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
화랑세기花郞世紀, 24세 풍월주風月主 천광공天光公(12) |
보스톤코리아 2022-06-13, 11:59:33 |
김우징이 민애왕을 살해하고 제45대 신무왕으로 즉위하여 181일만 사망하자, 차기 왕위는 우징의 장남 김경응金慶膺에게로 이어졌다. 그가 제46대 문성왕이다(839년). 문성왕은 857년까지 비교적 장기간 왕위에 있었지만, 그가 재위한 동안에도 많은 반란들이 있었다. 841년에는 홍필弘弼이 반란을 일으켰다. 홍필의 관위는 고작 7등급 일길찬이었다. 그리고 청해진에서 장보고가 반란을 일으켰다. 문성왕은 아버지(신무왕)와 장보고의 약속에 따라 845년 장보고의 딸을 차비次妃로 맞이하려고 했지만, 중앙 귀족세력들은 장보고의 득세를 두려워하여 반대하였다. 혼인은 성사되지 않았고, 846년 장보고는 청해진에서 반란을 일으켰다(장보고는 왕이 보낸 장군 염장閻長에 의해 암살되었다). 또, 847년에는 김양순(이찬 - 2등급)과 흥종(파진찬 - 4등급)의 반란이 있었고, 849년에도 김식과 대흔이 반란을 일으켰다. 김식과 대흔은 모두 이찬의 관위에 있던 귀족들이었다. 문성왕은 소명왕후와 낳은 아들이 있어서 태자로 책봉했지만, 그는 852년에 죽었다. 그러자 문성왕은 숙부인 김의정을 양자로 삼아 차기 왕위를 이었다. 그가 제47대 헌안왕이다.385) 문성왕은 또 다른 아들이 있었다. 그가 김안金安인데, 왕비 흔명부인과 낳은 아들이다. 문성왕은 무슨 연유로 왕위를 김안에게로 잇지않고 숙부인 김의정에게 넘겼을까? 기록이 없어서 알 수는 없는데, 혹시 정변이 있었을까? 어쨌든 김안은 상대등도 역임하였고, 그의 증손자 김효종은 화랑의 풍월주/국선을 역임하였다. 그리고 효종의 아들 김부가 신라의 마지막 왕인 제56대 경순왕이다. 헌안왕 김의정 역시 왕위에 오래 있지 못했다. 857년에 즉위하여 만 4년도 되지 않은 861년 정월에 병사하였는데, 그에게는 아들이 없었다. 그래서 차기 왕위는 사위인 김응렴金膺廉에게로 이어졌다. 그가 제 48대 경문왕이다. 헌왕왕은 김응렴을 총애하여 자신의 두 딸을 그와 혼인시켰다. 장녀가 문의왕후이고, 차녀가 후비 정화부인이다. 경문왕 김응렴의 가계를 살펴보면 그 역시 원성왕의 후손으로, 원성왕의 삼남 김예영의 고손자이다. 김응렴의 아버지 김계명은 희강왕(김제륭)의 아들인데, 희강왕은 측근 신하 김명이 반란을 일으켰을때 목을 매어 자살하였고(838년), 어린 김계명은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다. 희강왕의 아버지는 김헌정이고, 헌정의 아버지가 김예영이다. 또한 신라에서는 골품을 유지하기 위하여 원수의 자녀들이 서로 혼인하기도 하였다. 그 일례로 김응렴(경문왕)의 부모 김계명과 광화부인이 그들이다. 응렴의 조부가 김제륭(희강왕)이다. 그는 제42대 흥덕왕이 후사 없이 죽자, 숙부인 김균정과 왕위쟁탈전을 하는 과정에서 균정을 살해하였다. 하지만 희강왕의 아들 김계명과 신무왕 김우징의 딸 광화(김균정의 손녀)가 혼인하였다. 그들은 6촌간이다. 그리고 김응렴이 태어나서 헌안왕의 사위가 되었다(헌안왕의 아버지는 김균정이다). 즉 헌안왕의 두 딸이 7촌 조카인 김응렴에게 시집가서 왕비가 되었다. 헌안왕은 왕위를 이을 아들이 없자 두 딸을 김응렴에게 혼인시켜서 그로 하여금 왕위를 잇게했다. 그가 제48대 경문왕이다. 문의왕후는 헌안왕의 장녀이고, 후비 정화부인은 차녀이다. 과거 선덕여왕과 진덕여왕의 전례가 있어서 일부 귀족들이 장녀 문의에게로 왕위를 잇자고 했지만, 헌안왕은 왕족 중에서 출중한 인물을 골라 후계자를 정하려고 모든 귀족들을 모이게 하였다(860년, 임해전). 이때 헌안왕은 화랑의 수장인 국선 김응렴을 사위로 삼아 왕위를 물려 주기로 하며, “딸이 2명 있는데 큰 딸은 20살이고 작은 딸은 19살이다. 그대가 마음에 드는 딸과 결혼하라” 고 하였다. 즉답을 하지 못한 응렴은 집으로 돌아가 부모들에게 말하니, “큰 공주는 못생겼다는 소문이 있는데 작은 공주가 더 낫지 않겠느냐?” 라는 대답을 들게 되었다. 더욱 마음의 결정을 못하다가 흥륜사의 승려를 찾아가서 고민을 말했다. 그러자 스님은 “언니에게 장가를 들면 3가지 이익이 있을 것이고, 동생에게 장가를 들면 3가지 손해가 있을 것이오” 라고 말해주었다.386) 그래도 결정을 하지 못했던 김응렴은 헌안왕에게 가서 왕명을 따르겠다고 말했다. 왕은 첫째 딸을 김응렴과 혼인시켜, 응렴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그가 제48대 경문왕이다. 그래서 그는 흥륜사의 스님/또는 화랑의 수장이 말한 3가지 이익을 모두 다 챙겼다. 그것은 왕과 왕비의 뜻에 따랐기에 그들의 사랑을 받았고, 그로 인하여 왕이 되었으며, 마침내 처음부터 마음에 두었던 둘째 딸도 후비로 맞을 수 있었다. 385) 김의정(제47대 헌안왕)은 김경응(제 46대 문성왕)의 아버지 김우징(제45대 신무왕)의 이복 동생이다. 즉 김경응의 할아버지 김균정이 정교부인 박씨와 김우징을 낳았고, 조명부인과는 김의정을 낳았다. 김균정은 조카 김제륭과 왕위쟁탈전에서 살해되었지만 자신의 아들 둘과 손자는 왕위에 올랐다. 또한 궁예가 헌안왕의 아들이라고 하는데 경문왕의 아들이라는 설도 있어서 불분명하다.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 김부 또한 김균정의 후손이다. 386) 삼국사기에는 흥륜사의 승려로 기록되어 있지만, 삼국유사에는 화랑도의 우두머리인 범교사가 말해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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