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리드전 신호탄"…가스관 폭파로 러·서방 대치 새 국면
유럽의 우크라 지지 약화 위해 취약한 기반시설 노려
이번에도 중대사건 두고 러-서방 '네 탓' 진실공방 반복
안보리 30일 긴급회의…현장조사 착수에 1∼2주 걸릴 듯
보스톤코리아  2022-09-28, 23:41:31 
(서울=연합뉴스) 현윤경 기자 = 발트해 해저를 지나는 노르트스트림 가스관 누출 사고로 러시아와 서방의 대치가 하이브리드전 양상을 띠는 새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지난 26∼27일(현지시간) 러시아와 유럽을 잇는 노르트스트림-1과 노르트스트림-2 가스관에서 발생한 누출 사고를 놓고 국제 사회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8개월째로 접어든 우크라이나 전쟁의 양상이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크라이나전을 둘러싼 서방과 러시아의 대리전에서 서방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해 전장의 승리를 간접 지원하고 러시아에 제재를 단행해 경제적 압박을 가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러시아는 서방의 전장 직접 개입을 핵 위협을 통해 차단하고 유럽행 천연가스 공급을 조절하는 등 에너지 무기화를 통해 서방에 고통을 주는 방식으로 이에 맞서왔다.

그러나 최근 우크라이나가 영토 탈환전의 속도를 높이는 상황에서 수세에 몰린 러시아가 전장 밖 반격 수위를 높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런 맥락에서 이번 사태는 러시아가 다양한 공격 방식을 혼합한 하이브리드전으로 공세를 강화하는 신호탄일 수 있다는 분석이 유럽을 중심으로 제기된다.


◇ "가스관 폭파로 하이브리드전 시작됐다"

외신에 따르면 에드가스 링케박스 라트비아 외무장관은 28일 "하이브리드 전쟁이라는 새 국면이 시작됐다"고 이번 사건의 의미를 규정했다.

로베르트 하벡 독일 경제장관도 "에너지 공급을 포함해 유럽과 독일의 중대 기간기설이 잠재적인 목표물이 됐다"며 상황의 심각성을 우려했다.

독일 중도우파 기민당(CDU) 소속의 로더리히 키제베터 의원은 이번 일을 러시아의 소행으로 단정지으며 "군사적인 수단이 아닌, 사회적·외교적인 수단을 통해 유럽연합을 분열시키려 하는 러시아의 하이브리드 전법의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낸시 패저 독일 내무장관도 "종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시나리오에 대응이 필요하다"며 이번 가스관 누출 사고를 계기로 정부는 가용 자원과 권한을 동원해 에너지 안보에 대한 전례 없는 위협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이브리드 전쟁(hybrid warfare)은 기존 군사력뿐만 아니라 공작이나 정보전 등을 비롯한 다양한 정치적 수단을 함께 활용한 전쟁 방식을 말한다.

무력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것을 넘어 군사력의 사용을 줄여 공격 주체의 노출을 최소화하고 의도도 숨기면서 상대방에 타격을 가하는 방식이다.

여기에는 이번 사태와 같은기간시설 파괴뿐만 아니라 주요 기관에 대한 사이버 공격, 가짜뉴스 유포를 통한 선전전과 불안감을 조성 등이 포함된다.


◇ "당신네 소행" 서로 삿대질…사태경위는 아직 안갯속

덴마크와 스웨덴의 배타적경제수역(EEZ) 내 해저를 지나는 노르트스트림-1과 노스트스트림-2에서 최근 폭발로 인한 것으로 추정되는 3건의 가스 누출 사고가 발생하자 서방과 러시아는 사고 주체를 놓고 공방을 벌이고 있다.

당사국인 덴마크와 스웨덴을 포함해 독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등 서방은 이번 일이 유럽의 에너지 안보를 해치고, 가스값 인상으로 인한 반사 이익을 노리는 러시아의 사보타주(파괴공작)라고 의심하고 있다.

누출 직전 해당 해역에서 폭발로 추정되는 대량의 에너지 방출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되는 가운데, 가스누출이 발생한 세 지점 간 거리가 멀고, 가스누출량이 막대할 뿐 아니라 가스관의 기압이 떨어지는 속도가 빨랐다는 점에서 서방은 고의 폭파설에 힘을 싣고 있다.

러시아가 잠수부를 투입하거나 무인 폭파장치 등을 투입해 해저 가스관에 폭발물을 설치했을 수 있다는 것이 서방의 추정이다.


◇ 서방, 러 '추가 파괴공작' 우려해 대비태세 강화

서방 관련국들은 이런 가운데 러시아가 언제라도 잠수함 등을 동원해 주요 기간시설을 공격할 수 있다고 보고 해저 시설에 대한 경계 강화에 착수했다.

노르트스트림 가스관의 종착지인 독일은 위기대책위원회를 꾸려 대응 방안 논의에 들어가는 동시에 북해와 동해 연안 지역에 대한 연방경찰의 영해 감시도 강화했다.

러시아에의 천연가스 의존을 줄이고 수입선을 다변화할 목적으로 현재 건설 중인 액화천연가스(LNG) 터미널과 수중통신케이블의 안전도 우려 대상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의 주요 천연가스 공급자로 올라선 노르웨이 역시 해상 유전과 가스전에 해군을 배치하고, 지상 시설에는 경찰 투입을 검토하는 등 보안강화에 나섰다.

노르웨이에서는 이번 가스관 누출 사고에 앞서 자국 석유·가스시설 인근에서 정체불명의 무인기가 목격되기도 한 것으로 전해져 바짝 긴장하고 있다.

노르웨이에는 약 90개의 석유·가스 시설이 있고 이들은 9천㎞에 달하는 가스관으로 연결돼 있다. 자칫 이 가스관에 문제가 생겨 유럽으로의 에너지 수출이 차질을 빚으면 유럽에 큰 에너지 위기가 닥칠 수 있는 상황이다.


◇ 안보리 긴급회의 소집…논의 헛바퀴 돌 가능성 다분

러시아는 자신들이 가스관을 일부러 파괴했다는 서방의 주장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이번 일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다룰 것을 요구했다.

러시아는 자신들 역시 이번 사고로 가스 공급로를 잃었고 가스관이 잠기면 미국 에너지 기업이 반사이익을 얻는다는 이유를 들며 미국을 배후로 지목하는 듯한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양측의 공방 속에 유엔은 30일 안보리를 소집해 이번 가스관 누출 사건에 대해 논의하기로 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주요 사건을 둘러싼 공방이 늘 그래왔듯 이번에도 논의가 사실관계조차 정리되지 않은 채 공회전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가스 누출이 발생한 해역이나 시설에 대한 조사는 거의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다.

누출 사고가 난 가스관이 해저 약 80m 지점에 있어 조사가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덴마크는 현 시점에서 1∼2주가 지나야 사고 해역의 상황이 안정돼 조사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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