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
화랑세기花郞世紀, 22세 풍월주風月主 양도공良圖公(15) |
보스톤코리아 2021-12-13, 13:14:03 |
637년 풍월주에 취임했던 김양도는 4여년간 재임하면서 과감한 개혁을 통하여 많은 분야의 낭정을 바로 세웠다. 그러나 호불호가 너무나 선명했던 그의 성격은 휘하의 많은 낭도들을 불안하게 하였고, 때로는 강한 카리스마로 상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특히 인사에 있어서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였다. 그래서 640년 차기 23세 풍월주의 자리를 상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부제였던 김군관에게로 물려주었다. 김군관은 용맹한 화랑으로 어려서부터 병서 읽기를 좋아했고, 자질이 뛰어난 소년이란 칭찬과 함께 후일 큰 인물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받으며 성장하였다. 그는 김춘추와 김유신을 보좌하며 백제와 고구려와의 수 많은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특히 664년 한산주 도독으로 재임할 때는 고구려를 대적하는 최일선에서 첨병부대 역할을 다하며 국경을 철벽같이 방어함과 동시에 고구려 군사들의 전세를 약화시켰다. 그리고 668년에는 한성주행군총관으로 평양성 함락에 성공하여 고구려를 멸망시켰으며 그 전공으로 그는 이찬(2등급)에 올랐다. 김군관의 나이 만 68세였던 680년, 그는 드디어 상대등에 오르며 병부령도 겸직하였다. 그러나 681년(신문왕 1년) 신문왕의 장인인 김흠돌이 주동한 ‘흠돌의 난’ 이 일어났고, 이를 보고하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자결을 명받고 죽었다. 다시 역사의 시간을 637년으로 돌린다. 김양도는 그해 풍월주에 올랐으며 당시 선문에는 출중한 화랑들이 많이 있었다. 김군관金軍官을 비롯하여 문충文忠, 선제善祭, 천진天眞, 하장夏長 등 누구나 풍월주가 되기에도 손색이 없는 화랑들이 즐비하게 있었다. 그러나 김양도는 부제로 뜻밖의 인물인 윤장閏長을 임명하였다. 17세 풍월주를 지낸 김염장의 정처는 하희(하종의 딸)였다. 그들 사이에서 아들 하장, 윤장, 춘장이 있었고 또한 딸 춘화도 있었다. 그런데 춘화가 김양도의 애첩이었기에 당시 나이도 어리고 경박하기 이를데없는 윤장을 부제로 발탁하였다. 그러자 화랑이 되기에도 자질이 부족했던 윤장은 부제의 위에 오르자말자 그 위력位力을 남용하며 목불인견의 행태를 자행하였고 심지어 범법행위도 서슴치 않았다. 이에 아버지인 김염장이 윤장을 파직하였다. 그리고 상선들 사이에서는 새로운 부제로 문충, 선제, 천진, 하장 등을 추천하였다. 하지만 김양도는 이번에도 상선들의 의견이나 추천과는 상관없이 김군관을 부제로 임명하였다. 상선들이 반대하였다. 김양도는 굽히지 않았다. 여기에도 역시 김양도의 사사로운 정情이 개입되어 있었다. 김군관의 누나 명란明蘭이 김양도에게 마음을 빼앗겨 그들은 사통을 했다. 그런데 양도는 이미 보량과 혼인을 하기로 어머니 양명공주에 의해 정해져 있었다. 그래서 명란은 마음에도 없는 장명(김염장과 양명공주 사이에서 태어났다)과 혼인을 했다. 그 후로도 양도와 명란의 사통은 이어졌다. 22세 풍월주 양도와 23세 풍월주가 되는 군관과의 혈연관계는 이종사촌간이다. 그들의 모계를 보면, 진흥왕의 어머니인 지소태후에게는 구진이라는 침신이 있었다. 그들 사이에서 보명공주가 태어났다. 보명은 진흥왕의 후궁이 되었다. 하지만 당시 진흥왕은 재색이 넘치는 미실에게 푹빠져 보명궁은 찾지 않았다. 그 사이 진흥왕의 장자 동륜태자가 보명의 치맛폭을 풀려고 보명궁을 월담하였다. 담에서 뛰어내리는 순간 밑에서 기다리고 있던 개에게 물려서 죽었다. 동륜은 그만 어색漁色에 눈이 멀어 아버지의 후궁까지 넘보다가 용상을 날려버린 불운한 태자였다. 그때가 572년이었다. 4년 후 진흥왕이 죽고 동륜의 동생 사륜이 진지왕으로 즉위하면서 보명은 진지왕의 후궁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석명공주가 태어났다. 후일 석명이 동란冬蘭과 결혼하여 김군관을 낳았다. 579년 진지왕은 정사政事는 보지않고 정사情事만 하는 정난황음한 왕이라는 이유로 사도(진지왕의 어머니)와 미실, 그리고 세종과 노리부의 일파에 의해 폐위되었다(삼국유사에 등장하는 도화녀와 나눈 정사는 그들의 순수한 사랑이야기가 아닌 진지왕의 정난황음의 일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볼 수있다. 기록에는 진지왕이 죽은 뒤, 또한 도화의 남편도 죽은지가 3년이 지난 후로 설정되어 있지만, 당시 도화는 유부녀였고 진지왕 역시 살아서 폐위되기 전에 정사는 돌보지 않고 7일간 밤낮으로 정사에 몰두하였다고 보여진다. 그리고 갑자기 자취가 사라졌다는 것은 더 이상 돌보지 않고 또 다른 여인에게 몰두했으리라 본다. 그리고 도화녀는 아들 비형을 낳았다. 물론 이면에는 동륜계와 사륜계의 정쟁이 있었기에 사량부 세력의 지원을 받았음을 간과하지 않을 수 없다). 이어서 동륜의 장남 백정이 제26대 진평왕으로 즉위하였다. 그와 함께 보명은 어린 진평왕에게 색사를 일깨우기 위하여 미실과 함께 좌우후가 되어 색도를 하였다. 그 와중에서 보명은 양명공주를 출산하게 되었다. 즉 석명과 양명은 이부동모의 자매이다. 양명은 미실의 아들인 보종과 결혼했지만 보종의 신선과 같은 생활로 인하여 모종과 사통하여 양도를 낳았다. 그래서 김양도와 김군관은 이종간이며 외할머니가 같은 보명궁주이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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