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
화랑세기花郞世紀, 18세 풍월주風月主 춘추공春秋公(4) |
보스톤코리아 2020-10-26, 10:58:11 |
당시 촉망받던 김춘추가 왕이 될것을 감지한 김유신은 그와 결탁하기 위하여 계략을 하나 꾸몄는데 멋지게 성공하였다. 다름아닌 바로 자신의 동생과 김춘추를 결혼시키는 작전이었다. 먼저 삼국사기에 보면, 제6권(신라본기 권6, 661년)은 문무왕이 왕위에 오른것으로 시작한다. 이름과 부모, 그리고 출생내역을 서술하였는데 다음과 같다. “문무왕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법민으로, 태종왕의 맏아들이다. 어머니는 김씨 문명왕후로 소판 서현의 막내딸이며 유신의 누이이다. 언니가 서형산 꼭대기에 올라가 오줌을 누니 온나라에 가득 퍼지는 꿈을 꾸었다. 깨어나 동생에게 꿈 이야기를 하니 동생은 비단치마를 주고서 꿈을 샀다. 며칠 후 유신이 춘추공과 축국蹴鞠을 하다가 춘추의 옷고름을 밟아 떨어뜨렸다. 이에 유신은 자기 집으로 데려가 꿰매자고 청하였고, 술상을 차려 놓고 조용히 보희寶姬를 불러 꿰매게 했다. 언니는 일이 있어有故 나오지 못하고 동생이 나와서 꿰맸다. 옅은 화장과 가벼운 옷차림을 하였는데, 빛이 곱게 사람을 비추는 모습이었다. 춘추가 보고 기뻐하여 바로 혼인하자고 요청하고는 곧 예식을 치렀다.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법민法敏이다. 왕비는 자의왕후慈儀王后로 파진찬 선품의 딸이다. 법민은 평소에 맵씨가 영특하고 총명하여 지략이 많았다. 영휘永徽312) 초에 당나라에 갔는데, 고종이 태부경의 관작을 주었다. 태종 원년(654년)에 파진찬으로써 병부령이 되었다가 이윽고 태자가 되었다. 현경顯慶313) 5년(660년)에 태종이 당나라 소정방과 함께 백제를 평정할 때 법민이 종군하여 큰 공을 세웠다. 이때에 이르러 왕위에 올랐다.” 삼국사기의 기록으로만 보면 아무런 계략이나 극적인 반전도 없이 서술되어 있다. 태종무열왕의 비가 된 문명왕후(문희)가 언니(보희)가 꾼 꿈을 비단치마를 주고 샀고, 한편 김유신은 김춘추와 자신의 집 가까이서 축국을 하다가 옷고름을 밟아 떨어뜨렸다. 그리고 자신의 집으로 가서 꿰매자고 데리고 와서 보희를 불렀는데, 무슨 일이 있던 보희 대신 문희가 나왔는데, 그 아름다움에 반한 김춘추가 바로 청혼을 하여 결혼을 하고 법민을 낳았다. 별로 드라마틱하지 않다. 그런데 삼국사기를 편찬할 때 참고한 화랑세기의 기록과 삼국사기와 화랑세기를 함께 참고하며 저술한 삼국유사의 기록을 보면 단순한 삼국사기의 기록을 뛰어넘어 그들의 만남과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한편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한편 신채호가 쓴 ‘조선상고사(1931)’ 에 보면 김유신에 대한 평가가 나온다. “지략과 용기가 있는 이름난 장군이 아니요, 속이 엉큼하기 짝이 없는 정치가로서 그가 이룩한 평생의 큰 공로는 전쟁에 있지 않고 음모로써 이웃나라를 어지럽힌 자” 라고 기술되어 있다. 단재가 이렇게 김유신을 증오스럽게 평가한 이유는 이민족인 당나라를 끌어들여서 동족의 국가인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케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한 권모술수의 모략가적 기질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사례가 왕이 될 김춘추와 결탁하기 위하여 동생을 춘추와 혼인시킨 계략이라고 하였다. 무엇보다 단재 신채호는 김유신이 금관가야에서 투항해온 혈통이라 신라에서 출세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진지왕의 손자이며 차기 왕위에 오를 가능성이 매우 높은 김춘추와 손 잡기를 원했으며, 그 작전이 성공하여 신라의 실권을 잡고 나서 이를 발판으로 백제와 고구려를 멸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런데 ‘금관가야에서 투항해온 혈통이라 신라에서 출세하기가 어렵다’ 는 대목에서는 선듯 동의하기가 어렵다. 김유신의 부모는 각간 김서현과 만명부인이다. 먼저 모계를 보면, 만명의 부모는 숙흘종과 만호태후이다. 숙흘종은 입종(진흥왕의 아버지)과 금진낭주 사이에서 태어났다. 만호태후는 처음에 동륜태자와 혼인하여 백정(진평왕)과 백반, 국반(진덕여왕의 아버지)을 낳고, 동륜이 아버지 진흥왕의 후궁인 보명궁주의 치맛폭을 풀려고 월담하다가 개에게 물려서 ‘개죽음’ 을 당한 뒤 숙흘종과 결혼하였다. 즉 김유신의 외조모 만호는 진평왕의 어머니이다. 그리고 부계를 보면 서현의 부모는 김무력과 아양공주이다. 김무력의 아버지가 가야의 구충(구형)왕으로 법흥왕 때 신라에 항복하여 진골의 신분을 얻었다. 그리고 서현의 어머니, 즉 김유신의 조모 아양공주는 진흥왕과 사도왕후의 딸이다. 그리고 화랑세기에서 여러 차례 등장하는 대표적인 계보를 보면, 먼저 예악藝樂을 중시했던 운상인파는 7세 풍월주 설화랑이 중심이 되어 형성되었고, 무武를 수련하며 정正과 의義를 따르는 국선인파는 8세 풍월주 문노를 추종하는 낭도들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혈과 골의 통으로 이루어진 계파는 대원신통과 진골정통 그리고 가야파가 있었는데, 가야파의 인맥姻脈도 대원신통이거나 진골정통이었다. 즉 김유신의 아버지 서현은 어머니가 아양공주로 사도왕후의 딸이기에 대원신통이다. 그리고 김유신은 어머니가 만명공주로로 만호태후의 딸이기에 진골정통이다. 그래서 김유신은 왕위 계승 서열에 있지는 않았지만 성골이 없어진 당시 이미 최고의 신분에 있었다. 즉 ‘출세를 하기 어려워서’ 라기 보다는 출세를 ‘더하기’ 위해서 김춘추와 결탁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660년에 상대등에 올랐다. 312) 당나라 고종의 연호로 650년~655년에 해당한다. 신라 진덕여왕 4년부터 태종무열왕 2년때까지이다. 313) 당나라 고종의 연호로 656년~660년에 해당한다. 신라 태종무열왕 3년부터 7년까지이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조선상고사(신채호),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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