조 왕건의 제5왕후인 신성왕태후이다(아마도 936년경에 왕후가 된 것으로 추정한다. 왕후는 안종安宗 왕욱王郁의 생모이며, 왕욱은 고려 제5대왕 경종의 제4왕후 헌정왕후와 사통하여 제8대왕 현종을 낳았다). 김억렴의 차남 김효종金孝宗은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 김부의 아버지이다. 즉 김부의 가계는 제46대 문성왕 김경응으로 부터 김안 – 김민공 – 김인경 – 김효종 – 김부로 이어졌다.450) 김부의 아버지는 신라의 마지막 화랑(기록된 문헌으로 볼때)의 우두머리인 풍월주이자 국선國仙인 효종랑으로 더 알려져 있다. 국선 효종은 당시 1,000여명의 낭도들을 이끌고 있었다. 그는 의로운 일을 많이 하였기에 그가 행한 미담들을 정강왕도 듣게 되었고, 왕은 그의 선행을 치하하면서 헌강왕의 딸 계아공주와 혼인하게 하였다. 그들은 장남 김응겸과 차남 김부를 낳았다. 927년 후백제의 견훤이 신라를 침공하고 경애왕을 자살케한 후 견훤은 국선 김효종의 아들 김부를 왕으로 세웠다. 이에 효종은 신흥왕으로 추봉되었다. 김효종에 관한 기록은 거의 전하지 않지만 삼국사기(효녀지은전孝女知恩傳)와 삼국유사(빈녀양모조貧女養母條)에 기록된 내용으로 충분히 그의 일생으로 유추해 볼 수있다. 449) 김민공은 박예겸의 후임으로 880년 시중에 임명되었다(제49대 헌강왕6년 때이다). 이때가 잠시나마 신라의 하대에서 가장 풍요롭게 살았던 기간으로 보여진다. 삼국사기에 보면, 880년9월9일 헌강왕이 신하들과 월상루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면서 김민공에게 “짐이 듣건데 지금 민간에서는 기와로 지붕을 덮고 짚으로 잇지 않으며, 숯으로 밥을 짓고 나무를 쓰지 않는다고 하니 사실인가?” 라고 묻자, 김민공이 자신도 일찍이 그렇게 들었다며, “임금께서 즉위하신이래 음양이 조화롭고 비와 바람이 순조로워 해마다 풍년이 들어, 백성들은 먹을 것이 넉넉하고 변경은 평온하여 민간에서 즐거워하고 있으니 이것이 거룩하신 덕의 소치입니다.” 라고 대답했다는 일화가 기록되어 있다. 450) 제46대 문성왕의 부모는 신무왕 김우징과 정종태후 박씨이다. 제45대 신무왕은 어렵게 왕좌를 차지하였지만 고작 181일만에 병사하였다. 김우징은 828년 시중에 발탁되었지만 경주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면직되었고, 834년 다시 시중이 되었지만 아버지 김균정이 상대등으로 취임하면서, 우징은 시중직을 사임하였다. 제42대 흥덕왕 사후, 상대등 김균정과 균정의 조카 김제륭 사이에 왕위쟁탈전이 일어났다. 균정은 정변 중에 죽고, 제륭이 836년 희강왕으로 즉위하였다. 희강왕을 옹립한 김명이 반란을 일으키자 희강왕은 자살하였고, 김명이 민애왕으로 즉위하였다. 아버지 균정을 잃은 우징은 청해진의 장보고에게 몸을 의탁했다가, 민애왕을 토벌하기 위하여 군사를 이끌고 왕도로 왔다. 김우징의 수하 장군 김양이 민애왕을 살해하고(839년1월19일) 우징이 왕위에 오르니 그가 신무왕이다. 181일의 왕을 하기엔 오랜 기간 절치부심하였고 너무나 많은 것을 희생하였다. 김균정의 아버지는 제38대 원성왕의 삼남 김예영이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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