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위해서라면"…WP, 총격 희생 한인여성 헌신적 삶 조명
생업 와중에도 오랜 봉사활동으로 오바마 대통령 표창 받기도
전 세대 이민여성 고단한 길 따라 더 나은 삶 위해 이주
보스톤코리아  2021-03-21, 11:53:13 
무릎 꿇고 연쇄 총격 희생자 추모하는 미 애틀랜타 시민
무릎 꿇고 연쇄 총격 희생자 추모하는 미 애틀랜타 시민
(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한꺼번에 두세 개의 일자리를 동시에 뛰면서도 평생 가족과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던 다정한 엄마이자 할머니.

미국의 일간 워싱턴포스트(WP)가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21세 백인 남성의 무차별 총격에 희생된 김모(69)씨의 지인과 가족을 취재해 그려낸 김씨의 생전 모습이다.

워싱턴포스트는 20일(현지시간) 이번 총격 사건으로 숨진 김씨 등 한인 네 명의 삶의 모습을 상세히 재구성해 보도하면서 이들의 삶이 미국에서 아시아계 이민 여성이 이끌어가는 힘든 삶의 단면을 보여준다고 전했다.

WP에 따르면 김씨의 삶은 자기희생과 가족과 타인들을 위한 헌신이었다. 중학생 때 어머니를 여읜 그는 세 명의 어린 동생을 돌봐야 했던 장녀에서 결혼 후에는 자식과 손주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기꺼이 희생했던 삶을 통해 그 동년배 세대 한국 여성의 희생적 인생 여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김씨는 한국에서 결혼 후 남매를 낳은 뒤 1980년 더 나은 기회와 좋은 교육환경을 위해 가족과 미국으로 건너왔다.

정착 초기 영어를 거의 하지 못했던 그는 미군기지 레스토랑에서 설거지하는 첫 직장을 잡은 뒤 편의점 일과 사무실 청소 등 한꺼번에 2~3개의 일자리를 돌며 악착같이 생계를 꾸렸다.

이렇게 키운 두 자식에게서 손주 세 명을 봤고, 숨지기 직전에도 잡채와 김치를 손수 만들어 자식들에게 보냈다.

한 유족은 WP에 "언제나 자식들을 먼저 생각하셨고 항상 '네가 좋고 행복하다면 나도 행복하다'고 하시는 분이었다"고 말했고, 한 손녀는 모금사이트 고펀드미닷컴에 올린 글에서 "할머니는 엄청난 용기를 가진 분이었고 투사였다"고 전했다.

이민자로서 힘겨운 삶을 꾸려가면서도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그는 어려운 처지의 다른 사람을 잊지 않았다.

미국의 여러 단체에서 봉사와 기부활동을 했는데, 가장 애착을 가졌던 일은 1990년대 IMF 위기 후 한국의 어려운 아이를 돕는 활동에서 시작해 전 세계로 무대를 확장한 한 단체의 일이었다고 한다.

봉사를 열심히 해서 미국에서 대통령 표창까지 받았다고 한다. 김씨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 재임 시절 워싱턴DC의 노숙인을 돕는 자원봉사를 했는데, 그 노고를 인정받아 대통령자원봉사상(President's Volunteer Service Award)도 받았다고 유족은 전했다.

유족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바이든 행정부가 증오범죄 근절을 위해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씨의 한 자녀는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보낸 공개서한에서 "우리를 위해 일어서달라. 엄마와 모든 증오범죄 희생자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해주시기를 간청한다"고 말했다고 WP는 전했다.

희생자 중 최고령인 박모(74)씨는 이민 후 가족과 함께 뉴욕 일대에서 오래 살았지만, 친구가 많은 애틀랜타로 이주해 노후에도 일을 손에 놓지 않았다.

스파를 관리하며 직원들을 위해 점심·저녁 식사를 손수 만들던 그는 애틀랜타의 아파트 계약이 곧 만료되면 곧 생활을 정리하고 뉴저지의 가족에게 돌아갈 참이었다고 한다.

박씨의 사위는 "장모님은 돈을 위해서가 아니라, 일하는 것을 참 좋아하셨다"면서 항상 다정다감했던 박씨를 회고했다.

한국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다가 미국으로 건너온 것으로 전해진 희생자 그랜트(51·한국성씨 김)는 생계를 꾸리려고 너무 많이 일해서 두 아들을 1년 이상 다른 가정에 맡긴 적도 있다.

이들 가족은 시애틀에서 생활하다 더 나은 기회를 찾기 위해 13년 전 애틀랜타에 이주했다고 한다.

장남이 일했던 한 빵집의 동료는 WP에 "가끔 아들이 일하는 것을 보러온 그녀의 눈에 기쁨이 가득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전했다.

또 다른 희생자 유모(63)씨는 미군이었던 남편을 따라 1980년대에 조지아주로 이주했다. 40대인 장남도 부친을 따라 미군에서 복무한 뒤 제대했다.

차남 로버트 피터슨(38)씨는 지역일간지 애틀랜타저널컨스티튜션과 인터뷰에서 "엄마는 내 친구들에게 항상 한국 음식을 해 먹이셨고 친구들도 엄마의 음식을 좋아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엄마는 아무 잘못도 없다.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공동체의 구성원이었다. 그 어떤 사람도 이런 일을 당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WP는 "전 세대 이민 여성들의 고단한 길을 따라 이들 역시 미국에 더 나은 삶을 위해서 왔다"면서 "이들의 죽음으로 미국에서 인종, 계급, 젠더에 관한 어려운 논쟁이 촉발되고 있다"고 전했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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