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
화랑세기花郞世紀, 22세 풍월주風月主 양도공良圖公(12) |
보스톤코리아 2021-11-22, 12:27:18 |
이어지는 화랑세기의 기록에는 김양도가 그간 쌓여온 선문(화랑들이 기거하며 심신을 수련하는 곳) 내의 악습을 개혁하는 가운데 일부 화랑도들이 불만을 표출하는 장면이 있다. 아울러 양도의 선부仙父(어머니와 색사를 나눈 풍월주) 인 김염장의 충고도 있다. [그렇다고는 하나 선문仙門의 완고하고 사리에 어두운 자들 중에는 전횡한다고 생각하여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많았다. 염장공이 걱정을 하여 공에게 지나치게 빨리 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공은 직간하여 말하기를 “미생공은 마복자摩腹子가 …인이었는데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부주父主께서는 마복자가 백인이니 옳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했다. 염장공이 웃으며 말하기를 “저들이 좋아 요구했으니 또한 가하지 않겠는가? 사람들을 다스리는 것은 마치 물을 다스리는 것과 같아, 순리대로 하면 되고 서두르면 물이 샌다” 고 했다.] 오랫동안 화랑도의 선문에서 이어져 내려오던 관습인 ‘청례와 옥로(청례는 낭두의 딸들이 결혼 적령기가 되면서 먼저 화랑의 총애를 받는다는 색사를 의미하고, 옥로는 봉로화와 봉옥화를 의미하는데, 봉화라 불리우는 낭두의 딸들이 화랑과 색사를 하면 봉로화라 했고 화랑의 아이를 임신한 봉화는 봉옥화라 했다)’ 를 김양도가 풍월주의 위에 오르면서 중지시키는 개혁을 단행하자 일부 화랑도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이에 김염장이 서두르지 말고 순리대로 하라고 타이르는 장면이다. 김염장은 17세 풍월주를 역임하였는데 그의 이름의 뜻과는 달리 치부를 많이 하였다. 그는 16세 풍월주 설보종 밑에서 부제로 있을때 부터 보종의 재산을 관리하면서 많은 치부를 하였다. 또한 어색漁色을 좋아하였기에 수많은 처첩을 두었고 많은 봉화들과 나눈 색사의 결과로 마복자 또한 백이 넘었다. 또한 염장은 김양도의 어머니 양명공주의 사신私臣으로 공주와 사통하여 아들 장명을 두기도 하였다. 그래서 양도는 그를 부주라고 호칭하였다. 위의 인용문에 등장하는 미생은 10세 풍월주를 역임하였고, 또한 미실의 동생이기도한데, 그 역시 호색한인지라 자녀의 수가 백을 넘어 그들의 이름조차 다 기억하지 못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백이 넘는 자녀들의 숫자에 마복자는 포함되지 않았는데, 위의 인용문에서 마복자의 수가 탈자되어 있어 많은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다만 미루어 짐작해보건데 친자들의 숫자를 능가하리라 본다. 미생이 어릴때 부터 동륜태자(진흥왕의 장자)와 사륜(진흥왕의 차남으로 후에 진지왕)과 함께 어울려 다니면서 나눈 어색의 기록은 화랑세기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당시에는 많은 상선이나 상랑들이 자신이 데리고 살던 첩을 낭두들과 혼인시키기도 하였다. 지아비의 위세를 믿고 기고만장했던 그들은 직급이 낮은 낭두들과 결혼 후에도 과거의 달콤한 권력의 맛을 잊지 못하고 방자하고 교만하게 새로운 지아비를 홀대하다가 낭패를 당하는 사례도 있었다. 김염장은 첩들이 아주 많았는데, 어떠한 연유에서 상당한 미모와 게다가 자신의 아들(효장曉長과 유장劉長) 을 둘이나 낳은 첩 도리道里를 도두都頭361) 세기世己에게 주어 혼인시켰다. 세기의 처 도리는 12살이나 연상이었는데 오만방자하고 안중무인이라 남편 세기를 노복奴僕과 같이 대하며 마음에 조금이라도 들지 않으면 폭언과 악행에 심지어 매질까지 하는 망종亡種이나 다름없었다. 그 당시 세기는 이미 첩 세를 데리고 있었는데, 도리의 질투가 극에 달해 첩들은 물론 남편 세기마저 둔기로 폭행하여 낭무郎務를 볼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러자 소문은 삽시간에 낭문에 퍼졌고 풍월주 김양도의 귀에도 들어갔다. 그래서 양도는 도리를 잡아 오게하여 선문에서 체벌하려고 했다. 하지만 도리는 선종仙種(풍월주의 아들)을 낳은 어미라며 자신의 죄를 방어하였다. 그러나 양도는 죄를 뉘우치지 않고 변명하는 그녀에게 가중처벌로 곤장 여섯대를 치기 위하여 치마를 벗기고 형틀에 묶었다. 그러자 양도의 부인이자 화주花主인 보량이 지위만으로 아래 사람을 다스리다 도리어 염장공에게 불효를 한다면 도리道理가 아니라고 도리에게 가하려던 체벌의 중지를 간청하였다(김염장은 양도와 부인 보량의 어머니 양명공주의 사신私臣으로 그들 사이에는 장명이란 아들까지 두었다). 하지만 양도는 무리를 다스리려면 징계를 하지않으면 안된다면서 남편 세기를 불렀다. 남편으로서 처를 바로잡지 못했으니 그 죄값으로 도리를 곤장치는 대신 세기를 도두의 자리에서 파면하여 징계한다고 하였다. 그러자 세기의 처 도리는 울면서 자신이 곤장을 맞을테니 남편을 파면시키지 말아 달라고 간청하였다. 이에 양도는 부부의 의리는 이와 같아야 하니 도리가 남편 세기 섬기기를 자신에게 하는 것같이 한다면 곤장도 면할 것이며 파면도 없을 것이라고 하자, 도리는 풍월주 김양도 앞에서 맹세하고 나서 남편에게 순종하였고 첩들에게도 질투하지 않았다. 이에 모든 낭두들의 처들이 지아비들에게 방자하지 않게 되었기에 낭두들이 서로 기뻐하며 “신주新主의 덕화德化가 안방까지 깊이 미쳤다” 며 풍월주 김양도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지 않는 낭두들이 없었다고 전한다. 361) 김양도가 낭두의 직급을 개편하여 도두 위에 대도두와 대노두를 더하기 까지 도두는 낭두들 가운데 가장 높은 직급이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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