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객설閑談客說: 구보씨의 일일
보스톤코리아  2020-03-23, 11:30:19 
지난 정월 초하룻 날이다. 떡국을 먹고 아이와 보스톤 다운타운에 내려갔다. 해마다 하는 행사아닌 행사였기 때문이다. 날은 쌀쌀한듯 했다만 걸을 수는 있었더랬다. 도심을 걸어 보신적이 있으신가? 

신촌교통 142번 버스가 다닐 적이다. 지하철이 생기기 전이다. 신촌에서 로타리를 지나 아현동 고개를 걸어 넘어 간적이 있다. 발길은 서대문 근처를 지나면서 정동으로 들어섰고, 서울역을 향했다. 한 두어시간 걸었던 듯 싶은데, 날은 푸근했더랬다. 오히려 등어리엔 땀마져 배이는듯 했고, 황홀한 산보였다. 구보씨 처럼 걸었던 거다. 

구보씨의 일일. 1930년대 중반에 발표된 소설제목이다. 구보는 소설가 박태원의 호이므로 소설은 작가 자신의 이야기 일터. 구보씨의 동선을 따라가 본다. 구보씨는 정오에 집을 나왔다. 화신앞에서 전차를 타고 동대문을 거쳐 조선은행 앞에서 내렸다. 그리고 오후 2시경에 다방에 앉아 친구와 담소했다. 다 늦은 저녁 다방을 나와 남대문과 서울역을 배회했으며 다시 종로의 제비다방에서 친구들을 만났다. 설렁탕으로 저녁을 먹고,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귀가 했다. 당시에는 조선은행 앞이 번화한 곳 중하나일 수도  있겠다. 

조선은행(한국은행) 앞에는 신세계백화점이 있다. 경성미스코시 백화점이라 했다던가. 백화점은 육이오 당시 미군이 피엑스로 사용했고, 작가 박완서도 그곳에서 점원으로 일했다. 하긴 영화 암살에서도  그 백화점이 나온다. 그 앞은 문화의 거리였다고도 했다. 

몇년전, 다시 서울거리를 배회한 적이 있다. 마침 발길이 신세계백화점 맞은편에 다달았다. 그게 한전빌딩 앞이었고, 한참을 앉아 오고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더랬다. 일본 정치가가 쓴 글이다. 문명을 문화로 바꾸도 크게 어렵지 않다. 

참다운 문명은
산을 파괴하지 않고
강을 파괴하지 않고
마을을 망치지 않고
사람을 죽이지 않아야 하리
(다나카 쇼조, 참다운 문명)

봉준호 영화감독도 커피집을 즐긴단다. 글을 쓸적이면 조용한 곳을 찾는다고도 했다. 그가 했다는 말이다. ‘찾아 갔던 조용한 커피집을 다시 찾아가면 폐업한 곳이 많더라.’ 조용하다는 건 손님이 없다는 말인데, 그도 구보씨 마냥 다방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봉준호 감독은 구보씨의 외손자이다. 

한국이건 미국이건 요즈음 외출을 삼가하는 모양이다. 아니 아예 외출할 수없을지도 모른다. 바이러스가 창궐하니 말이다.  덕분에 다방도  무척 한가할 수도 있겠다. 바이러스가 곧 물러가길 바란다. 바이러스는 사람뿐 아니고, 문명과 문화도 병들게 한다. 

들에서 배회하다가 마주 오는자가 누구냐 (창세기 24:65)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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