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
화랑세기花郞世紀, 23세 풍월주風月主 군관공軍官公(2) |
보스톤코리아 2022-01-31, 11:21:40 |
김양도는 22세 풍월주로 취임한 후 부제를 선임하는 과정에서 상선(전임 풍월주)들의 의견을 전혀 수용하지 않으면서 많은 마찰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김윤장과 김군관을 놓고 저울질을 하다가 사사로운 정에 얽메여 나이도 어리고 경박한 윤장을 부제로 발탁하였다. 윤장은 17세 풍월주를 지낸 김염장의 차남인데, 장남 하장과는 달리 색色과 재물을 탐하며 사리판단에도 어두워 무고한 낭도들에게 죄와 허물을 씌우면서 원성을 쌓아가고 있었다. 동시에 양도는 윤장의 누이 춘화를 윤장의 도움을 얻어 애첩으로 삼으면서 김군관과 함께 삼생을 나누기로 한 약속마저 잠시 잊고 있었다. 이에 이미 사태를 파악한 군관은 부제의 자리를 윤장에게 양보하고 물러 앉았다. 윤장이 김양도의 부제로 발탁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김염장은 역량이 부족하고 허물만 있는 그를 죄를 줘야지 부제의 자리는 가당치도 않다면서 그를 파면하였다. 물론 부제의 임면권은 풍월주인 양도가 가지고 있었지만, 상선이며 평소 염부廉父라고 호칭하였던 친부격이라 김염장의 결정을 받아드렸다(김양도의 어머니 양명공주가 김염장과 사통하여 아들 장명을 두었다. 그래서 양도는 평소 그를 아버지격으로 대했다). 그리고 나서 결국 양도는 모든 상선들을 흡족시키지는 못했지만 부제로 이종동생인 김군관을 선택하였다. 김양도가 22세 풍월주에 올랐을 무렵인 637년에도 화랑도 내부에는 진골정통과 대원신통과 가야파 등의 3대 분파를 중심으로 한 많은 의견들이 다양하게 펼쳐졌다. 심지어 이 때는 부제의 자리를 놓고 여러명이 다투었다. 윤장과 군관이 양도의 부제로 임명될 당시, 그들 외에도 문충文忠, 선제善祭, 천진天眞과 하장夏長 등이 그들이다. 이중 하장은 김염장의 장남이지만 그 외의 화랑들은 부모나 인통姻統의 기록이 없다. 다만 그들도 김군관 못지않은 인통들이라 사료된다. 양도의 부제로 잠시 발탁되었던 윤장의 기록이 화랑세기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그 때 윤장閏長 또한 양도공의 사랑하는 아우로서 군관공과 나란히 경쟁했는데, 공은 스스로 그 세를 당할 수 없는 것을 알고 일마다 윤장에게 양보했다. 윤장은 공과 같은 나이인데 한 달 먼저 태어났으므로 공은 형으로 섬겼다. 윤장은 색을 좋아했고 재물을 탐했으며 종녀宗女나 유화를 많이 범한 까닭에 여자의 사사로운 말을 듣고 죄 없는 사람에게 허물을 씌웠다. 소문이 구중九重에 퍼졌다. 염장공이 그것 때문에 대죄待罪토록 했다. 양도공이 이에 공을 이끌어 부제로 삼고 보량寶良과 더불어 낭정을 함께 다스리도록 명했다. 공은 일을 신중히 처리했고 한결같이 양도공의 마음씨 쓰는 법을 따랐다.] 원문에는 “성문구중聲聞九重” 으로 기록되어 있는 윤장이 저지른 비행의 소문이 궁중宮中과 선문仙門(화랑도들이 심신을 수련하는 특정 장소/구역 등)에 모두 다 퍼졌다고 해석할 수 있겠다. 그래서 윤장을 해임하고 김군관을 부제로 임명한 후 화주花主(풍월주의 처) 보량과 함께 화랑도를 다스리도록 했다. 그런데 가야파의 우두머리이자 낭두의 최고위급인 대노두 찰인의 막내 아들 찰의라는 인물이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풍월주 김양도의 총애를 믿고 낭정을 전횡하면서 화주인 보량과 사통하여 많은 화랑들의 미움을 샀다. 하지만 남편인 김양도는 자신이 다른 낭두들의 처들과 자녀 만들기에 여념이 없어서인지 그들의 사통을 금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의 사통은 김군관이 23세 풍월주의 위에 오른 후에도 계속되었다. 그들의 사통과 낭정의 전횡을 용인하지 못한 김군관은 찰의를 죽이려고 검을 뽑았다. 결국 보량의 만류로 찰의는 목숨은 건졌지만 낭정에서는 물러났다. 그리고 그들의 사통 소문은 당시 왕이었던 선덕여왕의 귀에도 들어갔다. 아래 인용문에는 그냥 내통內通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22세 풍월주 양도공조에는 “폐신 찰의가 위로 보량을 범하는데도 금하지 않았다, 嬖臣察儀上犯寶良而不之禁” 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 때 양도공의 폐신인 찰의가 미모로 아양을 잘 떨어 보량과 내통하고 전횡을 많이 했다. 공이 검을 뽑아 참하려 하자 찰의가 낭하에 달려들어가 나오지 못했다. 보량이 말하기를 “이 병아리를 죽이면 누累가 우리 부부에게 미칠까 걱정이다” 했다. 이 때부터 찰의는 감히 다시 낭정에 대하여 말하지 못했다. 그 때 사람들이 통쾌하게 여겼다.] 김군관은 주색을 좋아하지 않아 그의 사생활은 늘 깨끗했다. 한편 어느날 궁중 연회에서 선덕여왕이 보량에게 “듣건대 너의 폐아嬖兒가 아름답다고 하는데 그 아름다움이 과연 어떠한가?” 하며 찰의에 관하여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러자 보량은 사신私臣 한 명을 데리고 선덕여왕에게로 갔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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