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디스쿨이 초청한 박영선 "한국 정치는 아직 마차를 타고 있다" |
시니어리서치펠로우, 케네디스쿨에서 1년간 디지털 민주주의 공부 국민들이 공천하는 오픈프라이머리로 정치과정 투명하면 G5 도약 이재명 대표에는 |
보스톤코리아 2023-02-09, 18:27:08 |
(보스톤 = 보스톤코리아) 장명술 기자 = 도종환 시인이 “부드러운 직선”이라 칭한 느낌을 알 것 같았다. 박영선 전 장관(63)은 정치인 같지 않은 정치인이다. 언론인으로서 최고의 조명을 받았던 박 전 장관. 다시 돌아갈 기회가 있다면 또 정치를 선택하겠냐는 질문에 “기자는 하고 싶은 일”이었지만 “늘 오늘이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정치를 해왔다”고 답했다. 정치가 전쟁터였단 말로 들렸다. 비록 전쟁터에서 살아 남았지만 상투적으로 소위 ‘정치인’이라는 수사에는 잘 들어맞지 않는 것 같은 그다. 그래서 권력의지를 제대로 내비쳐야 하는 한국 정치계에서 언론계에서만큼 각광을 받지 못한 것일까.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서 탁월한 역량을 보였던 그가 지난해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배한 것도 그 연장선 어딘가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무언가 자리를 노리는 정치인으로 묘사되는 것을 불편해 했다. 1월 13일 보스톤에 도착해 케네디스쿨에서 수업을 듣기 시작한 박 전장관은 벌써 학업에 흠뻑 빠져있다. 한국과 지표상 반대점에 가까운 먼 거리와 14시간의 시차로 떨어져 있는 이곳에서도 그의 학업은 정치적 비전을 새롭게 가다듬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케네디 스쿨에서 공부하고 싶은 것은 디지털 민주주의다. 과거부터 일관되게 주장해왔던 오픈프라이머리, 즉 국민경선제를 통해 디지털 시대에 맞는 탈 중앙화된 정당을 만들고자 한다. 이 비전을 위한 이론적, 실천적 해답을 찾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전 세계 각 분야의 리더들이 모이는 곳인 케네디스쿨은 박영선 전 장관을 시니어리서치펠로우(Senior Research Fellow)로 초청했다. 케네디스쿨은 2017년 첼시 매닝 논란 이후 펠로우 선발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케네디 스쿨이 한국의 중견 정치인을 시니어리서치펠로우로 초청하는 사례는 아주 드물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박진 외무부 장관 등은 하버드 케네디스쿨에서 대학원 과정을 수학했다. 60년만에 가장 추웠던 한파가 보스톤을 강타한 다음날인 2월 5일 케임브리지 찰스호텔에서 박 전 장관을 만났다. 박 전장관과 케네디스쿨, 언론인 생활, 중소벤처기업부, 한국의 정치, 보스톤에서의 삶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은 박 전장관과의 1문1답이다. ▶학업을 위해 보스톤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 언제 도착했고 보스톤 생활은 어떤가? 1월 13일 도착했다. 보스톤에는 몇번 와봐서 낯설지는 않은데 보스톤은 뉴욕 워싱턴과 다른 점이 있다. 옛 것들이 많이 보존되어 있어서 다른 느낌을 준다. 보스톤에서는 유학생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차가 없다. 지하철은 타봤고 버스를 아직 못 타봤다. ▶케네디 스쿨 학업을 결정하게 된 계기는? 케네디 스쿨의 애시센터에서 CSIS 수석 고문으로 있을 때 보스톤을 몇번 방문했었다. 그때 한번 만나자는 연락을 받았었는데 나중에 초청장이 왔다. 그래서 결정하게 됐다. ▶케네디 스쿨에서 시니어리서치펠로우십을 하는데 어떤 것을 공부하게 되는지? 디지털 데모크라시에 관련된 것을 좀더 들여다 보고 싶다. 그런데 그 과목이 많지 않다. 디지털 정부 과목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봄학기부터 들을 예정이다. 현재는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과 월남전에 관한 책을 써서 플리처 상을 수상한 프레드릭 로가발 교수의 “과거로부터의 추론”이란 과목을 듣고 있다. 수업이 너무 재밌고 인상에 남았다. 이것을 기록으로 남겨서 책으로 한번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페이스북에 연재하고 있다. 페북을 팔로우하면 제가 공부하는 것을 아실 수 있다. ▶ 트위터 팔로워가 약 347,000명에 달하는 인플루언서이다. 일론 머스크가 ‘언론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 하며 트위터를 인수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저는 돈과 명예와 자유(언론)가 한바구니에 들어있을 때는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다. 돈을 많이 번 사람이 언론을 소유하는 것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다. 한국도 언론재벌이란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영향력이 강한데, 그가 트위터를 인수한 것은 썩 잘한 일이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가 왜 트위터를 인수했는지 그 이유도 명확하지 않다. 비록 과거 트위터의 운영상에 문제가 있었기는 하지만 SNS도 디지털 시대의 언론인데 세계의 1, 2위의 부자가 언론을 소유하는 게 맞느냐 하는 것은 의문으로 남는다. ▶MBC에서 기자생활 후 정계에 입문했다. 이 같은 선택을 돌이켜 볼 때 지금이라면 같은 선택을 하겠는가? 기자는 원래 하고 싶었던 일이었다. 정치는 뭐랄까 우연히 다가온 일이었다. 기자로서의 삶, 정치인으로서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랐다. 기자로서의 삶은 항상 목표가 있었다. 정치인으로의 삶은 ‘오늘이 매일매일 마지막이다’라고 살았다. 장단점이 있었다. 매일매일 마지막이다라고 살다보니 흔히들 말하는 잔머리를 쓰지 않고 뭔가를 (곧게)이야기하고 재벌과 싸우고, 검찰 개혁 프로젝트를 하는 데는 도움이 됐다. 그런데 2011년, 2021년 두번처럼 서울시장을 갑자기 나가게 되었다든지 생각하지 않았던 기회가 주어졌을 때는 도움이 안됐다. 정치인이라는 타이틀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와 내가 살아왔던 정치인 박영선은 사실 속내가 상당히 다르다. 사람들은 정치인이라면 서울시장, 대통령을 하려고 한다는 가정을 한다. 그런데 저는 그런 생각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거기서 생기는 괴리를 메워나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재벌의 지배구조를 바꿔야겠다. 검찰을 개혁해야 겠다’ 하는 목표는 있었는데 ‘무엇이 되어야겠다’는 목표는 없다. 무엇이 되어야겠다는 의지, 즉 사람들은 권력욕이 약하다고 하면 지금도 믿지 않는다. 그게 힘들다. 다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하고 꼬리표를 달고 색칠한다. 그런 것이 어떨 때는 참 힘들었다. ▶언론인으로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일은 무엇인가? 서울 모스크바 위성 생방송, 한소 수교전에 모스크바에 들어가서 한달동안 MBC 탑뉴스에서 10분동안 매일매일 소련의 붕괴과정과 글라스노스트, 페테스트로이카, 고르바초프의 그 현장을 전했던 그 때는 지금 생각해도 짜릿하다. 서울 평양 위성 생방송 첫번째 앵커, 역사에 남는 한소 수교전에 중국을 들어간 첫번째 기자. 러시아 수교 전에 정식 비자를 받아서 들어간 첫번째 기자. LA 특파원시절 쿠바도 정식 비자를 받아서 들어간 첫번째 기자였다. 기자로서는 너무도 많은 행운을 누렸었다.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재직했을 때 작은 것을 연결하는 강한 힘 등 귀에 박히는 구호와 탁월한 행정력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서 잘했던 일은 또 아쉬운 점은? 스마트 폰을 만든 스티브 잡스가 점을 선으로 만들어라 했는데 제가 딱 그런 케이스다. 제 인생이 점이 선이 되고, 선이 면이 되는 그런 것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경험했다. MBC에 경제부 기자로 우리나라 실물경제와 거시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배웠다. 95년도 LA특파원으로 왔을 때 미국사람들이 준 명함에서 이메일 어드레스를 처음 보게 됐다. 그때부터 IT에 관심을 갖게 되고 실리콘 벨리에 눈을 뜨기 시작해서 엔젤투자, 벤처캐피탈, 실리콘벨리의 탄생을 집중 취재했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사람들은 주로 제조분야로만 생각하는데 절반이 금융이다. 경제부 기자 시절 증권, 보험 사민금융 등을 취재를 해서 제 2금융권에 강한 사람이었는데 중소 벤처기업부가 그 제 2금융권을 잘 다뤄야 하는 부서였다. 이처럼 제 삶을 통해서 경험했던 모든 것들이 중소벤처기업부에 다 모여 있었다. 그래서 너무 재미있게 일했었다. 장관이 되고 처음 생각한 캐치프레이즈가 ‘작은 것을 연결하는 강한 힘’ 그것이 1년차 캐치프레이즈였다. 두번째 캐치프레이즈가 디지털 경제로의 대 전환, 문재인 정부에서 디지털 경제로 대전환을 할 수 있는 인프라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그때 디지털 경제로 대전환이란 캐치프레이즈 속에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을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꿔주었던 것을 굉장히 잘했던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때 하지 않았다면 코로나 3년 동안 굉장히 힘들었을 것이다. 좀 아쉬운 것은 서울시장 선거를 안나가고 중소 벤처기업부 장관을 끝까지 하려 노력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사법적 압박이 심해지고 있다. 박영선 전장관께서 이재명 대표에게 사법리스크와 민주당의 미래를 두고 따로 분리해서 움직였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당연한 지적이란 반응도 있는가 하면 핵심 지지층에서는 ‘내부총질’이란 시각이 있는데? 제가 의도를 갖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11월 17일 ‘디지털 대전환의 오늘과 내일’이란 주제로 서강대 강연을 했는데 정치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온라인으로 참석한 정치부 기자들이 제가 디지털과 관련돼서 한 얘기를 지금의 민주당의 상황과 빗대어서 기사를 쓰기 시작하면서 시작됐다. 그때 기자들의 전화도 많이 오고 방송 출연 요청도 많았는데 거부하지 않은 것은 누군가 한 사람은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고 저는 미국 케네디 스쿨로 올 상황이었기에 욕을 듣더라도 하는 게 낫겠다 생각했다. 저는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제가 이야기해서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이재명 대표의 메시지가 요즘 많이 좋아졌다. 과거에 비해 올해에 하는 메시지가 귀에 꽂힌다. 예를 들어 “내가 대선에 패했으므로 검찰이 오라니까 간다”라든지, 집회에서 “나를 짓밟아도 민생은 짓밟지 말라”라는 메시지가 조금씩 궤도에 오른 것 같다. 제가 그렇게 이야기한 것이 조금 도움이 됐겠거니 하고 위안을 삼고 있다. ▶ 이재명 대표에 대한 대장동 사건 수사를 정치 보복이라 생각하는지? 일부 그런 부분이 좀 있다. 검찰도 너무 서둘렀고 쉽게 생각해 전략에 차질이 생겼다. 검찰이 더 건조하고 냉정하게 다가갔으면 이재명 대표가 더 힘들어 졌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보면 약간 버벅거린다는 느낌이 든다. 예를 들면 쌍방울 같은 경우에도 변호사비 대납 쪽으로 사건을 흘리다가 갑자기 대북송금 쪽으로 턴을 한다던가 대장동 같은 것도 현재로서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같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검찰도 브레이크 없는 벤츠처럼 달리다 발부리에 치인 느낌이다. 대장동 사건의 전체적인 개요를 보자. 우리나라 지자체 장들이 자기 지자체를 위해서 기부를 받으면서 도움을 주는 행위, 이런 것들을 대체적으로 많이 한다. 그 도를 어느 정도까지 넘느냐의 문제인 거다. 칼로 무 베듯이 딱 잘라 정리하기 쉽지 않은 사건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 보복성으로 비춰질 가능성이 많다라고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A라는 사람이 B라는 사람에게 돈을 줬는데 그 증거를 확실하게 찾았다든가 이러면 꼼짝없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상황자체는 이재명 대표에게 돈을 줬다는 증거나 연결고리는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제3자 뇌물죄 배임이라든지 포괄적인 그런 범죄에 그물을 쳐가지고 가는 느낌, 이렇게 되면 검찰수사가 정의를 위한다기 보다는 한쪽 편에 섰다라는 인상을 주기가 쉽다. ▶검찰 개혁은 문재인 정부의 5년동안 계속 된 주제였다. 그것이 지금의 상황을 자초했다는 느낌도 있다. 검찰 개혁이 그렇게 어려운 것인지? 문재인 정부 때 악셀레이터를 너무 세게 밟았다. 마치 5년안에 검찰개혁을 못하면 다시는 못할 것처럼 하다 그렇게 됐다. 개혁은 단계적으로 가야 한다. 무리하다 보면 반드시 역풍이 따른다. 세상의 일이 정반합으로 가는 것이 순리지 않나. 검수완박이란 단어는 실수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검찰이 수사권을 경찰에게 주는 과정에 있어서 제가 법사위 간사를 했을 때는 경찰에게 수사개시권을 주는 데까지 갔었다. 그리고 나서 단계적으로 조금씩, 조금씩 경찰이 수사권을 가지고 가는데 한 10년 걸렸다. 문재인 정부에서 너무 성급했기에 역풍이 불어서 정권이 넘어간 것이다. 그 때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적절하게 10년 정도 계획을 세워서 다음 정권에게 할 일을 조금 남겨 놨으면 정권은 넘어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 이른 것 같지만 내년 총선에 대한 예상은? 내년 총선은 몇 달 더 지켜봐야 한다. 국민의 힘 전당대회가 어떻게 끝날지 관전 포인트다. 전당대회를 보면 마치 우리나라가 왕정시대로 돌아간 것 같다. 코메디다. 대한민국 정치가 한단계만 업그레이드 되면 우리나라가 G5로 도약할 것이다. 공천권과 관련해서는 미국처럼 오픈 프라이머리 제도를 도입하지 않으면 정치는 계속 낙후될 수 밖에 없다. 당대표가 공천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대통령이 공천권을 갖나. 이럴 때 민주당이 우리는 오픈프라이머리를 하겠다고 선언해 버리면 민주당의 인기가 엄청 올라갈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것을 이재명 대표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왜 그리 힘들다고 생각하는지? 법안도 발의했는데 권력을 내려놓지 못해서다. 권력을 쥐면 그 권력이 영원히 갈 것 같을 것이다. 그러나 화무십일홍이다. 꽃이 열흘을 넘기지 못하듯 권력도 마찬가지다. 권력에 취하면 아무 것도 안보이는 것 같다. 미국이 여러가지로 문제가 있지만 그래도 양당제를 유지하면서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 오픈프라이머리제도라고 생각한다. 미국에는 당대표가 없다. 전국 위원회란 곳에서 당원을 받고 의장은 중간에 모더레이터이지 권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이 힘이 지금 미국을 지탱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정치인이 되는 과정이 투명하다. 한국은 정치인이 되는 과정이 잘 보이지 않는다. 많은 젊은이들이 정치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헤맨다. 저 역시 정치인이 되는 과정과 관련해서 하늘에서 감이 떨어졌다고 해야 할 정도다. ▶오픈 프라이머리가 한국에서 정착되기까지는 난제라고 생각하는지? 누군가 한 사람이 그냥 마음을 비우면 된다. 노무현 대통령이 추앙받는 이유 중의 하나가 대통령을 하면서 당정분리를 실제로 실현했고 공천에 개입하지 않았다. 그렇게 정치개혁을 이뤘다. 열린 우리당이 처음으로 경선제도를 도입해서 공천을 했다. 그래서 절반의 개혁을 이뤘는데 앞으로 민주당에서 노대통령이 이루지 못한 나머지 절반의 개혁을 이루는 사람이 차기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 민주당의 미래 비전으로 디지털 대전환이란 키워드를 내놓았는데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지? 좀더 쉽게 설명해달라. 백년 전에 마차에서 자동차로 바뀌던 시절, 미국이 그 변화의 수혜자였다. 인터넷 발달 이후 디지털 시대로 바뀌어 가는데 인터넷이 미국에서 개발되고 발전됐지만 최대 수혜자는 한국이다. 한국이 이로 인해서 선진국이 된 거고 국민소득 3만불이 넘어간 거다. 그런데 정치는 아직도 마차를 타고 다니고 있다. 정치분야만 디지털 대전환에 합류하면 한국이 G5 간다. 디지털 대전환의 핵심이 오픈 프라이머리를 도입하는 것이고 정치를 투명하게 만드는 것이다. 제가 만약에 정치를 한다면 디지털 정당을 만들어서 다오 정당을 만드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정치인으로서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다오정당이라 함은 로마공화정처럼 디지털,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정책을 결정하거나 공천을 할 때 모든 사람이 의사표현이 가능 하도록 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양극단의 의견이 주로 반영되면 결국 정치도 파멸하게 된다. 중도의 목소리를 담을 수 있는 정당- 최근 양극단의 정치에 혐오를 느끼고 있어서 다오정당이 출현할 사회적 여건이 조성되어 가고 있다고 본다. 아니면, 민주당이 선제적으로 디지털 다오정당으로 변모한다면 총선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본다. ▶윤석열 정부는 아직도 지지율 40%대를 못 넘고 있다. 윤석열 정부에 대한 평가는? 지지율이 모든 것을 말하지 않을까. ▶윤석열 정부의 지지율이 낮은 것은 윤석열 정부가 지지층을 의식하지 않고 마음껏 정책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거기에 동의한다. 윤석열 대통령 같은 경우는 지금까지 (선례가)없었다. 단 6개월만에 대통령이 됐다. 단점일 수도 있지만 남에게 빚진 것이 없는 사람이다. 그 때문에 윤석열 대통령은 모든 것을 개혁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이 그것을 해야 한다. 만약 참된 개혁을 한다면 지지율이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존경하는 정치인이 있는가? 그 이유는? 존 에프 케네디다. 이 사람은 미국인들의 가슴에 살아있다. 그 당시 우주시대란 말을 하면서 달 탐사 계획을 발표했다. 그때 지구에서의 갈등과 분쟁을 넘어서 왜 우리가 우주탐사를 시작해야 하는지에 대한 케네디 연설은 감동적이다. 그것이 미국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미국인들에게 비전을 제시한 것이다. 정치인이 비전 제시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두번째 쿠바위기를 극복할 때 케네디대통령이 보여준 전쟁을 피하면서도 ‘쿠바해상봉쇄’라는 절묘한 중도적 결단력은 배울만 하다고 생각한다. 결단력이라는 것이 정확한 정보와 현실론 그리고 상대에 대한 역지사지를 잘 생각해 반영되면 반드시 강성논자들의 논리대로 하지 않아도 성립된다는 것을 보여준 좋은 사례다. ▶ 박 전 장관에게 정치란 무엇인가? 정치는 역시 어려운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고 얘기를 들어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게 정치의 기본인 것 같다. 어려움에 처하지 않은 사람들은(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달리) 자기들이 알아서 한다. ▶추천하고 싶은 감명 깊은 책 3권? 미국사람이 쓴 책 중에 브레튼우즈 전투(The Battle of Bretton Woods), Benn Steil이란 사람이 썼다. 결론부분만 다섯번 정도 읽었다. 핵심은 달러가 어떻게 기축통화가 됐는지에 대해 쓴 것이다. 이것을 읽으면 암호화폐와 디지털 화폐의 미래가 보인다. 늘 좋아하는 피천득의 수필집 인연 그리고 패러다임이란 단어를 처음 쓴 토마스 쿤의 ‘과학 혁명의 구조’다. 과학을 전공하지 않았으면서 과학을 잘 이해하느냐고 질문을 하는데 이 책 덕분이다. ▶정치를 하면서 수많은 고비를 넘기고, 외로울 때도 많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 어려움을 뚫고 지금의 박영선 전 장관을 만들게 한 삶의 철학은? 용기가 세상을 바꾼다. 기자로서 사회부조리로 힘든 사람들의 가슴을 풀게 해줬다면 정치인으로 했던 재벌개혁 검찰 개혁을 이룬 것도 용기였다. 정치인으로서 하버드 케네디 스쿨을 오게 한 것도 제게는 용기다. 사람들이 이 시기에 왜 미국을 가느냐 말렸다. 이 기회 즉 케네디스쿨에서의 시간이 저에게 새로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방전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여기 온지 한달되었지만 그 사이에도 많이 새로운 것을 얻었다. ▶가장 좋은 습관은? 아침에 일찍 일어난다. 5시 또는 5시 반 경에 일어나 한 두시간 안에 그날 해야 할 일을 다 한다. 아침을 먹고, 나머지 시간에는 하고 싶은 일을 한다.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의견목록 [의견수 : 2] |
행인 | |
한국정치를 옳바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는것이 희망적이네요 미국 살면서 한국을 바라보면 정말 한심한 국회의원들 모습에 한숨이 나오는데 맞습니다 이재명이 부터 내려오고 윤석열은 좀더 힘있게 국민을 위해 정치를 해야지요 박영선님의 말씀에 공감합니다,자격미달인 민주당의원들 모두 물갈이가 시급합니다 | |
IP : 71.xxx.106.218 | |
lexy2007 | |
표독스런 얼굴로 입에 게거품을 물고 ( 내로남불의 논리로써 ) 타정당 의원들을 ( 막가파식으로 ) 몰아부치는 걸 능사로 삼는 이런 분들이 사라져야 한국정치가 발전하지 않을까요? 옛날 앵커시절에는 여러 면에서 매력이 풍부한 여성으로 보였습니다만, 의원으로서의 본 실체를 ( 인간 됨됨이를 ) 알고 난 이후론 아예 보고 싶지 않은 여성입니다. 미소 속에 감춰진 본연의 사납고 표독스런 실체는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칩니다. | |
IP : 72.xxx.238.20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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