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
화랑세기花郞世紀, 19세 풍월주風月主 흠순공欽純公(6) |
보스톤코리아 2021-02-08, 13:20:42 |
김흠순은 660년 백제를 멸망시킨 마지막 전투인 황산벌에서 백제 장군 계백과 대적하여 치열한 공수를 하였다. 대장군 김유신을 필두로 김품일과 함께 좌우장군으로 5만의 군사를 지휘하여 참전하였다. 전세가 불리하게 돌아가자 아들 반굴을 희생시키면서 ‘지배층의 의무와 솔선수범’ 을 보이자 신라군사들의 사기가 충천하였다. 아울러 삼국사기에 그가 세운 무수한 전과와 업적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그는 분명 신라의 대영걸인데 삼국사기에는 그의 열전이 별도로 없다. 다만 손자인 김영윤의 열전 속에서 끼여서 등장한다. 그 내용의 일부를 보면 다음과 같다(삼국사기 열전 제7권). “김영윤金令胤은 사량沙梁 사람으로 급찬 반굴盤屈의 아들이다. 할아버지인 각간 흠춘欽春(또는 흠순欽純이라고도 한다) 은 진평왕 때 화랑이 되었는데, 어짐이 깊고 신뢰가 두터워 뭇사람의 마음을 얻었다. 장년이 되어 문무대왕이 그를 올려 총재로 삼았다. 윗사람을 충성으로 섬기고 백성에게는 관대하여 나라사람이 모두 어진 재상이라 칭하였다. 태종대왕 7년 경신에 당나라 고종이 대장군 소정방에게 명하여 백제를 치게 하였을 때 흠춘이 왕명을 받들어 장군 유신 등과 함께 정예 군사 5만을 이끌고 나갔다. 가을 7월 황산벌에 이르러 백제 장군 계백을 만나 싸움이 불리하여지자 흠춘이 아들 반굴을 불러 말하였다…” 이하 생략 이어지는 내용은 아들 반굴에게 명하여 적진에 뛰어들게 하였다. 반굴은 단신으로 나아가 수많은 백제군의 목을 베고 장렬히 전사하였다. 이에 김품일 장군 역시 아들 관창에게 같은 명령을 하였다. 용맹한 화랑 관창도 몇 차례 적진에 돌진하여 백제군의 목을 베니 그제야 신라군의 사기가 충천하여 황산벌 전투를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태종대왕 7년 경신년은 660년이다. 위에 인용한 김흠순에 대한 삼국사기의 기록이 많지는 않지만 여기서 그에 관한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간파할 수 있다. 그는 화랑이었다. 삼국사기에서는 단 한 문장인 ‘진평왕 때 화랑이 되었다’ 고 기록되어 있지만, 화랑세기를 보면 김흠순은 화랑의 수장인 19세 풍월주를 역임하였다. 그는 629년에 풍월주에 올라 4년간 화랑도를 이끌다가 633년에 부제인 예원공에게 물려주었다(김태식은 ‘화랑세기, 또 하나의 신라(165쪽)’ 에서 김흠순이 631년에 풍월주의 위에 올랐다고 기록했는데, 화랑세기 19세 풍월주 흠순공조에 보면, 김흠순이 풍월주의 오른 해에 부형인 김서현과 김유신이 낭비성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다고 기록하고 있다. 고구려를 친 낭비성 전투는 629년에 있었다). 어째든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김서현이 진평왕 재위시 화랑이 되어 진평왕 말년에 풍월주가 되었으며 선덕여왕이 왕위에 오른 뒤에도 그 위位에 있었다. 즉 그가 화랑을 지낸 기록이 삼국사기와 일치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또 하나 주목해 볼 것은, 위의 짧은 인용문 내용에 ‘문무왕이 그를 총재에 올렸다’ 는 대목이다. 총재가 무슨 벼슬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다음 문장에서 ‘모두 어진 재상이라 칭하였다’ 라고 한 내용에서 아마 김흠순도 상대등을 지낸 것으로 추측해 본다. 김흠순이 상대등을 지냈다는 것을 추론하기 위해 먼저 몇 가지 역사적 사실을 고증해 본다. 김유신은 595년에 태어났다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는데 동생 흠순의 출생 기록은 없다. 그런데 화랑세기에는 기록되어 있다. 형 유신보다 세살 아래인 흠순은 598년에 태어나서83세까지 장수하고 문무왕 재위 20년인 680년 2월에 죽었다. 그런데 죽을 당시의 직위가 기록에 없다. 다만 그가 삼국통일을 이루는 수 많은 전쟁과 당을 한반도에서 몰아내는 나당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대장군이었고, 불세출의 대영걸인 김유신의 동생이며, 문무왕의 어머니인 문희(문명왕후,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정비) 의 친오빠이며, 80세를 넘기며 천수를 누렸다는 점에서 그가 죽기 전에 상당한 고위직에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다음은 삼국사기를 통해 680년 신라에서 일어난 일 중에, “봄 2월에 이찬 김군관金軍官에게 벼슬을 내려 상대등으로 삼았다” 는 기록이 있다. 김군관은 23세 풍월주를 지냈다. 자세한 그의 삶은 23세 풍월주편에서 다루어 볼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 볼 대목은 김흠순이 680년 2월에 죽었고, 김군관이 동년 동월에 상대등에 임명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목을 끄는 역사적 사실은 삼국사기에 기록된 역대 상대등上大等의 명단이다. 문무왕 재위시 두명의 상대등 기록이 나오는데, 김유신이 660년 정월에서 673년까지 재임했고, 김군관은 680년 2월에서 681년 8월로 기록되어 있다(나무위키와 위키백과에는 김군관의 취임 년도가 679으로 삼국사기와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삼국사기(제7권, 신라본기 제7권, 문무왕 20년 춘2월) 에는 “이십년춘이월배이찬김군관위상대등 二十年春二月拜伊찬金軍官爲 上大等” 으로 기록되어 있다. 문무왕의 재위 20년은 680년이다. 여기서 중요한 대목은 상대등 김유신과 김군관 사이 7~8년 동안에 재임한 상대등의 기록이 없고, 또한 김군관의 상대등 임명이 김흠순이 죽은 동년 동월에 있었으며, 총재와 재상이라는 직명이 그의 ‘열전’에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그 기간 흠순이 상대등을 지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 나무위키, 위키백과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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