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
화랑세기花郞世紀, 20세 풍월주風月主 예원공禮元公(12) |
보스톤코리아 2021-06-07, 11:19:49 |
648년, 김춘추는 백제를 치려고 당나라에 원병을 청하러 갔다. 이때 김예원은 선화仙花(전임 풍월주) 로 김춘추를 수행하였다. 당나라에 도착하니 많은 관리들이 그와 교분을 쌓기를 원하였다. 그는 이미 당나라에서도 유명세를 떠치고 있던 원광법사의 조카이고, 자신 또한 문장에 능했기에 당나라 관리들이 존중하며 가까이 하였다. 처음에는 한 동안 당의 국학國學을 방문하여 석전釋奠과 강론講論을 참관하였고, 또한 신라의 장복章服을 중국의 제도에 따를 것을 청하면서 당태종의 환심을 샀다. 그 후 예원은 당나라 재상과 마주 앉아 청병의 협상을 하였다. 그 내용이 화랑세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당나라의 재상이 묻기를 “너희 나라와 백제는 서로 혼인을 했는데, 지금 어찌하여 서로 다투는가?” 했다. 공이 말하기를 “백제가 고구려에 쫓겨 남쪽으로 내려왔는데, 우리나라가 군대와 땅을 빌려 주어 보호했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우리에게 신하로서 의지했는데, 점차 안정이 되자 도리어 우리 땅을 침범했다. 또한 가야는 본래 우리의 부용국이었고 지금은 이미 우리나라에 들어왔는데, 백제가 그 서쪽 땅을 빼앗고 돌려주지 않는다. 대개 탐욕스럽고 도가 없다. 그러므로 천병天兵을 얻어 토벌코자 한다” 했다. 묻기를 너희 나라에서 건원하고 칭제한 것은 언제부터인가?” 했다. 공이 말하기를 “멀리 상고上古부터였다. 먼저 온 사신이 법흥왕부터 시작되었다고 대답한 것은 단지 문자 사용을 말한 것이다” 했다. 또 묻기를 “가야가 너희 나라를 부용국으로 삼았는지 너희 나라가 가야를 부용국으로 삼았는지 어느 것이 옳으냐? 했다. 공이 말하기를 “우리나라는 한漢 선제宣帝 오봉五鳳 원년에 섰고, 가야는 한漢 광무光武 건무建武18년에 섰으니, 누가 옳은지 알 수 있다”340) 했다. 당나라의 재상이 그렇게 여겼다.] 고구려와 백제는 약 4세기 동안 전쟁을 하였다(369 ~ 607년). 전쟁은 몇차례에 걸쳐 치루어졌다. 1차 전쟁, 369년 백제가 마한을 정복하러 간 사이 고구려 고국원왕이 2만의 군사로 침범하였다. 백제의 근초고왕이 태자(후일 근수구왕)를 보냈고 사기斯紀의 도움으로 대승하였다. 371년 고국원왕은 재침하였다. 근초고왕의 매복작전으로 또 대승하였고, 그 기세를 몰아 3만의 군사를 이끌고 평양성을 공격하였다. 고국원왕은 이 때 전사하였다. 함락 직전의 고구려는 결사항전하였고 백제군은 물러났다. 고국원왕을 이어 즉위한 소수림왕은 375년 백제의 변방을 공격하였다. 동년 11월 근초고왕이 죽자 근수구가 즉위하였고, 고구려의 잦은 변방 침입에 377년 근수구왕은 3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평양성을 재침공하였다. 하지만 함락시키지 못하고 퇴각하였다. 고구려의 보복공격이 또 있었지만 양국은 흉년과 이상기후 등으로 휴전상태로 들어갔다. 결과는 백제의 승리였다. 2차 전쟁, 385년 부터 수년간 백제의 진사왕과 고구려의 고국양왕이 서로 소규모의 국지전을 몇차례 하였다. 새로 즉위한 광개토왕은 392년 4만의 군사를 동원하여 석현성 등 10여 성을 함락시키고, 승기를 몰아 관미성도 함락하였다. 그 와중에 백제의 진사왕은 암살되었고 아신왕이 즉위하였다. 아신왕은 빼앗긴 성을 회복하기 위해 공격에 나섰지만 실패하였다. 이어서 광개토왕은 393년에 관미성, 394년에 수곡성, 395년에는 패수浿水에서의 대승리, 396년 아리수阿利水 이북을 모두 점령하고 위례성을 포위하였다. 그러자 아신왕은 항복하였다. 고구려의 승리였다. 399년 아신왕은 고구려를 보복하려고 군사를 모집하려 하였지만 전역戰役에 시달린 많은 백성들이 신라로 도주하였다. 3차 전쟁, 455년에서 20년간 지속된 전쟁으로 고구려의 장수왕과 백제의 개로왕이 싸웠으며, 장수왕은 승려 도림을 간첩으로 보내 개로왕의 총애를 받아 결국 그를 학정의 군주로 이끌었다. 475년 도림이 도망쳐 보고하니 고구려군이 백제를 침공하였다. 아들 문주文周는 남하하였고, 이에 위례성은 함락되고 개로왕은 아차성에서 피살되었다. 아들 문주文周는 남하하여 웅진을 도읍으로 하였다. 결과는 고구려의 대승이었다. 4차 전쟁, 495년 부터 529년 까지 십수 차례의 공방과 승패를 거듭한 전쟁으로, 결과적으로 백제는 고구려의 침략을 성공적으로 방어하였고, 고구려는 서서히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한편 이에 앞서433년, 백제의 비유왕과 신라의 눌지왕이 나제동맹을 맺었다. 혼인동맹(493년)으로 힘을 합친 신라와 백제는 4차 전쟁 기간에는 여러 전투에서 함께 고구려에 대항하였다. 백제는 성왕 때 한강유역을 수복하기 위해 551년 신라와 함께 고구려를 퇴각시키고 553년 한강유역을 회복하였지만 군사 부족으로 지키지 못하고 철수하자 신라가 군사를 보내 차지하면서 나제동맹은 파기되었고, 성왕은 왜의 원군을 요청하여 신라를 치려고 출정하였지만 관산성 전투에서 전사하면서 이후 약 100년간 두 나라는 원수가 되었다. 340) 한나라 선제 오봉 원년은 기원전 57년이고, 광무제 건무 18년은 기원후 42년으로 예원이 말한 신라와 가야의 건국 연도는 삼국사기와 일치한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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