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
화랑세기花郞世紀, 32세 풍월주風月主 신공信功(16) |
보스톤코리아 2023-04-13, 17:28:32 |
681년 화랑의 풍월주 제도를 폐지했던 자의왕후는 문무왕의 부인이다. 그들의 장남 정명은 조졸하였기에 차남 소명이 왕위를 이으니 그가 제 31대 신문왕이다. 문무왕과 신문왕 부자에 관한 이야기로 ‘만파식적萬波息笛’ 설화가 전한다. 삼국사기에 그 피리에 관해 언급하였지만 괴이하여 믿을 수 없다고 기록되어 있다. 삼국유사에는 비교적 자세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삼국통일을 이룬 문무왕은 자신이 용이 되어 왜구를 막겠다며, 자신이 죽은 후 시신을 화장하여 유골을 동해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에 신문왕은 부왕의 유골을 동해 앞바다 대왕암에 안장하였고, 문무왕릉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해중왕릉이 되었다. 그리고 신문왕은 즉위와 함께 문무왕이 동해 앞바다에 호국사찰로 건축하고 있던 감은사感恩寺를 완공하여 부왕의 뜻을 받들었다(현재는 절터에 석탑 두개가 남아있다, 사적 제31호, 사지의 동,서 삼층 석탑은 국보 제112호). 682년(신문왕2년), 해관海官의 보고에 의하면 동해안의 작은 산이 감은사로 향하여 온다고 해서, 일관日官에게 점을 치게하니, 해룡이 된 문무왕과 천신이 된 김유신이 수성의 보배를 주려하니 받으라고 하였다. 이에 이견대利見臺439) 에 가서 보니, 바다 위로 떠오르는 섬에 대나무가 있었는데, 낮에는 둘로 나뉘고 밤에는 하나로 합쳐졌다. 풍우가 일어난 지 9일이 지나 왕이 그 산에 들어가니 용이 흑옥대黑玉帶를 바쳤고, 왕에게 그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불면 천하가 태평해질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왕은 용의 예언대로 피리를 만들어 불으니 나라의 모든 근심 걱정이 해결되었다. 그래서 그 피리를 ‘만파식적’ 라 불렀고, 그 피리를 불면 몰려왔던 적군도 물러갔고, 병도 낫고, 홍수나 가뭄도 해결되었다. 이렇게 만사가 해결되는 국보를 효소왕 때 분실하기도 하였다. 그 피리를 찾는 과정에서 말갈족에게 납치되었던 화랑 부례랑을 되찾아오게 되자 그 피리의 이름은 ‘만만파파식적’으로 격을 높혀 불렀기도 했다. 그리고 김효양(추존왕 명덕왕, 제38대 원성왕 김경신의 아버지)의 가문에서 대대로 보관해 오던 그 피리를 효양이 아들 경신이 왕위에 오르자 그에게 주었다. 김경신은 왜국 등이 만파식적을 노렸기에 더욱 깊숙히 숨겼다. 고려 광종 때 경주객사에 동경관을 지으면서 그곳에 보관했다고 한다. 1592년 임진왜란 도중 화재로 유실되었다. 그래서 광해군 때 경주 부윤이 신묘한 옥피리가 유실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 하여 옛 모습을 상고해서 새로 만들었다(현존하는 피리 중의 하나가 그것이라고 믿는다). 1690년, 폭우로 무너진 동경관의 담장을 보수하다가 누군가가 감춘 것으로 보이는 옛 옥피리를 김승학이라는 향리가 찾았다고 한다. 그는 아무도 모르게 집으로 가져가 죽을 때까지 소유했다. 1707년, 그가 죽자 그 피리가 임진왜란 때 유실된 진품이라고 추측해 관아에서 압수하여 다시 동경관에 보관하였다(이 피리도 현존하고 있다). 1909년 일제에 의해 창경원 어원박물관으로 옮겨 보관하다가, 경주박물관이 건립되자 다시 경주로 가서 수장고에 보관하고 있다. 도중에 잃어버리고 다시 찾는 등 만파식적의 진품일 가능성은 의문이 들지만 현존하는 두 옥피리도 분명히 조선시대부터 이어진 유물이 확실하기에, 문화재의 가치, 즉 상징적과 역사적 가치는 충분하다고 본다. 뿐만아니라 만파식적은 신라의 삼기팔괴三奇八怪440) 의 하나로 보물 중의 보물이었다. 439) 신문왕은 아버지 문무왕을 동해에 장사지낸 뒤, 참배하기 위해 해중릉이 잘 보이는 바닷가 언덕 위에 이견대를 지었다. 현존하는 이견정利見亭은 물론 당시의 것이 아니고 1979년에 건축하였다(사적 제159호). 440) 삼기팔괴三奇八怪는 신라(또는 경주)의 세개의 보물과 여덟 곳의 풍경을 말한다. 삼기는 금척金尺과 옥적玉笛과 화주火珠를 말한다. 금척은 박혁거세가 가지고 있던 자尺다(병든 사람이나 죽은 사람의 치수를 재면 병이 낫고 다시 살아 났다고 한다). 옥적은 신문왕의 만파식적이다. 화주는 선덕여왕이 가지고 있던 구슬이다(햇볕에 비추면 솜에 불이 붙어서 화주라고 하였다). 팔괴는 1, 계림황엽鷄林黃葉은 계림의 풍경을 말한다. 2, 금장낙안金丈落雁은 현재의 현곡면 금장리에 있었던 금장대를 말한다(2012년에 복원되었다). 3, 나원백탑羅原白塔은 현곡면 나원리의 절터에 있는 오층석탑을 말한다(국보 제39호). 4, 남산부석南山浮石은 경주 남산에 살짝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바위를 말한다. 5, 문천도사蚊川倒沙는 시냇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문천(남천)의 모래를 말한다. 6, 백률송순柏栗松筍은 소나무에는 원래 새순이 나지 않는데 경주 백률사(목에서 흰피가 솟았다는 이차돈이 처형 당한 장소) 의 소나무는 가지를 치고 나면 다시 새순이 돋아났기에 이를 가리켜 백률송순이라고 했다고 한다. 7, 불국영지佛國影池는 아사달의 전설이 있는 영지 호수에 비친 불국사의 전경을 말한다. 8, 압지부평鴨池浮萍은 안압지의 부평초가 둥둥 떠다니는 모습을 말한다. 그리고 팔괴에 끼기도 하는 금오만하金鰲晩霞(금오산의 저녁노을)와 서산모연西山募煙(선도산에서 바라보는 아침햇살)이 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encykorea.aks.ac.kr),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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